이상훈교수의 철학산책
최근 신라 시대 이래 엄연히 우리 땅이었던 독도에 탐심을 비치는 일본 열도의 일부 몰지각한 극우보수주의 정치인들을 보면서, 조심스레 동북아시아에 진정한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철학을 고민하게 된다. 무릇 자기나 한 집단을 벗어나 타자와, 그리고 이 타자가 좀 더 확대된 경우로 민족이나 국가 또는 문화권을 넘어서는 교류가 이루어질 때, 우리는 항상 이 타자를 어떻게 인식하고 행동할 것인지에 대해 일정한 태도를 정해야 한다.
논리에 심리적 변수를 감안해 볼 때 여기서 취할 수 있는 태도는 일단 친구냐 낯선 타자냐, 아니면 적이나 악마인가로 환원할 수 있다. 이 때 가장 큰 골칫거리는 폐쇄적인 작은 공동체 생활에 지나치게 익숙한 집단일수록 타자와 긍정적 의사소통 기제를 잘 갖지 못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타자를 친구나 손님으로 환대하기보다는 악마로 변신시키려는 유혹에 쉽게 빠지는 것이다. 타자가 악마일 때는 그 힘에 굴복해 비굴하게 노예로 예속해 복종하거나, 아니면 정복과 파괴로 나아가게 된다. 제국주의 망령을 다시 일깨우는 일본 극우파가 미국과 한국에 대해 취하는 양면적 태도와 매우 유사하다.
일찍이 18∼19세기 독일 관념론의 전성기를 대변했던 헤겔은 그의 주요 저서인 <정신현상학>에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통해 이런 폐쇄적 정신을 고발한 적이 있다. 타자를 지배와 정복의 대상으로 여기고 약탈과 파괴를 일삼는 태도는, 한마디로 인간적인 자기의식 수준에 이르지 못한 동물적 의식 단계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헤겔보다 거의 한 세기 뒤, 철학에서 무의식의 지평을 연 프로이드 역시 이런 공격적 자아를 리비도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경우로 본다. 프로이드의 제자이기도 했던 라캉은 인간의 무의식 가운데 역사와 전통을 통해 형성되는 집단 무의식이 존재하며, 이것이 때로는 긍정적일 수도 있지만 파괴적인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음을 경고했다.
20세기 말 서구 중심적인 이성주의 철학 사조를 근본적으로 반성함으로써 포스트모더니즘을 구가했던 데리다는 레비나스와 함께, 타자를 적이나 악마가 아니라 환대와 우정으로 맞기 위해서는 타산적 이성을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비판이론의 정신을 발전시키고 계승하는 과정에서, 원활한 의사소통의 가능성을 도덕 이론으로 규명하고자 했던 하버마스에서도 마찬가지다. 대진대 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