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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어떤 과목 고를까’ 행복한 고민

등록 2005-04-10 19:59수정 2005-04-10 19:59

 이우중학교 학생들이 토론 수업을 하고 있다. 인가를 받은 대안학교인 이우학교에선 학생들이 국민공통기본 교과 말고도 자신의 적성과 진로에 따라 필요하고 흥미 있는 과목을 선택해 수강한다.
이우중학교 학생들이 토론 수업을 하고 있다. 인가를 받은 대안학교인 이우학교에선 학생들이 국민공통기본 교과 말고도 자신의 적성과 진로에 따라 필요하고 흥미 있는 과목을 선택해 수강한다.

대안학교 대안을 키운다

옷만들기,영상창작,힙합댄스…

경기 분당 이우고등학교 2학년인 서재형(17)군은 만화를 즐겨 그린다. 서군의 꿈은 만화가나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학기 특기적성 수업으로 ‘영상 창작’과 ‘한국미술’을 선택했다. ‘만화 창작’이나 ‘애니메이션’처럼 자신의 진로와 좀 더 직접적으로 관련된 과목도 있지만 다음 학기로 미뤘다. 관련 과목을 폭넓게 수강하면서 기초를 다지려는 생각에서다.

서군의 시간표에는 눈에 띄는 과목이 몇 개 더 있다. 우선 ‘옷 만들기’. 이우고 2학년 학생들은 디자인공예, 생활의학, 옷 만들기, 음식 만들기 등 네 개의 필수 과목 가운데 반드시 두 과목 이상 이수해야 한다. ‘지역활동과 엔지오(NGO)’, ‘통합기행’, ‘인턴십 연구’도 학교 쪽이 제시한 수강 필수 과목이다. 여느 학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이름의 필수 과목과 자신이 선택한 특기적성 과목으로 이루어진 서군의 수업 시간표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개성적인 모양새를 자랑한다.

이우학교의 교과과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일반 학교와 똑같이 마련된 국민공통기본 교과와 이우학교만의 심화·특성화 교과다. 간디학교나 성미산학교 같은 비인가 학교는 교과 과목이나 운영 방식을 학교 특성에 따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지만, 인가학교인 이우학교는 사정이 다르다. 공교육이 제시하는 교육 과정의 틀을 존중하면서 대안학교라는 특성도 충분히 살려나가야 하는 것이다.

▲ 이우학교에서는 일반 학교의 2개 교시를 묶어 운영하며 이를 '블록'(100분)이라 부른다.

이우중학교 학생들이 일반 중학생들에 비해 수업시간이 더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우중 학생들은 연간 1292시간의 수업을 듣는다. 일반 학교의 1156시간보다 136시간 많다. 국어 도덕 수학 사회 같은 국민공통기본 교과는 일반 중학교와 똑같이 952시간 이수하고, 나머지 272시간은 학생들이 선택한 교과와 특성화 교과로 채워진다. 선택·특성화 교과는 ‘더불어 사는 삶을 익히고, 다양한 체험을 통해 학습한다’는 이우학교의 설립 정신에 바탕해 마련된 것이다. 중 1학년은 자연과 호흡하는 ‘생태체험’을, 2학년은 직접 밭을 갈고 씨를 뿌려 추수하는 ‘농사체험’을, 3학년은 ‘지역활동과 엔지오’‘진로탐색’을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 이밖에도 ‘공예’나 ‘우리 춤 우리 가락’, ‘표현예술’, ‘주제학습’ 등 각종 탐구활동 수업 중에서 듣고 싶은 것을 골라 한 해 두 과목씩 듣는다.


공교육 기본교과 이수+특성화 교육
특기적성 30여개, 심화교과 40여개
"아이들 부담은커녕 수업 욕심 대단"

학생들은 또래 친구들보다 수업을 많이 듣는 것이 부담스럽기는커녕 마냥 즐겁다는 표정이다. 이우중 2학년 이호경(14)군은 이번 학기에 ‘중국어 기초’를 신청했지만 학부모가 직접 강의하는 ‘독서지도’ 수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정식 수강이 아니라 청강인 셈이다. 교무를 담당하고 있는 강병욱 수학 교사는 “청강하는 학생들의 명단을 별도로 관리할 만큼 아이들의 수업 욕심이 대단하다”고 귀띔했다.

고등학교로 가면 학생들의 과목 선택 폭은 훨씬 넓어진다. 특히 국민공통기본 교과를 더는 이수할 필요가 없는 2, 3학년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와 적성을 고려한 ‘개인별 맞춤 시간표’를 짠다. 물론 학교 쪽이 정한 필수 과목도 있다. 다양한 직업의 세계를 미리 경험하는 ‘인턴십 연구’, 다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눈으로 보고 산간 오지나 무인도를 탐험하는 ‘통합기행’, 건강한 시민사회 구성원으로 자라나기 위한 ‘지역활동과 엔지오’ 등이 그것이다. 나머지는 오로지 학생들의 몫이다. 문예 창작, 작곡 실기, 힙합댄스, 목공예, 캠핑, 생태 건축 등 무려 30개에 이르는 특기적성 교과와 각 교과목별로 마련된 40여개의 심화선택 교과 가운데서 필요하고 흥미있는 과목을 선택하면 된다. 다른 반, 다른 학년 학생들과도 무람없이 어울리며 공부하는 모습을 이우학교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얼핏 보기에 대학 강의와 비슷한 이우학교의 교과 과정은, 그러나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이우학교 이수광 교감은 말한다. “제7차 교육과정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려고 노력하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학교 실정을 고려한 수준별 교육 과정을 마련하고 선택 중심 교육을 확대한다는 내용의 제7차 교육과정은 일반 중·고교에도 이미 적용되고 있다. 이우학교는 이를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해 애쓰고 있을 뿐이라는 게 학교 쪽 설명이다. 이 교감은 “일반 학교들은 입시라는 현실적 제약 때문에 선뜻 시도하기 어렵겠지만, 이우학교의 실험이 성공하면 뜻있는 공교육 학교들에도 바로 적용 가능한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이우학교가 도심 가까운 곳에서 통학형 인가학교로 출발한 이유와도 관련이 있다. 일반 공교육 학교와 비슷한 환경에서 전혀 다른 교육적 실험을 하는 이우학교는, 공교육에 대해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인 메시지를 던지려 한다. 단 한 명이 수강 신청을 해도 수업을 개설하고 해마다 더 많은 과목들을 만드느라 교사와 공간 확보에 골치를 앓으면서도, 이우학교가 기꺼이 실험하고 신나게 도전하는 모습이 눈길을 끄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미경 기자 friend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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