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보다 ‘적’을 만드는 교육제도가 10대들의 마음을 멍들게 하고 있다. 교육주체들은 수월성 보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교육제도를 바라고 있다. 사진은 한 수험생이 논술고사를 치르는 모습.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혼돈에 빠진 대입
새 정부 인수위원회(인수위)가 발족한 지 한달이 채 안됐지만, 수많은 교육 정책들이 예고됐고 그만큼의 논란이 생겨났다. 당장 다음해 입시부터 ‘2008년 체제’의 유지가 불투명해지고 이를 둘러싼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논란의 가장 큰 핵은 ‘대학 자율화’다. 특히 인수위가 대학 입시 관련 업무를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에 이관한다는 방침을 세우면서 대학들의 ‘돌출행동’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지난 2일 교육인적자원부(교육부)는 그동안 교육부가 담당해 왔던 입시 업무를 대교협에 완전히 넘기는 내용의 대입제도 개선안을 마련해 인수위에 보고했다. 인수위는 이에 따라 2011년까지 입시 관련 업무나 정책 결정 권한을 대학 자율에 맡긴다는 방침을 정했다.
곧 이은 4일 차기 대교협 회장으로 뽑힌 손병두 서강대 총장은 “논술 가이드라인부터 없애겠다”고 천명했다. 나아가 ‘본고사 부활’의 가능성까지 타진했다. 논란이 커지자 9일 인수위는 “현시점에서 대교협 논의는 구속력도 없고 인수위의 입장도 아니다”며 진화에 나섰다. 정책의 방향은 밝혔으나 구체적 추진일정과 세부 이양방안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이인규 한국교육연구소 소장은 “지금까지 규제해 왔던 대입 제도를 자율화하면 기왕의 문제가 드러나거나 규제와 자율 사이의 새로운 균형추가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라고 본다”면서도 “다만 대학에 모든 것을 맡기기엔 아직 불안한 면이 있다”고 했다.
‘대학자율화’ 방침 다시 논란 일부 사립대들 본고사 ‘꿈틀’ 수능 등급제는 폐지 시기를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애초 교육부는 수능 등급제 개선 시기를 3년 이후로 정했다. 그러나 인수위는 줄곧 총점제로의 회귀가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지난 8일 <한겨레> 기자와 만난 인수위 사회교육문화분과 핵심 관계자는 “당장 올해 수능부터 총점제로 가능하다는 안과 1년 6개월의 시간을 둬야 한다는 안, 3년 뒤에 폐지해야 한다는 안 등 세가지 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14일 이명박 당선인의 신년 기자회견 뒤로는 2009학년도의 경우 등급에다 표준점수와 백분위를 함께 제공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떠오르고 있다. 인천의 한 예비 고3 학생은 “3월에 처음 치르는 모의고사 성적이 실제 수능 성적으로 이어진다고 해서 겨울방학에 받는 스트레스가 엄청나다”며 “그런데 아직 우리가 등급제를 적용받을지 점수제를 적용받을지도 모른다는 게 짜증스럽다”고 했다. 그는 또 “죽음의 트라이앵글은 ‘각’이 있어서 형체라도 있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그저 ‘카오스’ 상태다”고 했다. 논술 등 대학별 고사의 방향도 마찬가지로 갈피를 잡을 수 없다. 11일 치러진 서울대 자연계 논술의 일부 문항이 논술 가이드라인을 어겼다는 지적을 받았다. 고려대 자연계 논술도 마찬가지다. 논술 가이드라인이 ‘본고사형’ 출제를 금지하기 위해 만들어진만큼 대학들의 가이드라인 위반 사례는 곧 본고사 부활 우려로 나타나고 있다. 서울 강서구의 한 학부모는 “당선인이 나서서 본고사가 부활할 리 없다고 하지만, 대학이 마음대로 학생을 뽑는다는데 그럼 무슨 기준으로 뽑을거냐”며 “본고사류의 대학별고사로 가는 것같다"고 했다. 더군다나 지난 14일 서강대 등 일부 사립대가 “수능 성적에 표준점수와 백분율이 표시된다면 정시 모집에서 논술고사를 폐지할 수도 있다”고 밝히면서 혼란에 기름을 붓고 부채질을 했다. 경기도 광명의 한 교사는 “지난해 일부 사립대가 수능 우선 선발 제도를 도입한다고 밝히면서 논술을 준비하던 학생이 급히 방향을 바꾸기도 했다"며 "올해에도 이런 일이 연초부터 벌어지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수능 등급제를 만든 대입제도개혁특별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이인규 소장은 “입시를 대학 자율에 맡기는 건 동의하지만 대학별고사에 대한 공통적인 기준을 만들어야 학부모나 학생들의 혼란이 적을 것”이라며 “대학 입시만큼은 학부모단체나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주문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학생·학부모들 목소리 들어보니 “등급제만 문제삼고 내신정책은 왜 없나” “공부외에 재능 살려주는 학교 생겼으면” “노무현 정부든 이명박 정부든 우리한테 원하는 건 딱 한가지인 것 같아요. ‘친구’를 사귀기 전에 ‘적’을 만드는 거죠.”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무성한 대입제도 얘기가 쏟아지는 것을 보고 한 고교생은 이렇게 말했다. 학생들을 비롯해 학부모 교사 등 교육의 주체들은 분명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지만 새로 들어설 정부가 화답해줄 것이라는 데는 물음표를 달았다. 등급제 문제만 해도 그렇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인수위)가 ’수능 등급제’만을 문제삼고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내신에 대한 정책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경기도의 한 외고에 자녀를 진학시킨 한 학부모는 “신입생 학부모 예비 모임을 갔는데 학부모 대다수가 학교 내신을 준비하는 학원에 자녀들을 보내고 있더라"며 “내신 정책에 대한 얘기는 왜 없느냐"고 되물었다. 사교육비 증대와 그 때문에 발생하는 교육의 양극화 현상에 대한 우려도 컸다. 자녀를 외고에 보내려다 고배를 마신 한 학부모는 “자기소개서를 쓰는데 왜 아빠의 출신대학을 밝혀야 하냐”며 “아빠가 명문대 안나왔다고 떨어지지야 않겠지만 참고사항으로 쓴다는 것 자체도 불쾌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또 “3년 안에 3불 정책이 폐지된다는데 기부금 입학까지 허용되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더 심화될 거다”고 했다. 학생과 학부모들의 ‘희망사항’은 따로 있었다. 올해 자녀를 특성화고에 입학시킨 한 학부모는 “중고교 때 공부 좀 못한 게 뭐라고 애들이 평생 기죽고 살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자율형이든 자립형이든 새로 고교를 세울거면 공부만 시키는 학교말고 다양한 능력을 살려주는 학교도 세웠으면 좋겠다”고 했다. 예비고3 박선희(18)양은 “피아노도 배우고 싶고 미술이나 체육도 하고 싶은데 학교에선 매일 교과서와 문제집만 봐야하고 내 재능이 뭔지 알 겨를이 없다”며 “서울대 나와도 취직하기 어렵다는데 고교 때부터 자기 진로를 결정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야 한다”고 했다. 박새미(18)양은 “우리나라는 대학 안가면 취직도 못하고 그것도 지방대는 무시와 차별 때문에 섣불리 선택할 수도 없다”며 “취직 때문에 가는 거지 대학 가고 싶어서 가는 게 아니다”고 했다. 진학사가 고교생 1742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대통령 당선자에게 바라는 점으로 ‘학벌과 상관없이 능력만으로 취업 할 수 있는 분위기(43%, 740명)’를 만들어 줄 것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일관성 있는 교육정책(23%, 402명)’, ‘사교육이 필요없는 공교육 분위기 조성(21%, 360명)’도 바라는 점 앞순위를 차지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대학자율화’ 방침 다시 논란 일부 사립대들 본고사 ‘꿈틀’ 수능 등급제는 폐지 시기를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애초 교육부는 수능 등급제 개선 시기를 3년 이후로 정했다. 그러나 인수위는 줄곧 총점제로의 회귀가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지난 8일 <한겨레> 기자와 만난 인수위 사회교육문화분과 핵심 관계자는 “당장 올해 수능부터 총점제로 가능하다는 안과 1년 6개월의 시간을 둬야 한다는 안, 3년 뒤에 폐지해야 한다는 안 등 세가지 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14일 이명박 당선인의 신년 기자회견 뒤로는 2009학년도의 경우 등급에다 표준점수와 백분위를 함께 제공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떠오르고 있다. 인천의 한 예비 고3 학생은 “3월에 처음 치르는 모의고사 성적이 실제 수능 성적으로 이어진다고 해서 겨울방학에 받는 스트레스가 엄청나다”며 “그런데 아직 우리가 등급제를 적용받을지 점수제를 적용받을지도 모른다는 게 짜증스럽다”고 했다. 그는 또 “죽음의 트라이앵글은 ‘각’이 있어서 형체라도 있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그저 ‘카오스’ 상태다”고 했다. 논술 등 대학별 고사의 방향도 마찬가지로 갈피를 잡을 수 없다. 11일 치러진 서울대 자연계 논술의 일부 문항이 논술 가이드라인을 어겼다는 지적을 받았다. 고려대 자연계 논술도 마찬가지다. 논술 가이드라인이 ‘본고사형’ 출제를 금지하기 위해 만들어진만큼 대학들의 가이드라인 위반 사례는 곧 본고사 부활 우려로 나타나고 있다. 서울 강서구의 한 학부모는 “당선인이 나서서 본고사가 부활할 리 없다고 하지만, 대학이 마음대로 학생을 뽑는다는데 그럼 무슨 기준으로 뽑을거냐”며 “본고사류의 대학별고사로 가는 것같다"고 했다. 더군다나 지난 14일 서강대 등 일부 사립대가 “수능 성적에 표준점수와 백분율이 표시된다면 정시 모집에서 논술고사를 폐지할 수도 있다”고 밝히면서 혼란에 기름을 붓고 부채질을 했다. 경기도 광명의 한 교사는 “지난해 일부 사립대가 수능 우선 선발 제도를 도입한다고 밝히면서 논술을 준비하던 학생이 급히 방향을 바꾸기도 했다"며 "올해에도 이런 일이 연초부터 벌어지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수능 등급제를 만든 대입제도개혁특별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이인규 소장은 “입시를 대학 자율에 맡기는 건 동의하지만 대학별고사에 대한 공통적인 기준을 만들어야 학부모나 학생들의 혼란이 적을 것”이라며 “대학 입시만큼은 학부모단체나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주문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입시제도 관련 발언들
학생·학부모들 목소리 들어보니 “등급제만 문제삼고 내신정책은 왜 없나” “공부외에 재능 살려주는 학교 생겼으면” “노무현 정부든 이명박 정부든 우리한테 원하는 건 딱 한가지인 것 같아요. ‘친구’를 사귀기 전에 ‘적’을 만드는 거죠.”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무성한 대입제도 얘기가 쏟아지는 것을 보고 한 고교생은 이렇게 말했다. 학생들을 비롯해 학부모 교사 등 교육의 주체들은 분명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지만 새로 들어설 정부가 화답해줄 것이라는 데는 물음표를 달았다. 등급제 문제만 해도 그렇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인수위)가 ’수능 등급제’만을 문제삼고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내신에 대한 정책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경기도의 한 외고에 자녀를 진학시킨 한 학부모는 “신입생 학부모 예비 모임을 갔는데 학부모 대다수가 학교 내신을 준비하는 학원에 자녀들을 보내고 있더라"며 “내신 정책에 대한 얘기는 왜 없느냐"고 되물었다. 사교육비 증대와 그 때문에 발생하는 교육의 양극화 현상에 대한 우려도 컸다. 자녀를 외고에 보내려다 고배를 마신 한 학부모는 “자기소개서를 쓰는데 왜 아빠의 출신대학을 밝혀야 하냐”며 “아빠가 명문대 안나왔다고 떨어지지야 않겠지만 참고사항으로 쓴다는 것 자체도 불쾌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또 “3년 안에 3불 정책이 폐지된다는데 기부금 입학까지 허용되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더 심화될 거다”고 했다. 학생과 학부모들의 ‘희망사항’은 따로 있었다. 올해 자녀를 특성화고에 입학시킨 한 학부모는 “중고교 때 공부 좀 못한 게 뭐라고 애들이 평생 기죽고 살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자율형이든 자립형이든 새로 고교를 세울거면 공부만 시키는 학교말고 다양한 능력을 살려주는 학교도 세웠으면 좋겠다”고 했다. 예비고3 박선희(18)양은 “피아노도 배우고 싶고 미술이나 체육도 하고 싶은데 학교에선 매일 교과서와 문제집만 봐야하고 내 재능이 뭔지 알 겨를이 없다”며 “서울대 나와도 취직하기 어렵다는데 고교 때부터 자기 진로를 결정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야 한다”고 했다. 박새미(18)양은 “우리나라는 대학 안가면 취직도 못하고 그것도 지방대는 무시와 차별 때문에 섣불리 선택할 수도 없다”며 “취직 때문에 가는 거지 대학 가고 싶어서 가는 게 아니다”고 했다. 진학사가 고교생 1742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대통령 당선자에게 바라는 점으로 ‘학벌과 상관없이 능력만으로 취업 할 수 있는 분위기(43%, 740명)’를 만들어 줄 것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일관성 있는 교육정책(23%, 402명)’, ‘사교육이 필요없는 공교육 분위기 조성(21%, 360명)’도 바라는 점 앞순위를 차지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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