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학교 교사를 사칭한 네티즌이 글을 올린 인터넷 사이트 화면.
[분석] 아나운서 비하 ‘조선’기자 ‘기소’와 비교해보면 여자아나운서들을 인터넷 글로 모욕한 <조선일보>의 한 기자가 지난 13일 벌금 200만원에 약식기소됐다. 이 소식은 기자에게 ‘가짜 촌지교사’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를 살펴보게 만들었다. ‘가짜 촌지교사’의 인터넷 거짓 글쓰기의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조선일보> 기자는 지난해 12월 자신의 블로그에 “인생의 쓴 맛 한번 본 적 없이 멍청한 눈빛에 얼굴에 화장이나 진하게 한 유흥업소 접대부 같은 여성 아나운서가 등장하는 국영방송의 한 심야 프로그램…”이라고 비난했고, 검찰은 모욕죄를 적용했다. 그렇다면, 지난달 31일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가짜 촌지교사’는 법적 책임을 졌는가?
글을 쓴 이는 “저는 동작구 초등학교 3년차 교사입니다. 이번에도 5학년을 맡았고 역시 요즘 새학기라 학부모들 상품권을 가장 많이 준비하시더라구요. 아예 촌지가 없다는 말은 안하겠습니다. 하지만 줘놓고 담임교사 앞에선 굽실거리고 뒤에 가서 욕하지 마십시오…”라는 거짓글을 썼다. “중학교 때 촌지를 주고받는 교사와 학부모 때문에 상대적 피해를 입었다”는 이 20대 무직 여성의 거짓글은 인터넷과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됐다. 교육계는 가짜교사의 거짓글로 사회적 비난을 받았고, 불신의 상처는 다시 자극되었다. 아나운서 비하한 조선일보 기자는 ‘기소’…가짜 촌지교사는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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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지는 당연하다’는 투로 글을 쓴 이 20대는 명예훼손으로 최근 입건됐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61조는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에 대해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특정집단을 겨냥한 사이버상의 음해가 실제로 형사처벌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다. “‘경찰이 다 썩었다’ 비난했다고 명예훼손으로 처벌못해” 고려대 하태훈 교수(형법)는 “집합명칭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고려할 수 있지만, 피해자를 특정하기에는 규모가 크다”며 “‘경찰이 다 썩었다’는 식의 비난을 했다고 명예훼손으로 처벌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하 교수는 “교사 전체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낳은 것은 사실이지만, 동작구에 있는 모든 초등학교를 지칭했다고 보기도 어렵고 동작교육청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보기에도 현행법 해석상 어렵지 않을까 싶다”는 의견을 냈다. 연세대 박상기 교수(형법)도 “명예가 훼손당했다고 볼 집단의 특정성이 약하고 판례를 봤을 때는 처벌이 쉽지 않다”며 “법원이 최종판단을 내리겠지만 동작구에 있는 초등학교 교사 전원이 피해자라고 보기에는 특정성이 인정되기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동작교육청에 확인한 결과 서울 동작구에 있는 초등학교 교사는 19개교 860명에 이르고, ‘3년차 여교사로 5학년 담임’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조선일보> 기자의 경우와 비교해도 차이가 뚜렷하다. 해당 기자가 쓴 “요즘 정권의 나팔수, 끄나풀이라는 지적에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TV에……인생의 쓴 맛 한번 본 적 없이 멍청한 눈빛에 얼굴에 화장이나 진하게 한 유흥업소 접대부 같은 여성 아나운서가 등장하는 국영방송의 한 심야 프로그램”은 <한국방송>의 ‘생방송 시사투나잇’ 진행 여자 아나운서를 가리킨다는 점을 쉽게 추정할 수 있었다. “기분나쁜 짓 했다고 처벌 못해 죄형법정주의 따라야” 법적 처벌이 어렵다는 면에서, 전문가들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근거로 들고 있다. 이화여대 강동범 교수(형법)는 “기분 나쁜 짓을 했다고 더 처벌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며 “교사들은 기분이 나쁘지만, 명예훼손을 입은 주체가 없어 처벌이 곤란할 것 같다”고 말했다. 건국대 손동권 교수(형법)도 “형법은 법률에 없으면 처벌할 수 없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따르는 만큼 처벌은 법적 근거에 따라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며 “특정 개인이 아니라, 추상적인 교사 전체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처벌하기는 막연하다”고 의견이다. 이런 점 때문에, 서울 노량진경찰서 관계자도 “IP 추적까지 벌여 글을 올린 사람을 찾아냈지만, 특정인을 비방하지 않았고 고소 등이 없는 상태에서 판례적용 등도 애매해 고민했다”고 밝혔다. 동작교육청 고소하지 않기로 “촌지에 대한 피해의식 있는 만큼 교육계도 공동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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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여성의 행위에 대한 민법상의 손해배상 등도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 동작교육청이나 동작구 초등학교 교사들이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작교육청 황병렬 학무국장은 14일 “언론에서 교사의 글이 아니라는 사실을 크게 보도했고, 공공기관이 고소 등을 하기도 부담이 따른다”며 “과거 촌지를 받은 교육계에 대한 피해의식 때문에 일어난만큼 교육계 공동의 책임도 있다는 생각에 고소는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양대 이덕환 교수(민법)는 “명예훼손 등 손해를 입은 피해자가 청구를 하지 않았으므로 손해배상 등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방송 아나운서들이 명예훼손 및 모욕죄로 <조선일보> 기자를 고소하고 적극적인 처벌의사를 밝힌 점과 다르다. 그러나, 경찰에 입건 지휘를 내린 검찰은 명예훼손 요건이 성립한다고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14일 “명예훼손 피해자가 ‘동작구 초등학교 3년차 5학년 담임 여교사’가 아니라, 동작구 초등학교 교사 전체라고 특정할 수 있다”며 “해당 글을 본 사람들에게 ‘동작구 초등학교 교사들이 촌지를 받는구나’라는 인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또 ‘반의사불벌죄’인 명예훼손죄는 강간죄처럼 고소·고발이 있어야만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친고죄와 달리, 직접 피해자의 고소가 없어도 “처벌하지 말아달라”는 적극적 요청이 없었기 때문에 법리만 따지면 처벌할 수 있다. 검찰 “‘동작구 초등교사들 촌지받는다’라는 인식 심어줬으니 처벌가능” 다만 검찰 관계자도 “경찰에 입건지휘를 내리기는 했지만, 해당 여성이 반성하고 있어 실제로 기소를 할지는 추가조사를 통해 결정할 방침이다”고 덧붙였다. 사실,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도 논란이지만,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하느냐’도 의견이 엇갈린다. 고려대 하태훈 교수는 “논란을 벌일 수는 있지만 표현의 자유 정도로 남겨둬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교사를 사칭했고 사실을 과장하기는 했지만, 교사의 촌지 문제는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부분이며, 모든 문제에 대해 법에 자세한 규정을 두고 처벌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을 냈다. 사이버문화연구소 라도삼 연구원도 “파장을 예측하지 못한 한 개인에 ‘명예훼손’ 등으로 가혹한 법적책임을 물음으로써 자유공간이라는 인터넷의 특성을 훼손하기보다는 인터넷상의 자율적인 정화에 맡기면서 인터넷상에서의 글쓰기가 갖는 명예훼손 등 폭발성에 대한 교육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무책임한 언론 탓에 파장이 커졌고, 해당여성이 받은 도덕적 비난으로 이미 해당 행위에 상응하는 ‘사회적’ 책임을 졌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하지만, 연세대 박상기 교수(형법)는 이보다 엄격한 잣대를 제시한다. 박 교수는 “인터넷 공간에서 공적인 인물이나 일에 대해서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패러디 등은 표현의 자유의 영역으로 보호받아야 하지만, 자신의 지위를 사칭해 거짓경험을 얘기한 것은 표현의 자유와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허위 사실을 근거로 비방하는 행위는 처벌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동작교육청 황병렬 학무국장도 “거짓 글로 교사들의 교권을 엄청나게 실추시켰는데도 법 규정을 따져 피해자가 막연하다고 처벌하지 않는다면 이해할 수 없다”며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가, 또다른 특정 집단의 명예를 실추하는 일이 인터넷상에서 되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거짓 글을 써, 교육계에 대한 심각한 불신과 사회적 혼란 등 분명한 피해를 낳은 행위가 처벌되지 않는다면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사이버 개념 없던 때 만들어진 ‘명예훼손죄’ 시대맞게 손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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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킨 연예인 ‘엑스파일’유출사건을 보도한 신문. 문건을 흘린 당사자는 “재미있는 게 있다”며 별생각없이 친구에게 문건을 넘겼지만, 파문은 인터넷을 통해 걷잡을 수 없이 퍼졌고 언론은 ‘사이버 테러’라고 규정했다. <한겨레>자료사진.
이때문에 일부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관련 법 등을 보완할 필요성도 제기하고 있다. 박상기 교수는 “명예훼손죄 등이 사이버공간 등은 상상도 하지 못한 시절에 마련된 것이다 보니 현행법 관련규정이 미흡하다”며 “구두나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전파력이 큰만큼, 사이버상의 명예훼손 등을 어느 범위까지 처벌할지 논의하고, 처벌 규정 등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손동권 교수도 “인터넷 공간의 문제가 커지는 것에 맞춰 적정한 처벌 근거 마련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세 치 혀가 칼보다 무섭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인터넷 시대는 ‘혀’보다 ‘타(打)’가 더 잘 어울린다. 검찰은 <조선일보> 기자에게 모욕죄를 적용하면서, “전파가능성이 있는 만큼 불특정 다수가 인식할 수 있는 ‘공연성’이 있으며, 사적인 일기장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해당 기자는 사회적 비난이라는 형태로도 책임을 졌고, 그 책임은 사법적 처벌에 비할 수 없는 불명예로 남았다. 사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가짜 촌지 교사’ 사건은 인터넷 글쓰기의 책임을 잊지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자판을 두드리기 전에. 해당 여성은 경찰 등에 ‘별 생각 없이 올린 글이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점을 반성하고, 동작구 교사 등에게도 용서를 빌테니 너그럽게 봐달라’고 호소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엔터키를 친 뒤는 늦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순배 김태규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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