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광 이우학교 교감
‘영어=국력’ 정말 그럴까
당대인들의 ‘교육’ 관련 인식소(認識素)는 특정 개념으로 단순화되는 경향이 짙다. 그런 탓에 교육담론에서조차 ‘시험’, ‘점수’, ‘학원’, ‘입학제도’, ‘대학’ 등의 단어들이 중심어가 된다. 학교교육과 관련해서도 다르지 않다. 학생들의 ‘성장’이나 ‘배움’, ‘실존적 성찰’이나 ‘자기발견’에 대한 고민보다는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방법적·기술적 측면에 대한 관심이 더 높다. 따라서 학교에서는 텍스트(교과서)를 매개로 하는 기능적 관계만이 있고 장작 ‘삶’은 사라진 지 오래다.
문제는 이러한 왜곡이 더욱 강화될 조짐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 인수위원회의 발표를 보건대, ‘교육 = 영어 공부’의 등식이 공식화될 소지가 다분하다.
인수위 ‘영어공교육 완성 프로젝트’의 영어 활용 능력 향상을 통해 국제 경쟁력을 담보하겠다는 목표(프로젝트 추진 전략의 현실적합성 문제는 차치하자)를 달성하는 일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우선, 영어 유창성 그 자체가 바로 글로벌 경쟁력은 아니다.
영어 활용 능력이 경쟁력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즉 공적 가치에 대한 민감성, 다양한 사유 실험의 경험, 인문학적 소양, 미래감각, 경계를 넘나드는 관계 경험 등이 전제된 영어 능력이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 교육을 통해 이러한 전제 요소들을 어떻게 신장시킬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애석하게도 이런 고민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영어’가 공교육 정상화의 핵심 과제는 아니다. ‘학생들의 삶이 가능한 학교 만들기’가 핵심이 되어야 한다. ‘삶’이 있는 학교에서는 텍스트(교과서) 그 이상의 배움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영어’가 논의의 중심에 놓이는 조건에서는 학생들의 ‘배움의 퇴행’(쓸데없는 것을 과잉 학습하는 과정에서 정작 배워야 할 내용들을 등한시한 나머지 자신의 성장동기를 상실하는 부조리)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나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이 학교가 학생들의 전인적인 성장과 수준 높은 배움이 가능한 ‘공공하는 학교공동체’로 변모하기 위해서는 어떤 전제조건을 충족시킬 것이지, 어떤 참조체제를 어떻게 개발하고 활용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먼저 제시하기 바란다.
이수광 이우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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