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승에 오른 피터는 심리적 부담감 때문에 상대의 공을 받아치지 못한다. 시속 200㎞가 넘는 공이 코트를 가로지르는 시간은 0.4초도 안 되기 때문에 선수들은 거의 본능적인 감각으로 공을 친다.
윔블던
2004년, 감독 리처드 론크레인, 출연 폴 베타니, 커스틴 던스트 <윔블던>은 영국 윔블던에서 벌어지는 테니스 경기를 소재로 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주인공 피터(폴 베타니)는 한때 세계 랭킹 11위까지 올랐지만 지금은 아줌마들을 상대하는 테니스 강사 자리를 얻는 것에 만족해야 할 만큼 한물간 선수다. 그는 우연히 주어진 윔블던 경기 출전을 통해 세계적인 테니스 스타인 리지(커스틴 던스트)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이를 계기로 생애 최고의 경기를 펼치게 된다. 그러나 결승전에서 자신감이 부족한 피터는 빠르게 날아오는 상대 선수의 공에 끌려다니며 공에 손도 못 댄다. 야구 배트와 달리 타격면이 그토록 넓은 테니스 라켓으로 공을 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까? 영화에서 피터의 상대 선수 공은 시속 144마일(약 232km)로 최상급 야구 선수의 공보다 훨씬 빠르다. 세계적인 선수들은 서브를 할 때 시속 200㎞ 이상인 경우가 많으며, 이 때 공이 코트를 가로질러 건너오기까지는 0.4초도 걸리지 않는다. 뇌에서 근육까지 명령이 전달되는 데 걸리는 시간이 0.2초나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공을 치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세를 잡고 근육을 움직이는 시간을 고려하면 공을 보고 반응해서 치는 것은 어렵고, 미리 공의 위치를 예상해서 쳐야 한다. 피터는 경기를 시작하면서 이미 심리적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공을 치기 어려웠던 것이다. 피터가 공을 놓쳐 뒤에 있던 ‘볼 보이’가 부상을 당하자, 해설자는 예전 나무 라켓을 쓰던 시절이 좋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전통적으로 사용되던 나무 라켓은 무게가 350g 정도였고, 요즘의 탄소나 티타늄, 그래파이트 재질의 라켓은 250g 정도밖에 안된다. 따라서 무거운 나무 라켓보다는 신소재 라켓들이 공을 빨리 치는 데 훨씬 유리하다. 나무 라켓은 신소재 라켓보다 무르기 때문에 공을 칠 때 많이 휘는 문제점도 있다. 라켓으로 공을 치면 라켓의 프레임도 순간적으로 휜다. 흔히 잘 휘는 것이 탄력이 있어 잘 튀게 할 것 같지만 그건 그때그때 다르다. 공이 라켓과 충돌할 때, 공의 운동에너지가 라켓 프레임의 탄성에너지로 저장되면서 그만큼의 에너지의 손실이 발생한다. 라켓과 공이 접촉하는 시간은 0.005초 정도로 매우 짧은데, 라켓 프레임이 휘었다가 다시 돌아오는 데는 이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프레임이 다시 펴졌을 때는 이미 공이 라켓을 떠나 버리기 때문에 라켓은 공으로부터 받은 에너지를 다시 공에 돌려 주지 못한다. 많이 휘는 나무 라켓보다 딱딱한 신소재 라켓이 충돌할 때 탄성에너지로 덜 바뀌기 때문에 에너지 손실이 적고, 그만큼 공을 더 멀리 가게 한다. 라켓 줄도 중요한 구실을 한다. 라켓 줄을 탱탱하게 매면 공이 더 잘 튕겨 나갈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줄이 탱탱하면 공이 많이 찌그러지고, 공의 변형에 에너지가 사용되면 그만큼 손실이 발생한다. 프로선수들이 줄을 탱탱하게 매는 것은 공을 자유자재로 다루기 위한 것이지 속력을 높이기 위한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공을 라켓의 ‘스위트 스포트’에 맞히는 것이다. 공이 맞았을 때 손에 좋은 느낌이 전해지는 바로 그 부분이 스위트 스포트다. 최원석/김천중앙고 교사 nettrek@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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