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를 졸업한 뒤 나름의 꿈을 펼치고 있는 젊은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대학에 진학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건축 현장에서 구슬땀 흘리는 이도 있고, 하고 싶은 일을 끊임없이 기획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재학 시절 어떤 미래를 꿈꾸었고, 진로 고민을 어떻게 풀어 나갔을까? 일반 학교 학생들과는 무엇이 다르고, 또 같을까? 직업도, 성격도 제각각인 대안학교 졸업생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사회=학교 졸업한 뒤 지금은 어떻게 지내나? 자기 소개도 해 달라.
김바다(이하 김·20)=담양 한빛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 인문학부에 진학했다. 지금은 2학년이고, 전공은 철학이다.
이재영(이하 이·19)=올해 2월에 경북 군위에 있는 간디자유학교를 졸업했다. 1기 졸업생이다. 요즘은 산청 간디생태마을 만드는 건축 현장에서 일당 6만원을 받으며 ‘노가다’ 하고 있다.
박재식(이하 박·22)=2003년 12월에 하자 청소년작업장학교(이하 하자학교)를 졸업하고 쭉 문화기획자로 일했다. 요즘에는 국제구호활동에 관심이 많아 배우러 다닌다. 한 가지 일에 얽매이지 않고 재미있는 것을 찾아 하며 살고 싶다. 하자학교 모토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먹고 살자’다.
“학교행사등 기회하다 기획자로”
사회=그런 학교 분위기가 진로를 선택하는 데 영향을 줬을 것 같은데, 어떤가?
박=물론, 하자센터를 알고부터 인생이 꼬였다.(웃음) 나는 음향기술자가 되고 싶어서, 유학을 가려고 고등학교를 그만뒀다. 한국 사회에서는 대졸만 따지니까, 고졸이냐 검정고시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음향을 하려면 악기도 알아야 해서 하자센터에서 배우기로 했다. 강습료가 제일 싸니까.(웃음) 그런데 그 때부터 뭐든지 기획을 하는 상황이 됐다. 심지어 학교도 기획했다. 내가 하자센터에 왔을 때는 아직 하자학교를 세우기 전이었다. 친구 다섯 명과 함께 하자학교는 무엇을 배우는 곳인가, 수업은 하루에 몇 시간이나 하고 몇 학점을 이수해야 졸업을 시켜 줄까, 그런 것들을 고민하며 학교를 만들었다. 입학한 다음에도 학교 행사나 축제를 기획했다. 그런 걸로도 학점을 주니까 재미있는 일만 계속 한 거다. 그러다 결국 문화기획자가 되었다.(웃음)
이=나는 기획 같은 거 특별히 안 하고 사는데….(웃음) 중학교 때는 놀러 다니고 말썽만 부렸다. 부모님이 걱정이 되셨는지 대안학교를 알아 보셨고, 예비학교에 참여했다가 편안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입학을 했다. 1학년 때는 낮 12시까지 자고, 오후 내내 축구만 하며 살았다.
김=헉, 그렇게 학교 생활 해도 되나?
박=이름이 ‘자유학교’니까 그렇지. 우리는 뭐든 해야 하니까 ‘하자학교’고. 대안학교도 학교 이름 보고 가야 한다.(일동 웃음)
이=좀 과장한 거고, 자유로운 시간을 빈둥거리며 보냈다는 얘기다. 그러다 2학년이 되고 후배들이 생기니까 쪽팔리더라.(웃음) 그래서 공부도 좀 하고, 내가 뭘 잘 하나 뭘 원하나 생각해 봤다. 몸을 움직이면서 하는 일과 패션에 관심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대구 시내에서 옷 장사나 신발 장사를 해 보고 싶어 밑천을 좀 만들기로 했다. 지금은 건축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건축 일, 목수 일도 재미있더라. 졸업식날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말했다. 즉흥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고. 남들은 이것저것 하면 죽도 밥도 안 된다고 하는데, 뭘 해 봐야 죽이 되는지 밥이 되는지 알 것 아닌가.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나한테 맞는 일을 찾을 거다.
사회=학교 분위기가 자유로워서 오히려 자신의 진로를 찾는데 방해가 된다고 느낀 적은 없었나? 억지로라도 공부 좀 시키지…, 그런 원망을 한다든지.
“선생님들이 늘 믿어주고 격려”
이=간디자유학교 학생들도 공부 무척 많이 한다. 나만 안 한 거다.(웃음) 선생님들은 무슨 일이든 잘 할 거라고, 늘 믿어 주고 격려해 줬다. 그런 분위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오히려 내가 호기심이 생기고, 궁금한 게 많아진 것이 선생님과 친구들 덕택이라고 생각한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게 됐다. 예전에는 낯선 곳에 가면 부끄럼 타고(웃음) 낯가림이 심해 뚱하게 앉아 있곤 했다. 이제는 궁금하다. 남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사는지, 거기 가면 뭐가 있는지. 형들(김과 박)을 만나러 서울까지 일곱 시간이나 걸려 오는 동안에도 신나고 기분이 좋았다. 근데 바다 형은 대학 가니까 좋은가, 재미있나?
김=재미있을랑 말랑 한다.(웃음) 나는 엔지오(NGO) 활동가가 되고 싶었다. 박원순 변호사를 존경하고, 그런 사람이 되는 게 꿈이었다. 동네에 한빛고 다니는 형에게 학교 이야기를 듣고, 내 꿈을 이루려면 한빛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입학했다. 첫 지리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칠판에 한국 지도를 그리시더니 독도를 가리키며 “이게 무슨 섬이냐”고 묻더라. 아이들이 “독도”라고 하니까 선생님이 “다케시마다. 브리태니커 사전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고 하셨다. 아이들이 항의를 했더니 “그럼 이 섬이 독도라는 것을 증명해 보라. 나를 설득해 보라”고 하셨다. 그 때 ‘역시 한빛에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학과를 선택한 것도 ‘법은 왜 지켜야 하는가’ 같은 토론을 벌이는 ‘철학사 여행’ 수업을 들으면서 결정한 것이다. 여러모로 학교 생활과 진로가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 같다. 그런데 고3이 되니까 학교 선택이 문제였다. 성공회대에 엔지오학과가 있다는 얘기도 들었고 마침 녹색대학도 생겨 고민을 했는데, 결국 고려대로 결정했다. 대안학교 나오고 엔지오 활동가가 되겠다면서 점수에 맞춰 학벌 따려고 대학 가는 거 아닌가 하고, 스스로 자꾸 돌아보게 되더라.
이=나도 수능 시험을 본 적이 있다. 고2 때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나서 간디자유학교 친구들과 함께 수능 시험을 치렀다. 진학하려고 해서가 아니라 너무 궁금해서. 기대를 많이 하고 상상도 해 봤다. 창의력 있는 인재를 고르는 대한민국 최고의 시험이라는데 혹시 대안학교 학생들이 문제를 더 잘 풀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너무 실망했다. 친구들도 충격을 많이 받았다. 이런 문제 풀려고 그렇게 공부해서 대학 가는구나. 그 시험에 영혼을 바치고 비관해서 자살까지 한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대학에서 정말 배우고 싶은 게 생기면 모르지만, 지금은 진학할 생각이 없다.
박=나는 아직 고졸 검정고시 안 봤다. 그런데 살다 보니 ‘고졸’에게만 재미있는 기회를 주는 경우가 많아서, 또 사는 게 불편해서 시험을 봐야 할 것 같다.(웃음)
사회=바다씨는 고려대에 진학한 것 때문에 아직도 갈등을 하나?
김=이제는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하는 고민을 똑같이 안고 살았고, 이게 내 한계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학 1학년 생활이 힘들어서 역시 성공회대나 녹색대학을 갈 걸 그랬나 생각하긴 했다.
이=뭐가 그렇게 힘들었는데?
김=한마디로 ‘왕따’였다.(웃음) 한빛고에서는 선생님과 학생들이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게 자연스럽다. 그런데 대학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데 앞에 앉은 친구가 <조선일보> 기자가 되는 게 꿈이라고 하더라. 나는 못마땅해서가 아니라 그 친구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서 ‘그 신문사는 이런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를 죽 했더니 친구가 ‘잠깐 갔다 올게’ 하고 나가서 다시 돌아오질 않았다.(일동 웃음) 나는 프로젝트를 같이하는 것도 좋아한다. 학교에 핀 들꽃을 관찰해서 들꽃 지도도 만들고, 쓰레기 제로 운동도 하고 싶고. 그런데 같이하려는 친구가 없어서 혼자 이것저것 했더니 주변에서 ‘너는 혼자서도 참 재미있게 논다’고 했다. 그래서 고민했다. ‘그럼 재미없게 놀면 친구가 생기는 건가?’(일동 웃음) 당시엔 나름대로 심각했다.
박=대학생들한테 들꽃 지도 만들자면 당연히 왕따를 당하지.(일동 웃음) 지금도 그런 거 하고 노나?
김=2학년이 되면서 한빛고 생활을 그리워하는 대신 대학 생활을 더 잘하기로 했다. 예전에 선생님이 그러셨다. ‘소금은 바다에서 나지만 바다를 그리워하지 않고 자반고등어 속에 있거나 김칫독 속에 있어야 소금이다’라고. 나도 이제 김칫독 속의 소금이 되려고 한다. 다행히 들꽃 지도를 같이 만들 친구들도 생겨서 훨씬 재미있어질 것 같다.(웃음)
“자신의 위치 진지하게 돌아봐야”
이=내 졸업논문 제목이 ‘간디 개구리’다. 간디 우물에 사는 개구리가 되는 것처럼 무서운 일은 없을 것 같다. 3년 그렇게 산 걸로 대안학교 세상이 되는 것도 아니고, 우리처럼 생각 안 하는 사람들하고도 더불어 살아야 하니까. 그렇지만 대안학교 졸업한 사람들이 좀 잘 살아야 된다는 생각은 한다. 물론 거만하면 안 된다. 학교 3년 다닌 걸로 인생이 갑자기 대안적으로 바뀌지는 않으니까. 나는 그냥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
김=대안학교에서도 도난 사건도 일어나고 싸움도 벌어진다. 하루 종일 선생님, 친구들과 같이 있다 보면 내적인 고난과 상처가 더 많을 수도 있다. 나는 대안학교 나온 친구들에게 자기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진지하게 되돌아 보자고 말하고 싶다. 자신이 살았던 3년을 정리하고 생각해야 현실을 잘 꾸려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박=나는 ‘사실은 졸업하고 보니 똑같다’고 말하고 싶다. 대안학교를 가든지 일반 고등학교를 가든지 잠깐의 선택이다. 길게 보면 경험은 그저 기회가 아닌가. 대안학교 안 나온 사람들이 교육학과 졸업하고 대안학교 교사 하면서 대안학교를 경험하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가장 불행한 건 부모님이 우겨서 대안학교에 입학하는 친구들이다. 대안학교라는 경험을 너무 특별하게 생각하는 부모님이 없었으면 좋겠다. 사회·정리 이미경 기자
friendlee@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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