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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광대인형’ 만나 감탄하고 놀라고…

등록 2005-04-17 17:21수정 2005-04-17 17:21

정재서의 동양신화 속으로

동쪽의 오랑캐가 침범했다는 급보를 받고 부랴부랴 귀국길에 오른 주목왕이 도중에서 겪은 이상한 일은 무엇일까?

주목왕 일행이 아직 주나라에 도착하기 전, 서쪽의 어느 지역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곳의 한 부족에 언사(偃師)라는 솜씨 좋은 기술자가 있었다. 바쁜 일정이었음에도 주목왕은 언사의 솜씨가 어떠한지 보고 싶어 그를 불러들였다. 언사는 혼자 오지 않고 한 사람을 데리고 왔다. 그러고는 자기가 만든 광대 인형이라고 소개를 했다. 왕이 바라보니 그는 외모와 하는 짓이 정말 사람과 똑같았다. 왕은 약간 의심이 들었지만 무슨 일이든지 시켜 보도록 하였다.

인형은 시키는 대로 춤도 추고 노래도 불러서 보는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그런데 재주가 끝나갈 무렵 인형이 왕의 옆에서 구경을 하던 예쁜 후궁에게 윙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아직도 의심을 풀지 못하고 있던 왕은 크게 노하였다. “네 놈이 감히 산 사람을 갖고 나를 속이다니? 여봐라, 저 언사 놈을 베어라.” 왕이 호령을 하자 군사들이 언사를 잡아다 죽이려고 하였다.

그러자 언사는 깜짝 놀라 급히 광대 인형을 불러 눈앞에서 해체하였다. 그것은 가죽과 나무를 아교로 붙이고 옻칠과 단청을 해서 만든 진짜 인형이었다. 이를 보고 왕의 노여움은 놀람과 감탄으로 바뀌었고 언사에게 극진한 대접을 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생각나는 것은 요즘 영화에서 많이 출현하는 사이보그나 로봇 같은 기계 인간이다. 그런데 우리는 언사의 광대 인형 이야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인형은 언사가 시키는 대로 잘 해서 사람과 다름이 없었지만 뜻밖에도 후궁에게 윙크를 해서 주인 언사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렸다. 여기에서 고대 동양인들의 기계 인간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즉 기계 인간은 비록 인간과 똑같은 일을 할 수 있지만 언젠가 그것을 만든 인간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고대인들은 인간이 만든 기계 문명에 대해서는 100% 신뢰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생각은 오늘날의 공상과학 영화에서도 반영되어 있다. 인간이 만든 로봇 또는 우수한 과학 기술이 결국 인간을 파멸시킨다는 주제는 공상과학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주목왕은 많은 모험을 겪은 뒤 서쪽으로의 긴 여행을 마치고 고국에 돌아온다. 그렇다면 주목왕의 이 유명한 여행의 의미는 무엇인가? 주목왕 이전의 주나라는 몹시 쇠퇴하였다고 한다. 주목왕에 이르러 주나라는 다시 일어나게 되는데 주목왕의 성공적인 변방 여행은 변방 세력에 대한 주나라 왕권의 확립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서쪽으로의 긴 여행 이야기는 주목왕이 변방의 세력들과 투쟁하여 기울어진 주나라를 다시 일으키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신화에서의 여행길은 이처럼 숭고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이나 노력을 상징한다.


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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