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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저희들끼리 신난 토의학습실 풍경

등록 2005-04-17 18:29수정 2005-04-17 18:29

살아있는 교육…“어쭈, 제법인데”

도서실에 바로 잇대어 ‘토의학습실’이라는 교실이 있다. 평소에는 교과 모둠수업 교실로 쓰이지만, 점심시간이나 방과 뒤에는 사잇문(벽을 터서 문을 냈다)을 열어서 보조 도서실로 활용하는, 이를테면 다용도 교실이다.

이 교실은 임자가 따로 없다. 특히 방과 후 시간에는 먼저 ‘찜’을 하는 사람이 임자다. 학생회가 차지했다가, 일이 생기면 동아리가 들어차고, 어떤 때는 회의실이 되기도 한다. 가끔은 독서를 핑계 삼아 호젓하게 둘이 마주 앉아 연애를 하다가 가는 녀석들도 있다.

요즘 토의학습실은 동아리 아이들로 북새통이다. 우리 학교는 신문반·도서부·만화부·영상반·방송반 등의 동아리가 있는데, 활동 내용이 제법 실속이 있다. 처음에는 ‘코딱지만한 중학생들이 하면 얼마나 하겠는가?’ 했는데, 속내를 살펴보니, ‘어쭈, 제법인데’ 싶었다. 무엇보다 ‘자치’가 살아 있다. 동아리방이 따로 없으니, 모집공고 포스터를 만들고, 선전 연습을 하고, 면접시험을 치르고 하는 일련의 과정이 대부분 토의학습실에서 이루어졌다. 바로 옆에 있는 덕분에 신문반과 만화부의 치열했던 신입생 모집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는데, 이게 아주 구경거리였다.

면접하는 것을 슬쩍 넘겨다보니, 응시생들을 다루는 솜씨가 여간이 아니다. 호되게 다그치기도 하다가, 독도 문제 같은 시사성 질문을 던져 놓고 느긋하게 지켜보는 그 지엄함이란. (면접을 보는 쪽과 당하는 쪽의 차이랬자 고작 1년일 뿐일진대, 그 1년 연륜이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이렇게 신입부원이 확정되면, 주말쯤 졸업한 동아리 선배가 찾아와 ‘성대한’ 환영회를 열어 준다. 먹을 것을 나누며, 동아리 활동은 어찌해야 하는 것이며,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고등학교라는 데는 또 어떠한 곳인지 등 한바탕 후배교육을 펼치는 것이다. 요즘 며칠째 신문반이 토의학습실에 기거하며 신문을 만들고 있다. 서로 가르치고 배우며, 기획하고 취재하고 기사 쓰고 교정을 보는 모든 과정을 스스로 해내고 있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날개’라는 제호의 신문은 아이들에게 아주 인기가 높다.)

옆에서 지켜보매, ‘살아 있는 교육’이 따로 없다.


누가 시킨다고 하겠는가. 저희들끼리 하는 일이라 신이 나고, 창의력이 만발하며, 갈등도 거뜬거뜬 뚫고 나오는 것일 터. 흔히 교육의 중요한 지향점으로 꼽히는 문제 해결 능력이나 관계성 회복의 가능성도 이런 틈새에 숨어 있지 않겠는가. 아이들의 손발을 묶고 있는 어른들의 지나친 염려와 하루 네댓 시간의 학원공부가 그래서 더 아쉽다. 학벌 사회는 잃는 게 참 많다. 이상대/

서울 신월중 교사

applebighead @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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