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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편견에 시드는 퀴리부인 꿈

등록 2005-04-17 19:11수정 2005-04-17 19:11

이화여대 와이즈거점센터는 2003년 흥미로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전국적으로 여학생 1645명, 남학생 1084명을 표집해 수학과 과학에 대한 관심과 흥미도를 조사했더니, 중1 때까지는 거의 비슷하다가 중2 때부터 남녀 학생 사이에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성적 차이로 이어졌다.

진로 결정앞둔 중2 때부터 관심 떨어져

교육인적자원부가 같은해 전국 초·중·고교생 1만8843명을 표집해 교과별 성취도를 조사한 결과, 초등학교 때는 모든 과목에서 여학생이 우수하다가 중·고 때는 사회·수학·과학 과목에서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약간 높았다. 하지만 차이는 크지 않았다.

‘여학생은 남학생보다 수학과 과학을 못한다’는 인식이 꽤 퍼져 있다. 하지만 이 두 조사 결과는 이런 인식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소지를 제공한다. 최소한 선천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수학이나 과학을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화여대 물리학과 문미옥 교수는 “중2가 되면 문과로 갈지, 이과로 갈지 결정을 해야 할 시점이 된다”며 “이 때 많은 여학생들이 ‘이공계 가면 뭐하냐’는 등 평소에 주변에서 들어 왔던 말들을 은연중에 받아들이며 문과 쪽으로 방향을 정하고 수학이나 과학 쪽에 관심을 덜 기울이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곧 관심의 저하로 인해 자연히 점수도 낮게 나온다는 얘기다.

이렇게 본다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40개국의 만 15살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학업성취도 국제비교(PISA)’에서 우리나라 남학생과 여학생들의 성취도 차이가 두번째로 높고, 특히 수학·과학 영역에서 여학생들의 점수가 낮았다는 사실을 두고도 다른 각도에서 해석할 수 있다. 만 15살이면 중3이나 고1인데, 이 때는 이미 문과나 이과로 진로 결정을 한 뒤여서 문과로 많이 가는 여학생들의 수학·과학에 대한 관심도와 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서울 양천구 양강중 학생들이 실험을 하고 있다. 이 실험은 이화여대 와이즈거점센터가 여학생들에게 과학에 대한 흥미를 심어 주기 위해 자원봉사 대학생들을 보내 과학실험 하는 것을 도와주는 ‘찾아가는 실험실’ 프로그램으로 열렸다. 와이즈거점센터 제공
“이공계 가서 뭐할래” 핀잔에 문과로

문 교수는 “만약 학업성취도 국제비교 시험을, 여학생들이 진로를 어느 정도 결정하고 난 뒤인 만 15살이 아니라 초등학생이나 중1을 대상으로 치렀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해마다 치러지는 수능 시험에서 여학생들의 수리·과학탐구 영역의 점수가 남학생보다 낮은 사실도 설명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여성은 시각과 직관적 정보처리를 담당하는 오른쪽 뇌가, 남성은 논리적 정보처리를 관장하는 왼쪽 뇌가 더 발달했다는 뇌과학자들의 주장은 어떻게 봐야 할까? 많은 뇌과학 연구들은 여성과 남성 사이에 뇌 구조의 차이가 있으며, 그에 따라 여성은 선천적으로 언어 능력, 남성은 공간 및 수학능력이 지각능력이 우수하다는 게 일관된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선천적 남녀차이론은 결정적 근거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견해다. 홍성도 성균관대 의대 교수는 “남녀 간의 생물학적 특성이 학습에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지난 20~30년간 광범위한 연구 결과를 보면 남녀간 학습능력 차이는 점점 좁혀지고 있다”며 결정론적 시각에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뇌 구조의 차이를 능력의 차이로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화여대 수학과 이혜숙 교수는 “설사 남성이 여성보다 공간지각 능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수학이나 과학을 잘 한다고 설명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사대부여중 임혁 교사는 “전세계적으로 남녀 간의 학습능력의 차이는 사라지고 있다”며 “수학·과학 분야에서 여학생의 성적이 낮은 이유는 한국의 특수한 교육적·사회적 환경이 작용한 측면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학업성취도 국제비교 시험에서도 과학적 성취도에서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높게 나타난 나라는 12개국에 지나지 않으며, 나머지 나라에선 여성의 성취도가 남성과 엇비슷하거나 오히려 남자를 능가했다.

지속적 동기 부여…사회 풍토 바꿔야

정보통신 기술과 생명공학 등 다양한 이공계 분야에서 여성 인력의 필요성이 계속 늘고 있는 가운데, 여학생들의 이공계 진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여자는 수학이나 과학을 못한다’는 편견을 깨는 것이 급선무다. 아울러 이공계에 관심 있는 여학생들은 어려서부터 지속적인 동기 부여를 해 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여학생들의 수학·과학에 대한 관심도가 바뀌는 시점인 초등 5·6학년~중학교 1학년 무렵에 여학생들이 수학·과학에 친화적인 태도를 갖고 적극적인 학습을 할 수 있도록 끌어들이기 위해 적절한 교육프로그램의 개발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인하대 화학과 최순자 교수는 “이공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 주지만 않는다면 여성들도 충분히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며 “여성 과학인력을 늘리기 위한 사회적인 인식의 전환과 정책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주문했다. 6s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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