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서 태어났으면 좋겠다.” “우리말이 영어였으면 좋겠다.” 서울 목동의 학부모 이아무개(42)씨는 초등 6학년 올라가는 딸아이의 이런 말에 흠칫했다. 모두 영어 영어 해서 말하기를 집중해 가르치는 학원 한곳을 더 보내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 얘기를 하던 중이었다. “정말 `아! 영어’ 하는 말이 절로 나오더군요. 다른 엄마들을 만나면 차라리 유학을 보내거나 외국으로 가는 게 낫겠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이 지역의 한 학원. 학부모들을 상대로 3월 개학을 앞두고 영어 교육에 대한 대대적인 설명회를 이미 열었다. 듣고 읽고 말하고 쓰는 4대 영역의 `균형 있는 학습’이라며 주당 수업시간을 8시간으로 늘린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학교 수업시간보다 갑절 넘는 많은 수업시간을 편성한 것이다. 당연히 수강료는 껑충 뛰었다. 이 학원 관계자는 “학원 사람들이 만나면 온통 영어 이야기”라고 했다. 새로운 시장이 열렸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분주하게 움직인다는 얘기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가 학부모들의 영어 사교육비를 줄여주겠다며 ‘영어 공교육 완성 실천방안’을 발표한 지 한 달. 학부모고, 교사고 나아가 학원 사람들까지 모두 `순진하다’고 말한다. 차라리 `사교육으로 영어 경쟁력을 높이겠으니 부담스럽더라도 나라의 장래를 위해 협조해 달라’고 하는 것이 더 솔직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왜 이렇게 `냉소적’일까? 우선 영어에 관한 한 학교(공교육)가 실력을 ‘기르는’ 곳이 아니라 ‘겨루는’ 곳이 되어버린 탓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1997년 초등학교에 영어 교과가 도입된 뒤 학부모들이 앞다퉈 영어 사교육에 투자한 결과다. 2006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서울의 초등학교 6학년생 1607명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영어 사교육을 한번도 받지 않은 학생은 전체의 18.1%에 불과했다.
학부모 “인수위 발상 순진”… 학원 “새시장 열렸다” 교사들 “영어가 입시경쟁력 갖는한 사교육 안줄어” 이런 실정에서 학부모들은 영어 교육을 더는 공교육에 기대지 않는다. 올해 초등학교 3학년과 1학년이 되는 자녀를 둔 설아무개(39)씨는 “큰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알파벳도 몰랐는데 주위에서 토플 시험을 치르거나 영어를 술술 말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많이 뒤처져 있는 것 같아 영어 유치원을 안 보낸 게 후회되더라”고 했다. 그는 지금 둘째아이한테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 영어 유치원에 보내고 있다. 결국 공교육에서 영어가 강조되면 될수록 학부모들은 사교육으로 내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영어 공교육 강화정책의 수단으로 선택한 `영어 전용수업’에 대한 반응만 봐도 그렇다. 서울 마장중 이소현 교사는 “영어는 영어로 가르치는 게 가장 교육 효과가 크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진다”고 인정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교육업체 교원의 홍보팀이 사내 직원 100명을 대상으로 새 정부 영어정책 발표 이후 추가될 사교육 형태를 물었더니 응답자의 37%는 `해외 어학연수’를 꼽았다. 이 회사 홍보팀 이승환 대리는 “학교에서 영어로 수업한다는데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고 그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어학연수를 통해 더 빨리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하는 처방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된다면 영어 전용수업은 빈부에 따른 영어 교육 격차를 더욱 심화하게 될 것이다. 이는 공교육의 붕괴를 더욱 촉진할 수밖에 없다. 영어 공교육을 살리겠다는 정책이 사교육 의존을 더욱 확대하고, 결과적으로 공교육을 무너뜨리는 부메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공교육을 통해 사교육비를 잡겠다는 전제 자체가 틀렸다는 다소 `과격한’ 얘기도 나온다. 부산 혜광고 전창완 교사가 부산 지역의 학교 교육 내실화 정책이 사교육비 절감에 끼친 영향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부산 지역은 2000년에 비해 2004년에 학생의 학교교육 만족도가 크게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시기 학생의 사교육 참여율도 꾸준히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교육서비스업으로 자리잡은 사교육은 교육 정책 변화에 매우 유연하게 대응하며 교육 수요자의 요구에 맞는 교육서비스를 공급한다”며 “사교육비 부담이 줄었다고 느끼거나 가계에서 사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든 가구는 소득 규모가 작은 저소득층에 국한된 현상이라는 것도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영어 공교육을 통해 사교육을 줄이는 방안은 찾아야 한다. 지금은 오히려 영어의 `교육적 위상’을 점검하는 데서부터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김해 어방초 박진환 교사는 “우리 사회에서 영어를 잘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국가의 경쟁력이 아니라 개인의 입시 경쟁력”이라며 “영어가 입시 경쟁력을 갖는 한 사교육비 지출은 절대 줄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입시 경쟁력에서 차지하는 영어의 적절한 위상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서울대 영어교육과 이병민 교수가 ‘교육비평’ 23호에 기고한 글에서 “우리 사회에는 영어로 통과할 수 있는 관문이 많다. 특히 특목고나 대학 입시가 그렇다”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학부모 “인수위 발상 순진”… 학원 “새시장 열렸다” 교사들 “영어가 입시경쟁력 갖는한 사교육 안줄어” 이런 실정에서 학부모들은 영어 교육을 더는 공교육에 기대지 않는다. 올해 초등학교 3학년과 1학년이 되는 자녀를 둔 설아무개(39)씨는 “큰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알파벳도 몰랐는데 주위에서 토플 시험을 치르거나 영어를 술술 말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많이 뒤처져 있는 것 같아 영어 유치원을 안 보낸 게 후회되더라”고 했다. 그는 지금 둘째아이한테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 영어 유치원에 보내고 있다. 결국 공교육에서 영어가 강조되면 될수록 학부모들은 사교육으로 내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영어 공교육 강화정책의 수단으로 선택한 `영어 전용수업’에 대한 반응만 봐도 그렇다. 서울 마장중 이소현 교사는 “영어는 영어로 가르치는 게 가장 교육 효과가 크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진다”고 인정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교육업체 교원의 홍보팀이 사내 직원 100명을 대상으로 새 정부 영어정책 발표 이후 추가될 사교육 형태를 물었더니 응답자의 37%는 `해외 어학연수’를 꼽았다. 이 회사 홍보팀 이승환 대리는 “학교에서 영어로 수업한다는데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고 그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어학연수를 통해 더 빨리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하는 처방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된다면 영어 전용수업은 빈부에 따른 영어 교육 격차를 더욱 심화하게 될 것이다. 이는 공교육의 붕괴를 더욱 촉진할 수밖에 없다. 영어 공교육을 살리겠다는 정책이 사교육 의존을 더욱 확대하고, 결과적으로 공교육을 무너뜨리는 부메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공교육을 통해 사교육비를 잡겠다는 전제 자체가 틀렸다는 다소 `과격한’ 얘기도 나온다. 부산 혜광고 전창완 교사가 부산 지역의 학교 교육 내실화 정책이 사교육비 절감에 끼친 영향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부산 지역은 2000년에 비해 2004년에 학생의 학교교육 만족도가 크게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시기 학생의 사교육 참여율도 꾸준히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교육서비스업으로 자리잡은 사교육은 교육 정책 변화에 매우 유연하게 대응하며 교육 수요자의 요구에 맞는 교육서비스를 공급한다”며 “사교육비 부담이 줄었다고 느끼거나 가계에서 사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든 가구는 소득 규모가 작은 저소득층에 국한된 현상이라는 것도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영어 공교육을 통해 사교육을 줄이는 방안은 찾아야 한다. 지금은 오히려 영어의 `교육적 위상’을 점검하는 데서부터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김해 어방초 박진환 교사는 “우리 사회에서 영어를 잘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국가의 경쟁력이 아니라 개인의 입시 경쟁력”이라며 “영어가 입시 경쟁력을 갖는 한 사교육비 지출은 절대 줄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입시 경쟁력에서 차지하는 영어의 적절한 위상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서울대 영어교육과 이병민 교수가 ‘교육비평’ 23호에 기고한 글에서 “우리 사회에는 영어로 통과할 수 있는 관문이 많다. 특히 특목고나 대학 입시가 그렇다”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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