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에도 학원에도 기댈 곳이 없는 자녀를 둔 농산어촌 학부모의 ‘교육문제’를 해결해 줄 지원이 절실하다. 사진은 산촌유학으로 폐교 위기를 벗어난 전북 완주군 봉동초교 양화분교의 학생들. 강창광 기자
농어촌 학부모들 교육 고민은
자녀교육비 넉넉잖고 정보 소외도 심각
기댈 곳 학교뿐인데, 농촌 교육환경 열악
자녀교육비 넉넉잖고 정보 소외도 심각
기댈 곳 학교뿐인데, 농촌 교육환경 열악
경남 의령군의 작은 마을에서 개신교 특수 사목을 하는 이창권씨는 최근 고교생 아들의 진학을 두고 속상한 일을 겪었다. 자연계열에서 배우는 수학2를 가르칠 교사가 없어 이과 성향이 다분한 아들이 인문계열로 진학할 ‘위기’에 놓인 탓이다. “선생님 구한다고 속앓이 하느니 차라리 문과로 가라고 말하는데 정말 속상하더군요.”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도 모자라 새벽 1~2시까지 학원에 매달리는 도시 아이들과, 학교에서조차 제대로 공부할 수 없는 아들의 처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새 학기 농산어촌 학부모들의 근심이 깊다. 도시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누리는 기본적인 교육 여건도 갖춰지지 않은 곳의 학부모에게 교육 습관에 대한 고민은 한가롭기만 하다. 농촌에 살면서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이창권(경남 의령군)씨와 박상희(36ㆍ전남 무안읍)씨의 얘기를 들어봤다.
농산어촌 학부모들은 ‘교육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우선 자녀와 대화할 시간이 없다는 게 문제다. 아이들이 바빠 대화할 시간이 없는 도시와 달리 농산어촌에서는 부모가 너무 바쁘다. 이씨는 “요즘 농촌은 사시사철 농사가 가능한 비닐하우스 재배를 하는데 거의 하루종일 일하는 분들이 많다”며 “농사를 큰 규모로 하지 않으면 자녀들 대학 학비도 마련하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에 부모들은 모든 시간을 농사일에 투자한다”고 했다. 저녁을 먹은 뒤에도 비닐하우스에 불을 켜놓고 일하다 보면 부모가 귀가하는 시간은 밤 11시를 넘기기 일쑤다. 이들에게 자녀와의 대화는 호사스러운 일이다.
또 농산어촌의 부모들은 자녀 교육에 투자할 ‘돈’도 넉넉지 않다. 인터넷 이용료를 낼 수 없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도 있다. 이씨는 “자녀 용돈으로 1000원 쥐여 주기도 어려운 집이 많은데 무슨 수로 2~3만원 하는 인터넷 이용료를 내겠느냐”고 했다. 농산어촌 지역의 학부모들은 사이버 가정학습이나 교육방송(EBS)의 인터넷강의 등 정부가 내놓은 사교육비 경감 대책의 효과를 누리기조차 힘든 현실인 것이다.
인터넷 설치가 불가능한 지역에 사는 학생들은 인터넷 이용료를 낼 여력이 돼도 양질의 인터넷 교육 정보를 얻을 수 없다. 전남 무안읍 지역아동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박상희씨는 “면소재지만 돼도 인터넷 접속이 되는데 리 정도로 들어가면 인터넷이 안 되는 집이 많다”며 “지역아동센터에서 방과 후 교육을 맡고 있는 아이들은 대개 집으로 돌아가면 인터넷을 할 수 없다”고 했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이 낸 ‘2007년 하반기 정보화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서울과 6대 광역시의 인터넷이 보급되지 않은 지역은 평균 16.7%인데 반해, 전남은 39.7%나 된다.
부모들이 자녀교육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부모의 빈자리를 채워야 하는 학교의 책임이 무겁다. 그러나 농산어촌 학부모는 학교에도 기대지 못하는 현실에 좌절한다. 이씨는 “중학생들은 오후 5시30분이면 수업이 끝나는데 하루에 두세 번 있는 공용버스는 저녁 8시나 돼야 탈 수 있다”며 “2시간 남짓한 동안 아이들은 갈 데가 없어 만화방에 죽치고 있는다”고 했다. 박씨는 “지역아동센터가 갈 곳 없는 아이들의 보금자리 구실을 할 수 있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너무 적다”며 “지역아동센터에서 담당하는 교육 활동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농산어촌 학교에 통학버스 운영, 마을공부방 설치 지원을 법으로 명시한 농어촌 교육지원 특별법을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이 발의했지만, 국회에서는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17대 국회에서 발의해 통과되지 못한 법안은 자동으로 폐기된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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