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한자·독서시험 학교가 ‘영업’
초등학교들 “응시하세요” 독려
가정통신 안내에 교내 방송까지
학부모들 “학교가 사교육 조장”
가정통신 안내에 교내 방송까지
학부모들 “학교가 사교육 조장”
서울 ㄷ초등학교 학부모인 이아무개씨는 최근 4학년인 딸이 가져온 ‘한자능력시험 응시 안내’라는 가정통신문을 받고 깜짝 놀랐다. 가정통신문에는 급수에 따라 1만1천원~2만원인 응시료 안내와 “특목고 등 입시에 반영될 수 있으니 참여 바란다”고 독려하는 글까지 곁들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아이에게 신청서와 응시료를 줘서 보냈지만, 왜 특정 단체가 치르는 시험을 학교가 나서서 홍보하는지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일선 초등학교들이 특정 단체가 주관하는 한자능력 시험, 독서·논술 시험 등에 응시하도록 독려하는 가정통신문을 학부모들에게 보내, ‘학교가 사설 단체의 시험 영업을 대신 해 주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학부모들은 학교에서 일제히 보내는 가정통신문이라서 학교 공식 시험처럼 받아들여 신청할 수밖에 없고, 덩달아 관련 사교육을 해야 한다는 부담까지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서울 ㅅ초교 학부모 손아무개씨도 응시료가 1만2100원~3만3천원인 한자능력 시험을 안내하는 가정통신문을 받았다. 손씨는 “심지어 지난해 학부모 2명도 응시했으니 이번에도 많은 학부모가 아이와 함께 응시하라는 문까지 적혀 있었다”며 “학교가 나서 학생뿐 아니라 학부모에게 시험 광고를 해 주는 셈”이라고 말했다. 서울 ㅇ초등학교 한 학부모는 “이렇게 시험 안내 통신문을 받으니 동네 한자 교실에라도 보내야 하나 고민”이라고 말했다.
이런 행태는 한자능력 시험에만 그치지 않는다. 최근 서울 한 초등학교는 ㅈ사가 주관하는 독서·논술 급수 시험에 응시하라는 가정통신문을 보냈다. 이 학교 교사는 “응시료가 3만3천~4만4천원이나 하는데다 시작한 지 2년이 채 안 된 시험인데, 날마다 아침 학교에서 시험 응시를 독려하는 방송까지 내보낸다”고 전했다.
ㅈ사 홈페이지에는 ‘한국교총과 업무 제휴를 했다’는 안내문까지 버젓이 올라와 있다. 회사 관계자는 “현직 교사와 교장 선생님 10여명이 자문·출제위원으로 활동하시기 때문에 시험의 공신력은 믿을 만하다”며 “업무 제휴란 초등학교 교장단을 상대로 시험에 관한 설명회를 열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시험을 주관하는 곳은 대개 비영리 사단법인이면서도, 응시료와 관련 교재 판매 등으로 이익을 챙긴다는 게 관련 사교육 업계와 학부모 단체 등의 분석이다.
이에 대해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 전은자 자치위원장은 “학부모 처지에서는 학교가 안내하는 시험은 정규 교과과정과 연관된 것으로 받아들이기 쉽다”며 “이는 학교가 또다른 사교육을 부추기고, 사설 기관의 영업활동에 앞장서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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