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교수의 철학산책
폭력과 침탈로 얼룩진 낡은 제국주의적 망령들을 걷어 내기 위해 ‘비판이론’을 상기해 보고자 한다. 20세기 초 이 이론을 형성하고 발전시킨 사람들이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대학 부설 사회연구소(1929년 설립)를 중심으로 활동했기에, 때로는 ‘사회비판이론’ 또는 ‘프랑크푸르트학파’로 불리기도 하는 비판이론은 그 개념상 ‘전통이론’과 자신을 대비한다. 기존의 전통이론이 헤겔 철학이나 후설의 현상학이 그렇듯 주로 형이상학적 문제나 인식론적 과제에 치우쳐 있었다면, 비판이론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구체적인 삶의 방식을 문제 삼았다. 따라서 비판이론은 대체로 두 가지를 표방하는데 첫째는, 인간을 각종 관습이나 사회적 구속으로부터 온전히 ‘해방’시켜 자유인으로 형성해 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삼으며, 둘째, 이를 위해 서유럽의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실천적’으로 발전시켜 내고자 한다. 오늘날까지 현대 사회에서 인간 해방을 목적으로 하는 대부분의 실천적 사회이론들이 비판이론이라 불리게 된 까닭은 이런 초기 이념을 나름대로 계승하기 때문이다. 초기 비판이론은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 마르쿠제 등에 의해 발전해 왔고, 오늘날은 많은 이론가들이 있지만 아무래도 대표적으로는 하버마스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비판이론이 문제 삼는 인간 해방에 반하는 환경이나 구속은 첫째, 욕구와 필요에 기초한 제약과 둘째, 지배와 억압 그리고 착취로부터 비롯하는 구속을 들 수 있다. 첫 번째 과제는 사회적 생산력이 발전하고 또한 인간 자신이 대체로 자주적인 인격으로 스스로를 형성해 나갈 때 해소될 수 있는 반면, 두 번째 문제는 아무래도 복잡한 사회적 관계와 계급, 집단이 관여하고 심지어 공동체들 사이의 갈등마저 게재될 수 있는 만큼 더욱 간단치 않다.
비판이론의 초기 주창자들이 히틀러의 나치즘에 억압받아 피신과 망명을 선택해야 했듯이, 지배와 억압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사회적 자기 반성과 숙고, 국제적 연대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점은 오늘날 엄연히 대한민국 영토인 독도를 둘러싸고, 다시금 지배 야욕을 보이는 일본의 일부 보수 지식인들과 이에 침묵하는 우리 사회의 잘못 정향된 일부 ‘뉴 라이츠’에게 들려주고 싶은 대목이다. 가까운 이웃인 두 나라가 얼룩진 과거에 더는 구속받지 않기 위해서는 해방적 관심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반성 수준을 조금만 더 높이더라도, 이미 디지털 혁명 이후 물리적 제약이나 국경이 별다른 의미가 없어진 이 마당에 20세기 초 일본이 행한 제국주의적 침략의 망상을 되풀이할 이유가 없다. 대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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