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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학교에 가꾼 숲, 소중한 배움터

등록 2005-04-24 19:10수정 2005-04-24 19:10

“이 냄새가 무슨 냄새인지 알아맞혀 볼래?”

“약 냄새 같은데요?” “할아버지 냄새인가?” “촌에 있는 집 냄새?”

아이들은 내 옷소매에 코를 대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지난 3월 말부터 4월 중순까지 우리 학교에서는 두 해째 ‘학교 숲 가꾸기’ 사업을 벌이고 있다. 교감 선생님과 담당 선생님이 포클레인을 부르고 일꾼을 대어 땅을 고르고 콘크리트 물빠짐 길을 설치하는 일부터 먼저 해 놓았다. 그 다음날부터 학급별로 겹치지 않게 날을 잡아 학부모까지 참여하여 나무와 꽃을 심고 잔디를 깔고 있다.

나도 일옷으로 갈아입고 나가 틈틈이 일을 거들었다. 뜰로 파고들어 와서 캐어 놓은 울타리 죽순대 더미에다 등나무 근처 검불을 긁어모아 불을 놓았다. 불을 살리려고 옆에 붙어 서서 연기를 얼마나 쐬었는지 옷에 연기 냄새가 흠뻑 뱄다. 재를 파묻고 나서 점심 먹으러 식당으로 갔다. 밥 받으려고 줄 서 있는 아이들 틈에서 냄새 알아맞히기를 한 번 해 봐야겠다 싶어 조용히 물어 보았고, 두 아이와 한 선생님이 ‘불 냄새’ ‘연기 냄새’ 라고 알아맞혔다. 촌에서 자라면서 불을 놓았을 때 보았다고 했다.

우리 학교 건물은 십 년 전에 예쁜 모양으로 지었다. 보는 사람들이 좀 삭막하다는 말을 많이 했다. 학교에 숲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사람이 갖추어야 할 것을 주로 교실에서 책으로 배우고 익힌다. 하지만 자연에서 몸과 마음으로 배우고 익히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자연학습원을 만들어 삭막한 환경을 바꾸기로 하였다. 나무를 옮겨 심고 약초를 구해다 심었다. 아이들은 공원처럼 반듯하게 꾸며놓은 곳보다 이런 풀숲을 좋아할 것 같아 아이들 수만큼 갖가지 풀과 나무가 자라는 동산으로 만들어 보자고 하였다. 큰돈 들이지 않고 할 수 있었다. 나무에 새 잎이 돋고, 약초밭에는 풀까지 무성하게 자랐다. 아이들은 풀과 나무가 좋은 줄 대번에 알아챘다. “우리 학교가 아주 딴 학교가 됐어요.” 부모님에게 자랑했다.

그 해 초여름께 아는 교장 선생님이 지나는 걸음에 들렀다며 찾아오셨다. 온통 잡초로 뒤덮여 있는 우리 학교 뜰이 참 마음에 든다고 하였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전문가한테 들었다며, 우리 나라 학교 조경은 무덤 조경에 어울리게 되어 있다는 말을 해 주셨다. 또, ‘생명의 숲’에서 벌이고 있는 ‘학교 숲 가꾸기’ 시범학교 운영에 대해서도 도움말을 해 주셨는데, 이에 힘입어 우리 학교는 신청서를 내었고, 바로 그 해에 실제 조사를 거쳐서 ‘학교 숲 가꾸기’ 시범학교로 선정되었다.

첫 해에는 운동장 둘레에 나무숲과 꽃밭을 만들고 놀이 기구를 다시 배치하면서 조그만 흙 놀이장도 하나 만들었다. 앞 뜰에는 흙을 돋우어 나무 심을 동산을 닦아 놓았고, 물 괴는 자리에 손바닥만한 논을 만들어 벼를 심어 거둘 때까지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게 하였다. 옥수수, 콩, 무, 배추, 고구마까지 가꾸어 먹어 보았고, 지난해 늦가을에 뿌린 밀과 보리는 추운 겨울에도 푸른빛 내며 잘 자라서 지금 이삭이 패고 있다.

연기 냄새를 알아내는 것은 책으로나 말로 가르칠 수 없다. 인성을 닦고 창의력을 기르기 위한 방법으로 자연 속에서 몸으로 느끼고 직접 해 보는 것보다 더 나은 게 또 있을까? 거창 샛별초등학교 교장 gildongmu@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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