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열반·성적순 독서실
인권위 권고 불구 안없애
학교·지자체도 ‘버티기’
인권위 권고 불구 안없애
학교·지자체도 ‘버티기’
국가인권위원회가 최근 우열반 운영 등 성적 우수자에게만 차별적인 교육 기회를 주는 관행에 대해 잇따라 시정을 권고했지만, 교육당국과 지자체는 권고 이행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인권위의 권고가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권고를 받고도 실태 파악이나 대책 마련조차 하지 않는 것은 정부기관 스스로 정부기관의 권위를 무시하는 처사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인권위는 지난 2월 “성적순으로 ‘정독실’(특별 독서실) 사용 권한을 주는 것은 학생들의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부산 ㄴ고등학교 김아무개 교사가 낸 진정사건에서 시정 권고 결정을 내렸다. ㄴ고는 넓은 책상과 칸막이 등을 설치한 정독실을 만들어 놓고, 각 학년별로 모의고사 성적이 상위 10∼20%에 드는 학생들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일부 교사와 학생들의 반발을 샀다.
그러나 인권위 권고가 나온 지 4개월이 지난 지금도 ㄴ고는 여전히 성적에 따라 정독실 사용 권한을 주고 있다. 김 교사는 “인권위 권고를 들어 운영방식을 바꿀 것을 요구했으나 교장이 ‘문제 만들지 말라’며 무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리감독 의무가 있는 부산시교육청은 “그 부분은 이미 시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만일 시행하고 있다고 해도 뾰족한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교육청이 손을 놓은 사이 부산에서는 ㄷ·ㅎ고 등도 성적순 독서실 운영에 나서는 등 비교육적 현상이 되레 확산되고 있다.
우열반을 운영해 오다 지난달 19일 인권위의 시정 권고를 받은 강원지역 10개 고교도 마찬가지다. 상황을 바로잡아야 할 강원도교육청 관계자는 “우리가 자체 조사해 본 결과 사립고 2곳만 우열반을 운영하고 있었다”며 인권위 조사결과마저 부정했다. 이 관계자는 “전 과목 총점이 아닌 국·영·수 등 일부 과목 성적 평균으로 반을 나누는 것은 문제 삼기 힘들다”며 “또 분기별로 시험을 쳐서 우수반 구성원을 바꾸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했다.
군 예산으로 성적 우수자들을 위한 기숙형 공립학원(인재숙)을 운영하다 지난달 29일 시정 권고를 받은 전북 순창군은 아예 대놓고 인권위의 결정을 비판하고 나섰다.
순창군 관계자는 “인권위가 학습 여건이 열악한 농촌지역의 현실을 무시한 채 이상주의에 빠진 권고를 남발하고 있다”며 “성적 우수자에게 우선적으로 기회를 주는 인재숙 운영 방식을 바꿀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교육 관련 기관들이 성적 지상주의에 매몰돼,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고 있는 것 같다”며 “교육권이라는 보편적인 관점에서 시정 권고를 받아들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인권교육센터 ‘들’ 배경내 상임활동가는 “학생들의 인권을 앞장서 지켜줘야 할 교육당국과 학교가 입시경쟁을 이유로 인권위 권고에 귀를 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이에 대해 인권위는 “교육 관련 기관들이 성적 지상주의에 매몰돼,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고 있는 것 같다”며 “교육권이라는 보편적인 관점에서 시정 권고를 받아들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인권교육센터 ‘들’ 배경내 상임활동가는 “학생들의 인권을 앞장서 지켜줘야 할 교육당국과 학교가 입시경쟁을 이유로 인권위 권고에 귀를 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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