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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친구의 불행이 내 행복’이라니

등록 2005-04-29 17:41수정 2005-04-29 17:41

고춘식의 학교이야기

중간고사를 앞두고 고등학교 1학년의 내신 과열 분위기에 대해 언론들이 다시금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새로운 대학 입시 제도에 따라 고등학교 1학년부터 상대 평가로 바뀌고 또 내신 위주의 전형으로 바뀌면서 1학년인데도 ‘고3 같은 고1 생활’을 하며 입시에 목을 맨다는 것이다. 성적 부풀리기와 내신 불신이라는 반교육적인 행태를 막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절대 평가에서 상대 평가로 방침을 바꾸자, 예상했던 대로 준비된 문제들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상대 평가는 학교에 따른 학력 차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학생들이 열심히 해서 성적이 향상돼도 좋은 등급을 받을 수 없다는 심각한 약점이 있지만,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학교 수업에 좀 더 진지하게 참여하고 선생님들도 출제에 고민을 많이 한다는 긍정적인 변화도 눈에 띈다. 그러나 공교육을 정상화하려는 교육부의 새 대입 제도는 ‘무한 경쟁’이라는 블랙홀 구조 앞에 다시금 수모를 당하고 있다.

어떤 신문은 ‘예·체능 과목도 과외를 할 판’이라는 전문가의 진단을 내놓더니 다음날 슬그머니 ‘속을 들여다보니 안 그렇더라’는 기사를 내기도 했는데, 가장 많이 팔린다는 이 신문은 ‘친구의 불행이 내 행복’이라는 지극히 자극적인 제목을 붙여 가며 새 대입 제도를 몰아붙이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입시 경쟁 앞에서 불안한 학부모와 학생들을 왜 이리 선정적으로 자극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신문의 제목을 다시 들여다보면 차라리 엽기적이다. ‘친구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면, ‘친구들의 행복이 나의 불행’이 되는 것이요, ‘나의 행복이 친구들의 불행’이 된다는 말이다. 어찌 싱그런 젊음을 이렇게 터무니없는 제목으로 위협하고 아이들의 관계를 황폐화시키려 하는가. 경쟁을 한다 하더라도 함께 어울려 더불어 잘 사는 사회인을 키워 내고자 하는 많은 선생님들의 노력마저 송두리째 부정해 버리는가 말이다. 물론 신문이 아무리 그렇게 써도 아이들은 그러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지만, 천박한 선동으로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모는 것 같아 분노가 치민다. 경쟁자가 꼭 적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경쟁에 이긴 자만 행복한 것도 아닐진대 어찌 이런 황폐한 이분법으로 교육 현장을 왜곡시키려 하는지 다시 묻고 싶다.

근본적으로 우리 교육을 살리는 길은 과연 무엇이며 경쟁 중독에서 벗어나게 하는 길은 무엇일까? 그것은 ‘참다운 학력’에서부터 시작해 ‘참다운 경쟁력’이란 무엇이고, ‘참다운 성취’란 무엇이며 ‘참다운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새롭게 이끌어 내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깊이 내면화하여 우리 사회를 성숙한 단계로 끌어올리는 일이다. 참으로 어려운 과제지만, 교육이 폭력이 되어 국가와 국민을 괴롭히는 일이 더는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우리는 이 과제를 해내야 한다.

서울 한성여중 교장 soam88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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