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식의 학교이야기
퇴근하려고 현관 문을 나섰다. 자전거 세워 두는 곳에 자전거가 안 보인다. 이상하다. 잠깐 어리둥절한 채 어찌 된 일인지 생각해 보았다. 허 참, 아침에 비가 와서 이웃집 자동차에 얹혀 왔으면서 자전거를 찾다니!
학교에서 집까지는 꼭 십리 길이다. 걸어가기에는 조금 멀다. 그래서 집에 전화를 걸어 아내한테 자동차로 좀 데려가 달라고 말할까 하다가 걸어가기로 하였다. 자전거로는 15분 만에 갈 수 있으나, 빨리 걸으면 40분쯤 걸린다. 누가 그랬는지 도무지 알아낼 길이 없다. 운동 삼아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로 했으면 이 정도는 걸어도 보아야지. 그때, 운동장 저쪽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행정실 여직원이 서 있다.
“걸어서 가실 겁니까?”
“예,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오지 않아 걸어갈 참입니다.”
“제가 댁까지 모셔다 드릴까요?”
“일부러 그러실 것 없습니다.”
“드릴 말씀도 있고 해서….”
물어 볼 말이 있다고 하시니 옆 자리에 앉을 수밖에. 좁은 길을 벗어나 개봉 네거리를 지나면서 말을 꺼내신다.
“제 책상 위에 돈 묶음, 교장 선생님이 두신 겁니까?”
“아뇨. 무슨 말인지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누가 점심 시간에 제법 큰돈을 제 책상 위에 몰래 갖다놓았습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서 학비가 밀려 있는 아이 있지 않습니까? 그 아이 학비에 보태 달라고 몇 자 적어 놓았습디다. 선생님 몇 분에게 조심스럽게 물어 보니 모두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혹시 교장 선생님인가 해서 여쭈어 본 것입니다.”
“글씨를 보면 누군지 짐작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종이에 컴퓨터로 찍은 글씨라서 알 수 없습니다.”
이튿날 출근하여 나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선생님들 거동이며 눈빛을 살폈다. 돈을 쌌다는 그 종이도 챙겨 보았다. 누가 그랬는지 도무지 알아낼 길이 없다.
우리 학교는 사립 초등학교라서 학부모가 아이의 수업료를 내야 한다. 의무교육 관련 법령을 보면 사립이더라도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해야 맞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그나마 읍에 있는 학교라서 재정 결함 보조금을 받을 수 있으니, 도시에 있는 사립학교에 견주면 수업료가 아주 적은 편이다.
우리 학교 아이들 가운데는 학교에 입학할 때는 집안 사정이 괜찮았더라도 갑자기 사정이 나빠져서 학비를 제때에 못내는 경우가 생긴다. 공립 초등학교로 전학을 권해 보기도 하지만, 학부모와 아이 처지로서는 그것도 간단하고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이러니 아이와 학부모는 말할 것도 없고, 학교는 학교대로 어렵게 된다.
그러나 인정은 이런 어려움 속에서 꽃으로 피어난다. 아무도 모르게 숨어서 피는 들꽃처럼.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큰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는 이가 누굴까? 생각만 해도 그 훈훈한 인정이 내 마음속에 스며든다. 거창 샛별초등학교 교장 gildongmu@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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