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성신여고 학생들은 7교시를 마친 뒤엔 늘 일사불란하게 자기가 맡은 구역을 청소한다.
서울 돈암동에 있는 성신여고. 높은 산꼭대기에 있어 학생들은 아침마다 등산을 하는 기분으로 등교한다. 얼마나 높은 곳에 있는지, 1년에 한번 열리는 축제 때마다 학교를 찾는 남고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운동하기 딱 적합한 곳’이라고 입 발린 말을 해댄다. 성신여고의 상징은 ‘고산지대’ 말고도 또 하나 있다. ‘청소’다. 일단 성신여고에 들어오면 밥은 굶는 한이 있더라도 청소는 걸러서는 안 된다는 게 오랜 전통이자 불문율이며, 철칙이다. 그런 만큼 청소에 관해서는 확실히 일가견이 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청소만은 자칭, 타칭 부동의 전국 1등이다. 과연 이 학교의 청소 시간은 어떻게 다를까? 일단 학생마다 역할 분담이 확실하게 돼 있다. 맡은 바 임무에 대한 확실한 숙련도를 저마다 자랑한다. 7교시 마치는 종이 울리면 학생들은 앞치마를 일제히 맨다. 그리고 마치 군인들이 진격작전을 펼치는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자기 구역으로 향한다. 쓰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 쓸기가 끝나면 물 청소를 한다. 양동이에 가득 물을 담아 들고, 이고, 지고 다니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흡사 조선 시대 아낙네들이 물 양동이를 이고 줄지어 가는 모습을 연상할 수도 있다. 1학년 김하민(16)양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무거운 양동이나 주전자를 들어 주는 착하고 멋진 남학생들의 모습은 상상일 뿐”이라고 했다. 물 청소의 절정은 1년에 한번 하는 ‘대청소’ 시간이다. 수세미, 걸레, 앞치마, 체육복 등 ‘중무장’을 한 뒤 돌 사이사이 더러운 때들을 없애기 위해 수세미로 박박 문질러댄다. 여느 학교처럼 시멘트나 대리석으로 돼 있지 않고 돌로 된 바닥을 둔 탓에 학생들은 ‘중노동’(?)의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면도 있지만, 수세미로 한번 긁을 때마다 빠져나오는 때들을 보며 학생들은 기쁨의 환호성을 질러댄다. 그럴 때마다 공부 스트레스도 말끔히 날아간다. 빠질 수 없는 또 하나의 중요한 청소 포인트는 금줄이다. 성신여고에서는 한 변이 약 1m인 정사각형들 사이사이에 보이는 경계를 ‘금줄’이라고 부른다. 학생들은 이 금줄이 나타낼 때까지 ‘미치도록’ 닦아야 한다. 다행히 올해는 ‘매직○○○’이라는 갸륵한 상품 덕에 조금 편해졌다. 3년 간 금줄을 닦은 3학년생들은 햇빛에 비치는 금줄의 황금빛을 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뿌듯함을 느낀다. 이경진(18·3년)양은 “육체적으로 조금 힘든 면이 있기도 하지만 우리 학교의 특별하고도 유별난 청소 시간은 졸업 후에도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며 “모교를 오랫동안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몸과 마음도 갈고 닦는 게 공부지만 학교를 아름답게 만드는 일도 학창 시절에만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인생 공부라는 사실을 성신여고 학생들은 몸으로 배워가고 있다. 글·사진 김은주/1318리포터, 서울 성신여고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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