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현대사는 전쟁과 외세 개입, 이념 분쟁으로 구성원들의 삶 곳곳에 상처와 증오의 감정을 남겼다. 〈은어의 강〉은 이제는 그런 상처를 보듬을 때가 됐다고 말한다. 네 탓 내 탓을 할 때는 오래 전에 지나버렸다고, 대신 서로 화해하고 용서하는 일이 남았다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소설의 배경은 1970년대 지리산 섬진강 자락의 한 마을이다. 동굴 모험을 떠난 아이들이 우연히 유골 무더기를 발견한다. 빨치산의 유골로 밝혀지자 군인들은 장례를 치를 생각도 않고 굴 입구를 막아버린다. 군인들이 떠난 뒤에 마을 어른들은 굿을 치른다.
이야기 속에서 한국전쟁과 이념 대립의 과거는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 〈은어의 강〉은 2000년대의 아이들에게 그 역사를 일일이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다만 “모든 걸 똑같이 나누어 살자는 사람들과 가진 대로 벌면서 살자는 사람들로 갈라져 싸운 일”이 있었다고만 일러둔다.
〈은어의 강〉이 주목하는 것은 지금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똥코 할배의 아들은 빨치산 토벌대에 참여했다가 지리산에서 죽었다. 욕쟁이 할매의 아들은 빨치산에 가담했다가 역시 죽었다. 그들은 자식의 이름으로 서로를 원수로 대한다.
그러나 군인들이 동굴의 입구를 틀어막아 버린 뒤, 똥코 할배는 동굴 속 빨치산들을 위한 굿을 치른다. 알고보니 그가 맡아 기르던 바우는 십수년 전 빨치산 여인이 맡기고 간 ‘빨갱이의 아들’이었다. 똥코 할배를 태운 꽃상여가 마을 동네를 넘어갈 때, 욕쟁이 할매도 그 뒤를 따랐다. 똥코 할배의 손주 바우는 이제 욕쟁이 할매가 키울 것이다.
증오는 우리가 심은 것이 아니었어도 그 상처는 우리 스스로 다스릴 수밖에 없음을, 비관이 아닌 낙관으로 말하는 작가의 차분하고 담백한 글이 돋보인다. 제1회 ㈜우리교육 어린이책 작가상 수상작이다. 고학년, 김동영 지음, 원혜영 그림. -우리교육/7000원.
안수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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