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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지구별 낯선 땅에도 ‘또 다른 나’ 있어요

등록 2005-05-08 19:17수정 2005-05-08 19:17

 엔씨하자 글로벌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청소년들이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영등포동 하자센터에서 자신들의 프로젝트 경험담을 나누는 ‘괴나리봇짐’ 행사를 열고 있다. 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활동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탁기형 기자 khtak@hani.co.kr
엔씨하자 글로벌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청소년들이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영등포동 하자센터에서 자신들의 프로젝트 경험담을 나누는 ‘괴나리봇짐’ 행사를 열고 있다. 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활동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탁기형 기자 khtak@hani.co.kr

청소년 ‘엔씨하자 글로벌 프로젝트’ 참가기

지난달 30일 서울 영등포 하자센터(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 일본 돈까스, 인도네시아 불고기, 영국의 버거 등 각국 음식 냄새가 진동한다. 음식을 만드는 다른 편에서는 세계 각국의 이색 물건들이 깔린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다. 말이 안 통해 그림을 그려 대화를 나눴다는 에피소드, 식중독에 걸려 한동안 고생했다는 얘기, 친절한 현지인을 만나 큰 도움을 받았다는 얘기 등이 왁자지껄 시끄러움 속에서 오간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 걸쳐 ‘엔씨하자 글로벌 프로젝트’에 참여한 27명의 청소년들이 외국을 다녀온 뒤 모인 자리였다.

청소년들에게 해외여행은 이제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방학만 되면 여행, 어학 연수 등을 떠나는 청소년들로 공항은 북새통이다. 방학이 끝나면 어디에 가서 뭘 봐고 왔다는 자랑들로 학교가 한동안 시끄럽다. 겉보기엔 하자센터에 모인 이들 청소년들의 얘기도 별반 다를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좀더 들여다보면 몇 가지 다른 점이 보인다. 우선 이들은 관광을 다녀온 게 아니었다. 5박6일, 7박8일, 9박10일 동안 자신들의 고민과 관심의 실마리와 방향을 지구적 차원에서 찾아 보기 위해 세계 곳곳을 찾았다.

평소 자원봉사와 노인 복지에 관심이 많았던 전남 영광 영산성지고 자원봉사팀은 일본의 노인 시설과 사회복지학 프로그램이 잘 돼 있는 대학들을 둘러봤고, 탈학교 학생들의 모임인 밝은우리팀은 일본의 ‘부등교 학생(히키코모리·학교 부적응 학생)’들을 위한 시설들을 둘러보고 ‘부등교 학생들이 나타난 건 단지 개개인의 부적응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이며 사회에서 함께 풀어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깨닫고 돌아왔다. 청소년 동성애자 모임인 앵그리인치팀은 영국의 동성애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단체를 방문하고 그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하자센터 김희옥 기획부장은 “현재 청소년들이 사회의 주축이 될 즈음에는 말 그대로 글로벌 시대가 펼쳐질 것”이라며 “자신들이 현재의 처지와 공간에서 하는 고민과 생각들이 사실은 다른 나라 사람도 똑같이 하고 있다는 걸 몸으로 느꼈다는 데 가장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영광 영산성지고 · 밝은 우리팀등
함께해 온 고민 · 관심 실마리 찾아
일본 · 영국 · 인도네시아로 ‘탐사’
주제선정 · 준비 · 여행까지 스스로
“열린 공간으로 나갈 힘 얻었죠”

▲ ‘괴나리봇짐’ 행사에 참여한 청소년들이, 다른 팀들이 자신들의 체험을 기록해 만든 책을 둘러보고 있다. 탁기형 기자 khtak@hani.co.kr
한국 사회에서는 아주 제한적일 것 같은 성적 소수자 문제나, 학교 부적응 문제가 사실은 전지구적 문제이며 따라서 국제적 네트워크와 연대를 통해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얘기다. 또 자신과 비슷한 취향의 친구를 만나고, 자신의 먹을거리와 환경이 전지구적 문제임을 깨닫고, 먼 나라의 전쟁이 자신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일임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자신들만의 힘으로 여행을 진행했다는 것도 이번 해외 프로젝트에 참여한 청소년들의 다른 점이다. 대부분의 팀들이 비슷한 고민을 하는 친구들끼리 모임을 꾸린 다음 탐사 주제를 구체화하고 준비·기획을 하는 데 한 달 정도를 보냈고, 일부 팀은 사전 ‘합숙훈련’을 하기도 했다.

콩팀의 김문석(18)군은 “국내 여행도 제대로 못해 본 마당에 처음으로 바다를 건너가서 스스로 준비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배움이란 게 뭔지 온몸으로 느꼈다”며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의 피곤함도 스스로 자청해서 할 때는 이렇게 기쁠 수 있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물론 모든 팀들이 애초의 기대를 충족시킨 것은 아니었다. 동남아시아엔 뭔가 ‘다른 색’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떠났던 콩팀은 가서 보니 우리 나라와 똑같은 색들을 만났고, 결국 “색은 같은데 다만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에 따라 달라 보일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했다. 이상적인 공동체를 기대한 채 인도 ‘오로빌’ 공동체를 방문했던 더불어사는삶팀은 “가서 잡초만 뽑고 왔다”며 “이런 공동체는 특별한 뭔가가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만들어 내야 하는 것”임을 어렴풋이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구체적인 대안이나 해결책을 찾지는 못했어도, 이들 청소년들은 자신의 삶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됐다는 점에는 모두 동의했다. “자신만의 공간에서 열린 공간으로 박차고 나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됐다”(진현아·18), “자기 안의 또 다른 자신을 보게 됐다”(별명 ‘나비’·17), “세계의 많은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계속 만들어서 진정한 나를 찾아보고 싶다”(김선미·18)는 등의 소감이 나왔다.

하자센터 대표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는 “이제 청소년들은 스스로 자신의 문화를 번역하고 낯선 세계와 삶의 모습에 말을 건넬 수 있는 주체들”이라며 “이 프로젝트가 지구적 시민사회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오솔길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엔씨하자 글로벌 프로젝트란?

“세계속으로” 소통 · 성장 지원…올해로 세번째

하자센터가 ㈜엔씨소프트의 후원으로 글로벌 시대를 살아갈 청소년들의 자기주도적 학습과 기획, 문화 생산자로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올해 초까지 3회를 진행했다. 청소년들이 자신의 관심사를 지구적으로 확장해 교류하고 싶은 지역·기관 등을 선정하고 ‘멘토’(조력자·20살 이상 어른)와 함께 여행 기획을 하면 심사를 통해 여행 경비를 지원한다. 참여하려면 하자센터 홈페이지(haja.net)를 통해 신청하면 된다. 기획서 심사-프리젠테이션 심사-오리엔테이션 및 워크숍-탐사-보고서 제출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02)2637-4137.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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