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을 깨는 교육
우리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온갖 조기교육에 발을 담근다. 학교에 들어가면 모든 관심은 대학 입시로 모아진다. 뭘 원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뭘 잘할 수 있는지, 자기 삶을 찬찬히 돌아볼 여유는 전혀 없다. 마치 조지 오웰의 <1984>형 인간처럼.
그러나 다들 맹목적으로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을 때 다르게 자라는 아이들, 다르게 키우려는 부모들도 있다. 이들은 자신의 삶의 과정에서 수시로 멈추어 지나온 과정을 돌아보고 앞날을 새롭게 설계한다. 주어진 틀에 매이지 않고 진정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쫓는다. ‘같지만 다르게’ 배우고 가르치려 힘쓰는 이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춘천 고학규·정윤희씨네
춘천의 한 고등학교 체육교사인 고학규(47)씨네는 흔히 만날 수 있는 중산층 가정이다. 대학병원 수간호사인 아내 정윤희(43)씨와 혜영(19), 은영(17), 민지(8) 등 세 딸을 뒀다. 주말이면 공원이나 야외로 가족 나들이를 하고, 생일이나 기념일에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외식을 한다. 가족이 함께 영화도 자주 보러 다니고, 가끔은 비행기로 여행도 한다.
그런데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 세 자매의 삶엔 뭔가 다른 점이 있다. 어느 누구도 일반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아니, 일반 학교를 다니다 그만뒀다. 그들은 말했다. “학교가 행복한 곳은 아니었다”고. “공부가 전부는 아니다”라고.
딸들의 잇따른 중퇴를 바라보며 부모가 받은 충격은 이루 다 말하기 어려웠다. 꽤나 갈등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세 자매는 잠깐 휴식 기간을 보낸 뒤 대안학교를 선택하거나, 혼자서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이제는 스스로 찾아서 자기가 원하는 공부를 한다. 최선을 다한다. 더불어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일에도 많은 시간을 쓴다.
“늘 웃으며 지내요. 매사가 즐겁고 기쁘죠. 가족 간의 대화는 이전보다 훨씬 많아지고 깊어졌어요. 지금까지 이렇게 행복한 적은 없었습니다.” 입 모아 말하는 다섯 가족의 얼굴에 진한 행복이 묻어났다.
큰딸 혜영
외교관 되는 게 꿈이었다. 3년마다 외국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인종을 만나고 다양한 문화를 만날 수 있다는 게 참 끌렸다. 고1 때부터 연세대 외교학과를 목표로 정하고 공부에 매진했다. 2학년 땐 반장도 됐다. 모범생, 우등생으로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3학년 진학을 한 달쯤 앞둔 때, 혜영씨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문득 진짜 원하는 게 뭔지 혼동스러웠다. 외교관이 되면 행복해질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잘하는 게 진짜 뭘까, 뭘 해야 정말로 행복할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한 달쯤 고민하다 3학년이 된 지 사흘 만에 자퇴서를 냈다. “더는 학교를 통해서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다고 판단했어요. 마음이 가지 않는 꿈은 거짓꿈이죠. 외교관은 제가 진짜로 원하는 게 아니라고 결론내렸습니다.”
1년 남짓 ‘자신’을 찾는 작업을 하면서 보냈다. 단체 사람들과 같이 전국을 돌며 자원봉사도 했다. 그러면서 마음이 외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느 순간 살아오면서 가졌던 원인 모를 불안감이 싹 가셨다. 마음이 평안해졌고 이런저런 생각들도 번뜩번뜩 떠올랐다.
앞으로 뭘 하고 싶냐는 질문에 “아직은 정한 게 없지만, 틀이나 직업에 맞춰 일을 찾지는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아 만족에 그치는 ‘셀프 리더’가 아니라, 남과 어울려 살아가는 ‘더불어 리더’가 되고 싶다”며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을 살짝 내비쳤다.
둘쨋딸 은영
요즘 그림을 그리느라 밤새는 날이 많아졌다. 그림 그릴 때만큼 신나고 즐거울 때는 없다고 했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엔 살아 있다는 걸 온몸으로 느껴요.” 은영양은 주제와 소재를 가리지 않는다. 도형, 희망, 친구, 꽃, 역경 등 떠오르는 모든 것을 그린다. 재료도 각양각색이다. 그가 미술재료 가게에 들를 때는 ‘또 무슨 새로운 재료를 찾으러 왔나’ 하고 주인들이 궁금해할 정도다.
아주 어려서부터 그림을 좋아했다. 부모는 ‘은영이는 붓을 들고 태어났다’고 했다. 보이는 모든 곳에 그림을 그려대는 둘째를 보면서 부모는 화가가 될 것 같다는 기대를 품었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면서 은영양의 그림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검은색이 많아졌고, 죽음과 왜소함, 닫힘 등이 주조를 이뤘다. 가장 큰 원인은 점수였다. 점수만이 자신을 판단하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모든 게 싫어졌다. “교육이라는 게 학년이 올라갈수록 시야를 넓게 하고 생각을 깊게 하는 것 아닌가요? 작은 묘목에 물과 거름을 주고 햇볕을 받게 하며 잘 키워야 큰 나무가 되는데, 어느 날 교실을 둘러보니 큰 나무는커녕 다들 죽어 가는 나무들이 되어 있잖아요.”
우울증과 불안감에 시달렸다. 친구들과 어울려 술도 마시고 놀러 다니며 풀어 보려고도 했다. 전혀 즐겁지 않았다. 그때 은영양이 믿고 따르던 고모가 다가왔다. 고모는 커다랗고 탐스러운 조카의 꽃 그림을 보고는 “그래, 넌 보잘것없는 작은 꽃이 아니라 이렇게 커다랗고 소중하고 의미 있는 꽃이란다”고 뜻깊은 말을 건넸다.
학교를 그만두기로 했다. 중3 때였다. 언니의 중퇴가 조금은 영향을 줬을 수 있지만, 자신의 선택이었다고 은영양은 강조했다. 학교 공부로는 채울 수 없는 자신의 열정을 제대로 펼치려면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자신을 채근한 결과였다.
지금은 그림 그리기를 즐기며 지낸다. 자신의 그림을 통해 마음 아픈 이들을 달래고 힘을 보태 주고 싶어한다. “어느 분야에서든 나 자신을 긍정적이고 밝게 만들면서, 더불어 남에게 마음을 주는 삶을 살고 싶어요.”
막내딸 민지
지난달 28일 오후 경기 양평군 단월면 전인학교 교정. 앞에 작은 도랑이 흐르고 교문까지 이르는 오솔길 옆으론 모내기를 앞둔 무논이 펼쳐져 있다. 뒤편에 야트막한 산을 등진 2층 학교 건물 앞 운동장에서 한 소녀가 자전거를 타고 있다. 타는 솜씨가 제법이다. 좌우로 곡예 운전을 하는가 하면 쏜살같이 내달리기도 한다.
“네가 해맑음(별명)이니?” 잠시 멀뚱멀뚱 쳐다보던 민지는 자전거를 세운다. “몇 학년이지?” “2학년.” “지금 노는 시간이야?” “아니,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는 시간.” “자전거, 재미있니?” “응, 신나.” “자전거 말고 또 좋아하는 게 뭐야?” “줄넘기, 공놀이, 달리기.” 계속 반말을 하기에 “으” 하며 한번 안아 줬더니 금세 낄낄거린다. 천진난만한 아이의 미소 그대로다.
민지가 여기에 온 것은 지난해 가을. 그 전까진 춘천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나이보다 덩치가 커서 운동을 꽤 잘했고 뛰어놀기를 좋아했다. 그런데 학교에 들어가자 모든 게 달라졌다. 맘대로 놀 수도 없었고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만 해야 했다. 깜박 잊고 교과서를 안 가져간 때는 무릎 꿇고 앉아 있어야 했다. 몇 차례 벌을 받고 난 뒤엔 친구들이 놀리기 시작했다. 민지의 불만이 쌓여가자 부모가 눈치챘다. 부모는 대안학교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춘천에서 통학이 가능한 양평을 선택했다. 물론 민지도 동의했다.
민지 반은 1~2학년 통합반으로 모두 여덟 명이다. “하늘미소, 밝은미소, 큰하늘, 하늘봄, 푸른마음, 푸른바다, 하늘사랑이 내 친구들이야. 편하고 좋아. 다들 착하고. 학교가 너무 재미있어.” 양평·춘천/글·사진 박창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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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쳇바퀴 일상’ 거기 섯!
엄마랑 아이랑 ‘날맹이 학교’
아이들은 바쁘다. 학교, 학원, 학습지, 과외…. 보금자리로 돌아오면 밤 10시가 넘기 일쑤다. 잠깐이라도 한눈팔면 처질까 두렵다.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다. 세상이 원망스럽다. 한숨을 퍼붓는다. ‘이게 아닌데….’ 하지만 그뿐, ‘뺑뺑이’ 일상은 어김없이 되풀이된다.
2000년초 한 사이버 주부대학에서 만난 아줌마들의 고민은 비슷했다. 대한민국 여느 학부모들처럼. 모두들 속마음으론 ‘이게 아닌데’ 했지만, 뾰족수는 없었다. 그러나 만나서 대화가 오가면서 고민이 힘을 갖기 시작했다. 그대로 따라갈 수만은 없다는 쪽으로 생각이 모였다. ‘날맹이(고갯마루의 전라도 사투리) 학교’는 이렇게 태어났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이 비뚤어진 경쟁과 공부에만 얽매여 있습니다. 어른들의 욕심에 불행의 구렁텅이에 처박혀 있는 거지요.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일단 머리를 맞대 보자고 했습니다.”
모임 결성을 제안한 홍준희(36·서울 송파구 거여동)씨는 취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30여 명의 ‘평범하지만 건강한’ 아줌마들이 의기투합했다. 우선 ‘모여서 놀자’부터 잘하기로 했다. 공연도 보고, 놀이공원도 찾았다. 등산도 하고, 해외 나들이도 했다. 놀이 친구, 술 친구로 정이 쌓여 갔다.
뭘 해야 하는지 감이 잡혔다. 크게 세 가지 주제를 정했다. 역사 나들이, 책 읽기, 자연체험. 모임엔 대표도, 직위도 없기 때문에 준비는 모두의 몫이었다.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방장’이 되어 일정을 잡고, 자료를 찾고, 예약하고, 아이들과 함께할 프로그램을 짜는 일을 나눠맡는 일을 책임졌다.
학교 학원 학습지 과외…주말엔 제껴두자
엄마 30명 아이 데리고 역사나들이·독서·자연체험 함께하니 행복이 솔~솔
프로그램은 ‘같지만 다른’ 내용으로 꾸렸다. 역사 나들이라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은 문화유물도 적극 찾아가는 식이다. 지난달에는 인사동을 찾았는데, 화랑이나 술집이 즐비한 거리 대신 33인이 3·1 독립선언서를 작성했던 태화관과 천도교 교당, 우정총국, 민영환 자결터 등을 둘러봤다. 황숙현(41·서울 은평구 신사동)씨는 “같은 역사 유적지를 돌면서도 그 안에 숨은 뜻을 아이들과 함께 찾으려 애쓴다”고 했다.
자연체험이나 책 읽기도 아이들이 소극적 수용자·소비자에서 적극적 해석자·활용자로 거듭나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자연체험에선 계절별로 같은 곳을 찾아 자연의 변화를 느끼게 하거나, 이름난 곳보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에 가 사진 찍는 대신 세밀화를 그리며 자연의 소리와 느낌을 마음에 담아 보도록 하곤 했다.
날맹이 학교는 주말마다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학교 공부의 연장이 되지 말도록 하자는 원칙을 철저히 지킨다. 아이들에게 세상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만날 기회를 주려고 하는데, 또다른 부담감을 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주말을 손꼽아 기다린다. 이번에는 어디에 갈까, 뭘 할까 궁금해하며 한 주일을 보낸다. 어느덧 정이 든 동생, 친구, 형, 누나들을 만난다는 기쁨도 아이들을 설레게 한다. 홍씨는 “서로가 서로에게 ‘멘토(조언자)’가 된다”며 “가족보다 더하다”고 했다.

날맹이 학교 아이들은 주중엔 여유가 있어도 학원에 다니진 않는다. 그래도 언제나 함께 놀 친구가 있고 할 ‘거리’가 있다. 홍씨의 딸 이소윤(10·서울 거원초 4년)양은 “주말에 친구들이랑 할 일을 준비하거나 엄마와 함께 음식 만들기나 동화 이어짓기 같은 걸 한다”고 말했다.
학교 공부에 매달리지 않아도, 학원에 가지 않아도 아이들은 대견하고 기특하게 잘 자라는 것처럼 보였다. 곳곳을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다양한 직업을 저절로 알고, 이것저것 많은 활동을 하며 자신의 적성도 살핀다. 나이에 상관없이 어울리다 보니 인간관계를 스스로 형성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키운다.
날맹이 학교 아이들과 부모들은 지금 행복하다고 했다. 마음 같아선 이 아이들이 앞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대안학교를 꾸리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아이만 행복해지기를 바라진 않는다고 했다. 이들이 학교를 떠나지 않고 ‘행복해지는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사진 박창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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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길 찾는 사람들
“고교 접고 직장생활 출판사로 보육교사로…진정한 내길 찾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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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안교육가 꿈꾸는 최수경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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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따라가라 한다. 다른 길을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강요한다. 그런 인생은 의미가 없다. 내 인생은 내 것이다.”
박민성, 최수경. 올해 20살, 21살의 청년들이다. 외모도 차이 나고, 성별도 다르고, 살아온 과정도 같지 않다. 사고방식과 인간관계, 기호와 취미도 다르다. 하지만 달라 보이는 가운데 같은 게 있다. 삶에 대한 뚜렷한 소신과 자신감이 그것이다.
박씨는 여성 이브닝 웨어 전문 디자이너를 꿈꾸고 있고, 최씨는 대안교육 전문 활동가를 소망하고 있다. 둘은 현재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제도교육의 틀을 벗어나 자신들이 선택한 방식으로 꿈을 가꾸고 있다.
박씨가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초등학교 다닐 무렵이었다. 여고-여대-대학원 등 ‘에프엠’대로만 살아 왔던 어머니는 아들에게 구구단을 외우게 하기보다, 렘브란트 등 화가들의 그림, 박물관·고고학 관련 책, 다양한 꽃 장식 등으로 집안을 꾸미고 장난감 분해랄지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할 수 있게 해 줬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패션에 관심이 기울어진 것 같다고 박씨는 말했다. 대안학교인 간디학교도 자유롭게 꿈을 키울 수 있을 것 같아 문을 두드렸고, 3년 내내 의상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자신이 디자인한 옷으로 해마다 패션쇼를 열기도 했다.
“대안학교서 학원으로 패션 한길만 보고 꾸준히 달려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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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이너 꿈꾸는 박민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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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의상학과 진학도 떠올렸지만, 패션 디자인을 제대로 배우려면 전문학원이 낫겠다고 여기고 서울 신사동의 프랑스계 패션학원 에스모드에 들어갔다. 서너 시간씩밖에 자지 못하고 엄청난 숙제와 냉혹한 평가로 절반 넘게 졸업도 못하는 곳이지만, 박씨는 “패션에 미치고 싶어 들어왔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재미있다”며 당당하게 말했다.
가족의 이해와 안정된 여건 속에서 적성을 발견한 박씨와 달리, 최수경씨는 고교를 중퇴하고 2년 동안 직장에 다니면서 자신의 진로를 찾았다. 1999년 울산의 한 외국어고에 입학했으나, 좋아하는 만화를 그릴 시간을 빼기가 힘들었다. 좋아하는 과목은 겉핥기로 지나가고 국·영·수만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방식도 진절머리가 났다. ‘이게 아닌데….’ 최씨는 학교를 그만뒀다. 하자센터와 민들레 출판사 등에 다니며 혼자 사는 법을 익혀 갔다. 우연찮게 대안교육을 다룬 책 <프리스쿨>을 읽고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로 2년간 일했다. “보람도 느꼈지만 애초 생각했던 대안교육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더라고요.” 대안교육을 제대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에 독일 유학을 결심했고, 오는 6월3일 출국한다.
“맞지 않는 옷을 자꾸 입으라고 하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고 봐요. 거창하게 교육의 정의니 이념이니 강조하지 말고,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종 갈리아노 같은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박민성씨, 자기 멋대로 하지만 행복하게 사는 법을 가르치는 교육을 해 보고 싶다는 최수경씨. 지금 당장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패기와 의지, 미래에 대한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당당함이 영롱한 사파이어처럼 아름답다.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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