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청소년단체에서 회의를 하는데, 여학생 넷이 사무실로 들어와 떠들었다. 한참 떠드는 모습이 신경 쓰여 다가가 같이 대화를 이어갔고, 이내 여고생들은 학교에 대한 불만들을 봇물터지듯 쏟아냈다. 그리고 그 불만을 들은 나는 심한 충격과 함께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광주에 위치한 S여고는 원래 여상(여자상업고등학교-실업계로 분류됨)이었지만 지난 2001년 S여고로 교명변경 인가를 받았다. 그리고 전문계 관련 학과와 함께 인문과를 개설해 비인문계에 걸맞는 행보를 걷기 시작했다.
이런 S여고에 다닌다는것을 모르고 있던 나는 대화중 자신이 디자인과라는 말을 듣고 대학생이냐고 되물었다. 그러나 S여고에는 디자인과, 정보처리과, 간호과, 인문과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이내 “미안하다”고 이야기 한뒤, 대화를 이어갔다. 그렇게 그들이 고등학생이라는 것을 알고 난 이후에 학교 생활과 관련된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나누었다.
“너희들이 뭘해서 되겠냐? 어차피 ‘바닥’인데…”
아이들은 얼굴을 붉히며 학교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S여고 들어와서 가장 맘에 들지 않는 것이 뭐냐’는 질문에 바로 “학생을 학생으로 보지않고, 선생님부터가 학생을 무시하는 경향”이라고 했다. A양은 본인이 동아리 활동으로 댄스를 하는데, 심지어 동아리 담당 선생님 조차도 춤연습을 하는 본인에게 “니들이 바닥인데 해서 뭐하겠냐?”라며 냉소적인 어조로 폭언을 하였다고 한다. 이로 인해 A양은 심한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비단 이런 일은 동아리 뿐만 아니라 학교 전체에 이미 만연해 있고, 학교 밖에서도 “실업계에 가까운 비인문계 고등학생이 맨날 문제를 일으킨다”며 문제아 취급을 하면서 ‘손가락질’ 한다고 하였다.
일례로 S여고 교복을 입고 버스만 타도 남고 학생들이 ‘걸레들 이다’라며 모욕을 주고, 거리를 지나가도 어른들이 혀를 차며 ‘으이그 한심한 X들’ 이라며 무시한단다. 이런 교내외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은 너무나 큰 상처와 더불어 패배감에 젖어 하루하루를 보낸다고 한다. 학교 절반 이상의 학생들은 이런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비행의 길’에 빠진다. 소위 말해 ‘노는 애들’이 학교의 대부분이 라고 한다.
실제로 기자도 광주에 살면서 사람들이 평소 S여고에 대한 좋지 않은 평판과 냉소적인 태도를 보여온 것을 많이 목격하고 들어왔다.학생들에 따르면 S여고의 흡연률은 사실상 전교생의 50%를 넘고, 결석이 ‘일반화’되어있기도 하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자퇴율도 높다.
산을 깎아서 만든 교사들의 주차장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이미 학교에서도 저희들을 포기한 것 같아요!”
가장 큰 문제점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학생으로 여기지 않는 풍토가 만연해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맥락속에서 모든 문제가 파생되어 나타났다.
B양은 “저희를 문제아로 취급해요. 그렇게 낙인시키기 때문에, 그냥 평범했던 학생들도 결국에는 비행을 하게 되요”라고 성토했다. 아이들은 주위의 냉소적 태도에 학생들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고, 그런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담배도 피고, 여러가지 비행을 자행하는거 같다고 했다.
B양은 하고싶은것과 꿈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저희는 아무것도 없어요. 꿈도 없고요. 그냥 놀아요. 우리 학교 학생들은 ‘일단 지금은 놀고보자’라는 식으로 사는 것 같아요”라며 아이들이 그저 아무 미래에 대한 희망과 준비 없이, 하루하루 시간을 탕진하며 산다고 했다.
2학년이 되면, 학생의 3분의1은 자퇴를 한다. 한번은 갑자기 학생수가 줄어 한 반을 없앴적도 있다고 한다. “보통 선생님들은 학생이 자퇴하려고 하면, 진지하게 생각해봤냐고 하거나, 후회하게 될수도 있다고도 하면서 자퇴를 만류하는데, 우리학교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자퇴한다고 하면 ‘자퇴하라!’고 하거나, 오히려 ‘너는 왜 자퇴안하냐?’며 자퇴하라고 하기도 해요.”
기자는 여기까지 들으면서도 이미 많이 놀랐지만, 아이들은 아직 더 할말이 많다며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애들이 하루하루 안 싸우면 몸이 근질근질 하나봐요.” 라며 말문을 트는 C양은 우리학교 학생들은 모두가 난폭해졌고, 하루라도 무슨 사건이 터지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문제를 일으킬 정도로 아이들이 ‘비상식적’으로 변했다고 한다. 그래도 재밌는 일이나, 그런건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애들이 피터지게 싸우는거랑, 맞짱뜨는거요!”라고 했다. 그리고 학교를 다니다가 임신을해 학교를 관두는 경우도 허다하고, 학생이 선생님을 무시하며 욕을 하다가 무차별적인 폭력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비상식’이 일반화된 이상한 학교
계속해서 말을 이어가던 학생들은 더욱 목소리를 높혔다. 특히 선생님들이 우리를 일부러 골탕먹이려는 듯 하나같이 ‘비상식적’ 이다고 했다.
예를 들어 2학년인 C양은 1학년 후배들이 시끄럽게 떠들자, 선생님으로부터 조용히 시키라고 한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와 동시에 선생님은 “야! 선배가 되가지고, 뭐하냐. 조용히 안 시키고.” 라고 했단다. 그래서 조용히 시키려하자 또다시 “야. 니들이 뭐 잘한게 있다고, 후배를 가르치냐. 됐어. 가만히 있어”라며 자신은 뭘해도 야단을 맞는다고 했다. 그리고 학교 전체 분위기 또한 가만히 있으면 맨날 ‘놀고있냐’는 식으로 혼내고,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어도 ‘니들이 해서 뭐하냐’는 식으로 냉소를 흘린다고 한다. 그래서 애들은 그저 학교와 선생님을 무시하고, 학교와 선생님도 그냥 학생을 무시한다고 한다.
학생들은 이런 문제의 원인으로 ‘학교 학생선발 기준’을 꼽았다. 광주시내에서 전문계 보다 더 선발기준이 낮다고 한다. 쉽게 말해 ‘쓰면 다 받아준다.’는 식이다. 그래서 기본적인 학습 미달의 학생(알파벳을 못 외우거나,사칙연산을 하지 못하는)들과 비행청소년으로 분류되는 학생들도 모두 S여고로 온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아이들이 개과천선은 커녕, 더 나쁜길로 들어서거나 인생을 포기할 정도로 심각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두 학교를 설립해놓고선, 대놓고 차별
기자는 너무 어두운 것만 들춰내는 것만 같아서, 최대한 긍정적인 쪽으로 대화를 이끌어 보려 했다.
Q: 그래도 우리 학교가 ‘이것 만큼은 괜찮은 것같다’는 거라든지, 그런 것 있어요?
A: (네명이 하나같이) 없어요! 학교 설립 자체부터가 학생을 위한게 아니라, 돈벌려고 세운거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그리고 가장 큰 불만이 노골적으로 입문계인 D여고와 차별을 한다는 거예요.
S여고와 D여고는 같은 재단에서 설립했고, 위치도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구체적으로 차별받은 사례를 묻자 “모든 면에서 차별해요.”라며, 특히, 얼마전 완공된 잔디구장에서 S여고 학생들이 돌을 줍거나 온갖 허드렛일을 하도록 강요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잔디구장에서 체육활동을 한번도 못했다고 한다.
반면, 공부를 좀 한다는 인문계 D여고 학생들은 매일 S여고 잔디구장에서 체육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심지어 한번은 ‘왜 우리가 우리 운동장을 사용못하느냐’는 한 학생의 질문에, 선생님이 “아직 사용할 수 없는 상태”라고 답변하기도 했다. 그러나 D여고학생들은 거기서 골프연습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이사장이 “D여고 학생은 저렇게 복장과 두발이 단정한데, S여고 학생들은 복장이 저따구냐”며 학생들이 다 보고 있는 상황에서 S여고 학생부장을 심하게 무시했다고 한다.
심지어 성희롱까지
가장 충격적인 것은 아이들이 티비에서만 보는 ‘선생님이 학생을 성희롱한다’는 얘기를 했을 때다. 얼굴이 반반하게 생기거나, 몸매가 글래머러스한 학생들에게 가끔 “너 괜찮다. 가슴도 크고” 라며 직설적으로 모욕적인 발언을 하고, 심지어는 한 학생이 엎드려 자고 있는데, 선생님이 다가와 뽀뽀하려고 해, 해당 학생이 눈물을 흘린적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남자 선생님들은 학생을 외모로 차별하기도 한다고 한다.
아이들이 꿈꾸려해도, 그 꿈을 짓밟는 S여고
Q: 그래도 막연하게 본인이 좋아한다던지, 미래에 해보고 싶은 일이 있을 것 아니예요? 아무거나 좋으니까 말해봐요?
A: 저는 디자인쪽에서 일하고 싶어요. 광주에 누구나 다아는 대표적인 로고 두개 있잖아요? 그런걸 디자인하고 싶어요. 그래서 여기 디자인과를 선택했어요.(S여고는 2학년이 되면 인문과, 디자인과, 간호과, 정보처리과 중 하나를 택한다고 한다.) 근데 선생님들 때문에 그런 의지가 꺽였어요. 선생님이 “너희들은 어차피 실업계나 마찬가지니까, 대학가기도 힘들고, 가도 입문계 애들한테도 밀리니까, 그냥 포기해” 라고 말해요. 무언가 해보려는 학생들의 의욕도 사그러들게 한다니까요. 그래서 저도 지금은 그냥 놀아요.
사회와 학교가 외면하고 무시한 아이들
예전 ‘MBC뉴스후’ 에서 클로징멘트를 한 기자의 말이 생각났다.
“학교는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학생들이라도, 정상적으로 교육해 사회로 진출시킬 의무가 있는데, 우리나라 학교들은 그런 학생들을 천대하는거 같다. 아마도 학생들보다도 학교명예를 중시하는거 같다.” 이런 형식의 일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게 광주의 S여고인 것 같다. 물론 이것이 전체 학생의 의견이 아닐수도 있지만, 이미 광주에 퍼진 S여고의 안좋은 이미지만 보더라도 “네명의 학생이 우리학교는 좋은점이 전혀없다!”는 식의 발언은 어느정도 믿음이 가는 증언일 것이다.
‘학교가 지옥이다’고 말하는 학생들만이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설령 그학생들이 문제가 있다고 치더라도, 교육자인 선생님은 적어도 그들을 변화시키려고 최소한의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한다. 그러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아이들을 ‘문제아’로 낙인시키며, ‘사회의 낙오자’로 몰아넣는 교사와 학교가 있다는 데에 깊은 절망감을 느낀다. 이런 학교가 있다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기 보다는 기름을 퍼붓는 지역사회 또한 한심스럽다. 광주교육청은 무엇을 한 것인지 한심하다.
몇년전에 우리나라 어떤 지역에서 한 전문계 고등학교가 혐오시설이라며, 학교 이전을 강하게 주장한 주민들이 있었다. 지금 이런 일은 비단 광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국으로 퍼져있다. 사회와 학교의 무시를 받는 아이들은 결국 우리 사회에서 살아간다. 어른들의 버림을 받은 아이들이 언젠가는 어른들에게 복수의 칼날을 들이밀 수도 있다.
아니 어찌보면 지금 ‘입시위주교육, 성적지상주의 분위기’에서 낙오된 아이들을 무시하는 우리나라 전체 분위기가, 우리 아이들을 낭떠러지로 몰고 있을지도 모른다.
박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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