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28일 스웨덴 스톡홀름 도심의 한 컨퍼런스홀에서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가 주최한 ‘스톡홀름 미래정책 포럼 2009’에서 참가자들이 주제 발표를 경청하고 있다.
스톡홀름 미래정책 포럼 2009
사민주의세력 정치적 영향력 적어 현실 적용 난항
사민주의세력 정치적 영향력 적어 현실 적용 난항
북유럽 사회민주주의의 전형으로 꼽히는 ‘스웨덴 모델’(the Swedish model)은 마치 가시를 지닌 장미처럼 보인다. 끌어안고픈 이상적 모형처럼 비치는 동시에 위험 요소들도 품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경제 성장과 복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나라”, “자본주의 경제의 기본 골격을 유지하면서도, 상당히 높은 수준의 평등주의적 소득 분배를 달성”한 나라, 성장 중시 경제정책과 보편적 복지 지향 사회정책의 공존, 해고의 자유와 강력한 사회안전망 가동….
다른 한편으론 시장주의적 경제정책 강화, 학생의 고교 선택권과 영리법인의 학교 설립권을 허용하는 자유주의적 교육 실험, 경쟁력·효율성의 감퇴라는 이른바 ‘복지병’, 중도·우파 연립 정권 재등장….
스웨덴 모델은 우리 사회의 뜨거운 관심 대상 가운데 하나다. 미국발 전세계 금융위기 이후 더욱 자주 회자되는 ‘노르딕 모델’(the Nordic model), ‘북유럽 모델’ 같은 용어들과 나란히. 하지만 스웨덴 모델 탐구는 쉽게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 우리 스스로 해법을 찾도록 자극하는 고난도 시험문제 같다.
지난 8월28일(현지시각)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서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www.scips.se, 소장 최연혁 쇠데르턴대학 교수·정치학)가 연 ‘스톡홀름 미래정책 포럼 2009’은, “스웨덴 모델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모색하는 토론장이었다. 올해 초 출범한 연구소가 처음 마련한 이번 포럼에는 한국의 정치·경제·사회학자들, 스웨덴 학자·정당인, 스웨덴 동포 등 50여명이 참가해 토론 열기를 달궜다. 스웨덴 모델 ‘형성 과정’에 주목하자 신정완 성공회대 교수(경제학)는 “지금까지 한국 연구자들의 관심은 주로 스웨덴 모델의 ‘구조’와 ‘작동방식’에 초점을 맞춰 왔다”며, “이제 ‘스웨덴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모델을 만들었는지’를 살피는 것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1996~97년 스웨덴 웁살라대학에서, 2007~08년 스톡홀름대학에서 머물며 연구한 그는, 이날 포럼에서 ‘두 나라 이야기: 한국에서 스웨덴 모델에 대한 연구와 논쟁’이란 주제로 발표했다. 신 교수는 그동안 한국의 스웨덴 모델에 대한 연구 주제를 세 방향으로 간추렸다. △노사관계와 노동시장(중앙집중적 조합주의적 협상방식, 연대임금정책, 임노동자기금,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복지국가(welfare state)와 사회정책(1997년 금융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의 사회정책 프로그램 대폭 강화, 노무현 정부의 ‘비전 2030’,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역동적 복지국가’론 등) △스웨덴 대기업 발렌베리(Wallenberg) 가문 등의 기업 지배구조(재벌개혁 논쟁)가 그것이다. 이런 주제들과 관련해 스웨덴은 한국의 진보적 학자·사회운동가들에게 이상적 모델로 비쳤는데도, 이를 현실화할 정치세력의 부재로 이렇다 할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해 왔다고 진단했다. 신 교수는 스웨덴이 1980년대 이후 시장 지향적 체제로 이행하고 한국에서 보수적 정치 환경이 조성됨에 따라 스웨덴 모델에 대한 관심이 당분간 줄어들 것 같다면서도, 한국 사회 양극화가 심화하고 노사·정치 갈등이 격화할수록 스웨덴 모델은 주목을 끌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주주의, 시민교육으로 뒷받침
스웨덴의 시민교육 경험을 주시해 온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연수원(원장 오봉진)도 이번 포럼에 관심을 뒀다. 고선규 선거연수원 교수(정보과학)는 ‘한국의 민주시민교육과 선거’라는 주제 발표에서, 한국이 1987년 이후 제도적 측면의 민주화에선 큰 진전을 이뤘지만, 실질적 측면에선 1987년 이후 투표율이 25% 이상 떨어지는 ‘투표율 격감’이란 문제에 봉착했다고 진단했다. 2008년 총선에서 투표하면 현금을 주는 인센티브제도까지 도입했는데도 투표율은 50% 아래로 떨어진 것이 단적인 보기라는 것이다. 특히 2007년 대선에서 정치 무관심이나 무능감 때문보다 개인적 일(바빠서) 때문에 기권했다는 유권자들이 급증한 것은 정치 참여와 관심을 높일 민주시민교육이 시급함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현재 한국의 민주시민교육 관련 단체들은 프로그램 개발과 강사 확보 등을 개별적·산발적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스웨덴의 노동자교육협회(ABF·Arbetarnas Bildningsförbund, www.abf.se) 등과 같이 ‘재원은 국가가 지원하되, 독립적·중립적 허브(hub) 조직이 프로그램 진행과 전국 소규모 단체들의 활동 등을 지원하는 방식’에 주목하자고 그는 제안했다. 스웨덴 노동자교육협회는 1912년 사회민주당 지원으로 노동자 교육을 위해 출범한 뒤로 오래지 않아 시민교육·평생교육 등을 맡는 민주시민교육기관으로 변모해, 스웨덴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주춧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황아란 부산대 교수(정치학)는 최근 여론조사에 바탕해 한국 정치세대의 이념적 성향을 분석해 보니 “전반적으로 자유보다 질서를 중시하면서, 자유보다 평등을 중시하는 성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정치적 가치관 등에서 세대 간 격차가 그리 크지 않는 동질적인 특성을 보였다”고 밝혔다. 그는 “특정 정당 지지를 표방하지 않는 독자적 성향 유권자들이 늘고 정당에 대한 지지도 사글어들고 있는 점을 한국 정당들은 주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연혁 교수는 “스웨덴에서도 젊은 층의 정치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떨어져 참여도가 낮다”며 “그러나 노동자교육협회처럼 정당으로부터 태어났지만 정당과 무관하게 움직이는 자율적인 조직들, 메드보리아르스콜란(Medborgarskolan, www.medborgarskolan.se) 같은 민간 시민교육기관 등이 정치적 충원을 매개하고 민주정치교육을 맡는다는 점이 한국과 큰 차이로 보인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스웨덴에서 정치학을 연구해 온 최 교수는, 다양한 의견 수렴과 이해관계 조정을 통해 갈등을 풀어내는 장치로서 스웨덴의 특별위원회(Kommittéväsendet) 제도 및 국가특별조사보고서(SOU·Statens Offentlig Utredning) 제도를 최근 한국 사회에 소개하며 이른바 ‘협의 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 모델에 주목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최연혁, 사회갈등 예방의 정치와 입법부의 역할).
스웨덴 중학교에서 8년째 영어를 가르쳐 온 정인아(49) 교사는 “스웨덴 학교에선 주입식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스스로 생각하는 사고력을 길러 주는 데 힘쓴다”며 “민주적 시민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생각하고 논쟁(debate)할 수 있는 능력의 함양은,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아도, 스웨덴 민주주의에 힘을 주는 요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양성 평등, 갈 길 멀어
스웨덴은 여성의 정치·사회 참여에서 세계 최상위권 나라라는 점에서, 여성계의 관심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문경희 창원대 교수(정치·국제관계학)와 오유석 성공회대 교수(사회학)는 ‘한국 선거에서 여성 할당제’와 관련한 주제 발표를 통해, 한국 여성운동단체들이 대통령 후보나 정당들에 여성 후보 할당제를 압박함으로써 스웨덴 등에 견주면 짧은 기간에 성과를 거뒀으나, 2008년 총선에서도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3.7%(299명 가운데 39명)에 머물고 있다고 분석했다. 스웨덴은 2006년 총선 결과 여성 의원이 47.3%(349명 가운데 165명)에 이르며, 여성 장관 비율은 45.5%(22명 가운데 10명)에 이른다. 문 교수는 “성 평등과 관련해 스웨덴 모델은 제도적으로 앞서 있고 여러 쟁점들도 제시하고 있다”며 심층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대표를 겸하고 있는 오 교수는 “한국과 여러 모로 배경이 다른 스웨덴에서도 여성 정치 참여 확대를 두고 논쟁이 격렬했다고 한다”며 “여성들이 지닌 잠재력을 사회적으로 끌어내려는 노력을 정치적으로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30년 넘게 스웨덴에서 지내 온 한기숙(일반내과 전문의·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스웨덴 자문위원)씨는 “한국 여성들도 (스웨덴 여성처럼) 시민교육에 적극 참여하고 함께한다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정완 교수는 1950년대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연대임금 정책, 곧 ‘하는 일이 같으면 같은 임금을 준다(동일 가치 노동엔 동일 임금)’는 정책으로 남녀 임금 격차가 줄었고 여성 노동자들이 혜택을 얻었다며, “한국 여성 문제의 핵심에 빈곤 여성 문제가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것”을 여성계에 주문했다.
교육·복지 등으로 구체화할 것
이날 포럼에선 칼-페터 토르발드손 스웨덴 노동자교육협회 의장, 예니 살라이 스웨덴 사회민주당 전 재무차관, 카티야 에크발-마그누손 메드보리아르스콜란 국제담당관, 파타이 아부이세이판 사회민주당 청년위원회 상임위원, 에릭 쉘러 자유국민당 청년위원회 상임위원 등이 스웨덴 경험을 소개했다.
스탄 쥐보로비쉬치 교수(폴란드 아담미키에비쉬치대학·정치학)와 가브리엘 욘손(스톡홀름대학·한국학) 교수, 현지 동포 이영미(배스테르빅전력회사 영업담당 상임이사)·조혜정(스톡홀름 한국학교 교장)씨 등이 발표·토론에 참여했다. 홀게르 구스타프손 스웨덴의회 의원(스웨덴-한국 의원친선연맹 회장)은 환영사에서 한국과 스웨덴의 가교 구실을 맡은 스톡홀름 미래정책 포럼과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에 감사하다는 뜻을 밝혔다.
1986년 유학해 스웨덴에 머물러 온 스톡홀름 미래정책 포럼 사무총장 이충호 사브 콤비테크(SAAB Combitech) 시스템 엔지니어(전산학 박사)는 “이 포럼은 국민과 지역 간에 삶의 질이 고르게 균형잡힌 사회, 갈등을 최소화하는 사회가 무엇인지 두 나라 경험을 바탕으로 함께 모색하는 장”이라며 “내년엔 교육, 복지, 환경 등 더 구체적인 주제를 놓고 포럼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스톡홀름/글 이수범 기자 kjlsb@hani.co.kr, 사진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민혜아씨(서울시립대 학생·현 쇠데르턴대 교환학생) 제공
지난 8월28일(현지시각)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서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www.scips.se, 소장 최연혁 쇠데르턴대학 교수·정치학)가 연 ‘스톡홀름 미래정책 포럼 2009’은, “스웨덴 모델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모색하는 토론장이었다. 올해 초 출범한 연구소가 처음 마련한 이번 포럼에는 한국의 정치·경제·사회학자들, 스웨덴 학자·정당인, 스웨덴 동포 등 50여명이 참가해 토론 열기를 달궜다. 스웨덴 모델 ‘형성 과정’에 주목하자 신정완 성공회대 교수(경제학)는 “지금까지 한국 연구자들의 관심은 주로 스웨덴 모델의 ‘구조’와 ‘작동방식’에 초점을 맞춰 왔다”며, “이제 ‘스웨덴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모델을 만들었는지’를 살피는 것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1996~97년 스웨덴 웁살라대학에서, 2007~08년 스톡홀름대학에서 머물며 연구한 그는, 이날 포럼에서 ‘두 나라 이야기: 한국에서 스웨덴 모델에 대한 연구와 논쟁’이란 주제로 발표했다. 신 교수는 그동안 한국의 스웨덴 모델에 대한 연구 주제를 세 방향으로 간추렸다. △노사관계와 노동시장(중앙집중적 조합주의적 협상방식, 연대임금정책, 임노동자기금,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복지국가(welfare state)와 사회정책(1997년 금융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의 사회정책 프로그램 대폭 강화, 노무현 정부의 ‘비전 2030’,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역동적 복지국가’론 등) △스웨덴 대기업 발렌베리(Wallenberg) 가문 등의 기업 지배구조(재벌개혁 논쟁)가 그것이다. 이런 주제들과 관련해 스웨덴은 한국의 진보적 학자·사회운동가들에게 이상적 모델로 비쳤는데도, 이를 현실화할 정치세력의 부재로 이렇다 할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해 왔다고 진단했다. 신 교수는 스웨덴이 1980년대 이후 시장 지향적 체제로 이행하고 한국에서 보수적 정치 환경이 조성됨에 따라 스웨덴 모델에 대한 관심이 당분간 줄어들 것 같다면서도, 한국 사회 양극화가 심화하고 노사·정치 갈등이 격화할수록 스웨덴 모델은 주목을 끌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주주의, 시민교육으로 뒷받침
스톡홀름 미래정책 포럼 2009’를 주최한 스톡홀름 미래정책 포럼 사무총장 이충호 박사(왼쪽)와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의 소장 최연혁 쇠데르턴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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