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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욕심을 진실처럼 말하지 말라

등록 2009-09-13 13:55

남관희의 학부모코칭
남관희의 학부모코칭




남관희의 학부모코칭 /

어느 재벌그룹의 큰 기업체에서 전문코치가 되는 과정을 개설해서 강의를 맡게 되었다. 참가자들은 전부 인력개발을 담당하는 과장급 이상의 간부로 이루어져 있었고 대부분 자녀들이 다 있었다. 강의 시간 중에 우연히 해묵은 질문을 던져 보았다. “과연 행복은 성적순인가?” 나는 이 질문을 던지면서 “아니오”라는 말이 바로는 안 나오더라도 결국은 이 진실을 시인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결과는 의외였다. 대다수의 참가자들이 답을 못 하고 한참 동안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전전긍긍하는 게 아닌가? 나도 당황스러웠다. 그렇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여러분들은 코치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라는 말을 하게 되었다.

그들의 심정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행복 하려면 어느 정도의 경제적 안정이 필요하며, 경제적 안정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공부 잘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생각으로 침묵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참에 나는 어떤 생각을 갖고 아이를 키웠을까 돌아보았다. 나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다. 아이들에게 공부 잘해야 잘 살 수 있다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다. 특히 고2 시절까지 성적이 중간 정도였던 둘째아이에게는 ‘공부 못해도 잘 살 수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혹시 다른 사람들이 공부 잘해야 잘 살 수 있다고 말하더라도 그게 진실이 아니다. 그리고 나중에라도 공부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우리 아이가 공부를 잘하기를 원하지 않았을까? 절대로 아니다. 나 역시 우리 아이들이 공부 잘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소망이 있었다. 아이의 성적이 좋아지면 뛸 듯이 기뻤고 성적이 떨어지면 오만 정이 다 떨어졌다. 우리 아이가 원하던 대학에 들어갔을 때 어디 가서 막 자랑하고 싶었고, 친구 자녀가 상위권 대학에 갔다고 했을 때 샘이 날 정도로 부러웠다.

정리해 보면 진실과 욕심의 구분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것은 진실이고 아이가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다는 것은 욕심이라는 것이다. 진실은 진실인 줄 알고 두려움 없이 얘기할 수 있어야 하지만 욕심은 욕심인 줄 알고 자제해야 한다. 그런데 이게 뒤섞이면 욕심을 진실처럼 얘기하게 된다. 목소리는 커지지만 말에 힘이 빠지고 신뢰를 얻지 못한다.

오늘도 어떤 속 썩는 고3 아빠와 얘기하면서 이와 비슷한 주제를 다루었다. 아이가 공부에 관심이 없는데 못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좌절하고 거의 포기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이 아빠는 나와 얘기를 나누면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라는 것은 동의하지만 아이가 이 진실을 알까 두려워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 진실을 알게 된다면 그나마 있던 공부에 대한 미련조차 놓아 버릴까 봐 걱정이 되는 것일 게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그동안 수없이 들었던 ‘공부 못하면 패배자’라는 등식에서 벗어나는 것이 먼저이다. 아이는 이미 자신감을 많이 잃었다. 단지 공부에 관심이 없었고, 따라서 성적이 안 좋았던 것에 불과한데 행복을 위한 인생의 마라톤에서 주저앉아 있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라도 간단한 진리를 일깨워줘야 한다. 그리고 진실을 몰랐거나 속였던 것에 대해 사과하는 편이 오히려 새로운 관계의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을 잘 가르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녀를 잘 코칭하는 것은 언제나 진실로부터 출발한다. 욕심에 눈이 어두워 진실과 욕심을 적당히 비벼놓고 마치 진실인 것처럼 말한다면 자녀를 코칭할 자격이 없다.

한국리더십센터 전문교수, 한국코칭센터 전문코치 khnam@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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