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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다툼 다독거리는 옛이야기의 힘

등록 2005-05-29 18:03

결이가 볼일을 보고 돌아왔을 때 블록은 모두 바닥에 흐트러져 있었습니다. 게다가 아기들이 블록을 차지한 채 놀고 있었지요. “누구야? 내 블록 무너뜨린 게!” 결이는 억울해서 저도 모르게 곁에 서 있던 은이에게 주먹이 나갔습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은이가 주저앉아 울기 시작합니다.

어린이집에 결이가 온 뒤 큰 소리가 자주 났습니다. 그때그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처음이라 그랬던 것 같습니다. 처음 어린이집에 오면 아이는 불안감과 공포심을 느낍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인 데다가 엄마도 곁에 없으니까요. 결이는 공포심을 공격성으로 바꾸어 드러내는 듯했습니다.

결이는 나를 독점하다시피 하고 계속 그림책을 읽어 달라는 일이 많았습니다. 결이에게 그림책을 꾸준히 읽어 주다가 어느 날 무심히 옛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결이의 반응은 거의 폭발적이어서 나는 두 시간 내내 옛이야기를 해야 했습니다. 덕분에 ‘씩씩이 어린이집’ 모두 평화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약하고 힘들어도
결국 착한 사람이
승리하는 옛얘기
얼굴 마주 보고 들려주면
친밀감 쑥쑥 웃음도 활짝

%%990002%%

어느 날은 ‘나귀 방귀’ 같이 우스운 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결이를 시작으로 아이들이 저마다 우스운 이야기를 하겠다고 나서더군요. 저희끼리 마주보고 어찌나 웃어대는지 결이에게 발로 채였던 아이도, 주먹으로 얻어맞은 아이도 함께 흥겨워했습니다. 나도 신이 나서 ‘지네 처녀’ 이야기도 해주고 ‘착한 동생과 못된 형’ 이야기도 해 주었습니다. 이야기가 끝나면 곁에서 듣고 있던 예진이 얼굴에 환하게 만족한 웃음이 떠오르곤 했습니다. 조용하고 반듯한 예진이는 아주 진지한 얼굴로 눈을 크게 뜨고 이야기를 듣는데 옛이야기가 지닌 권선징악의 세계가 만족스러운가 봅니다.

옛이야기를 해 줄 때는 그림책을 읽어 줄 때와는 또 다른 친밀감이 감돕니다. 그림책을 읽어 주는 동안은 아이들이 그림을 보며 내 목소리를 듣지만 옛이야기를 해 주는 동안 우리는 서로 마주보며 이야길 하고 듣게 되니까요. 옛이야기 속 사건들은 쑥쑥 숨가쁘게 펼쳐지면서 아이들의 귀를 사로잡습니다. 옛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반쪽이’나 ‘콩중이’처럼 약하고 억울한 존재였다가 나중에는 잘 살게 됩니다. 옛이야기는 삶의 여러 모습을 보여 주면서 아이들에게 모두 잘 될 거라고 위로해 주었고, 공포심에 공격적으로 변했던 아이도, 억울한 일을 당한 아이도, 의로운 마음으로 모든 걸 지켜 본 아이도 마음에 안정을 얻은 듯합니다.

여하튼 옛이야기 덕분에 아귀다툼이 멈추고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그날 나는 프랑스의 작가 다니엘 페나크가 한 말을 떠올리며 웃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야기의, 아니 좀더 넓게는 모든 예술에서의 가장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를 발견했다. 즉 인간들의 아귀다툼을 멈추게 하는 역할.”

옛이야기 거리는 <나귀 방귀>, <방귀쟁이 며느리>가 들어 있는 ‘옛이야기 보따리’(모두 10권, 보리)나 <한국구전설화>(평민사) 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성실/자연그림책 작가 6315f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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