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적 사건을 어린이책에서 다루는 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눈높이를 맞추어 설명하기도 쉽지 않을 뿐 아니라 부끄러운 부분을 감추고 싶은 마음과도 싸워야 하니 말이다. 그러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떠올려 마주하고, 이리저리 따져 보고, 차근차근 설명하고, 지금의 우리 삶과 연결짓는 일은 꼭 필요하다. 우리가 역사에서 배우고 가르쳐야 할 것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자유의 길>(낮은산)은 미국의 흑인 노예 문제를 다루고 있다. 1518년부터 1865년까지 수많은 아프리카인들이 끌려와서 당한 수모와 고통, 자유를 찾기 위한 노력을 손에 잡힐 듯 섬세하게 묘사한다.
“차곡차곡 쌓여 있네. 관처럼 좁고, 관처럼 캄캄한, 그런 판자 위에 똑바로. 차곡차곡 쌓여 있네. 산 채로, 산 채로, 그렇게 산 채로.” 생생하고 미묘한 뉘앙스를 살린 도발적인 그림이 예민한 감성을 건드린다. 판자 위에 깡통 쌓이듯 차곡차곡 쌓인 흑인 노예들의 핏기 없는 발바닥을 보면서 태연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책의 장점은 부끄러운 과거를 그저 정직하게 보여 준다는 데 있지 않다. 어린 독자에게 끊임없이 개입하기를 요구하여 “과거에 살과 피와 영혼을 불어넣고” 지금, 우리의 이야기로 만든다는 데 있다. 상상해 보라고, 입장을 바꾸어 보라고, 너라면 어떻겠냐고. 지난 시절의 이야기일 뿐이라며 거리를 두게 하지도 않고, 안심시키지도 않는다. 알맞은 비유로 입장 바꾸기,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를 제안할 뿐이다. 폭력을 가하는 자와 폭력을 당하는 자 모두의 자리를 경험하게 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의 무게를 느끼게 해 준다.
자료를 보니 만들어진 과정도 남다르다. 화가 로드 브라운이 ‘노예’를 주제로 그림 서른여섯 점을 그려 뉴욕과 워싱턴에서 전시를 했는데, 그 가운데 스무 점 남짓을 뽑아 작가 줄리어스 레스터가 글을 써 그림책으로 꾸몄단다. 때로는 시적이고 때로는 선언적인 도입 글과, 친절한 교사처럼 차근차근 생각을 유도하는 설명글, 그리고 흑인 노예들의 처절한 독백과 노래가, 강렬한 그림과 어우러져 독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최정선/보림 편집주간 ebony@borimp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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