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얘길 들려줄게!>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무인도를 탈출한 척(톰 행크스)은 축하연에 마련된 성찬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직접 만든 작살로 잡은 물고기를 나뭇가지로 피운 불에 구워 먹으며 연명하던 그가 화려한 바닷가재 요리와 조우하는 순간, 허망한 웃음이 터진다. 모든 것이, 너무나 넉넉하다.
먹을 것과 입을 것, 장난감이 그득한 할인매장을 수시로 드나드는 아이들에게 “아프리카에는 부모를 잃고 굶주리는 또래 친구들이 있다”고 말해 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바닷가재 요리 앞에서 “무인도에선 물고기를 잡지 못하면 죽음뿐”이라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실감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 난민촌 아이들의 글과 그림을 엮은 〈우리 얘길 들려줄게!〉를 펼치는 순간 세상에는 ‘할인매장’만 있는 게 아니라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여야만 하는 ‘무인도’도 많음을 깨닫게 된다.
“먹을 게 없어 친구가 죽어가는 모습을 빤히 보면서도 계속 걸었어요. 도울 수 있을 때도 있지만 도울 수 없을 때도 있잖아요. 난 지금 생명을 말하는 거예요. 친구를 남겨 둔 채 떠나야 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나도 그 친구와 함께 죽을 테니까.”
수단 소년 촐은 아홉 살 때 친구와 자신의 생명을 견줘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탕! 탕! 탕’ 소리를 듣고 맨발로 집을 뛰쳐나온 촐은, 풀을 뜯으며 걷다가 물고기를 잡아먹을 수 있어 행복했고, 난민촌에 도착한 뒤엔 소박한 음식과 지붕 없는 학교에 감사하며 산다.
전쟁이 할퀸 아프리카 땅
꼬마 난민들의 글,그림
그 속에도 꿈이 담겨 있다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
글과 그림을 엮은 시벨라 윌크스는 유엔 난민기구에서 일하며 만난 아이들에게 그림물감과 동화책을 건넸다.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시간을 보낸 아이들이 글과 그림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아이들이 그린 건 온통 ‘길’이다. 무수한 발자국, 봇짐을 지고 길 위에 선 사람들, 길이 끊어진 곳에서 만난 거대한 강이 도화지 가득 펼쳐진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들은 다른 이야기도 풀어놓는다. 사자와 낙타, 여우가 등장하는 ‘아프리카식’ 우화를 들려준 수단 소년 다니엘은 말한다. “내 이야기를 다른 친구들이 재미있게 읽어 주면 좋겠어요. 사람들은 우리가 웃지도 않고 놀지도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너무나 넉넉한 이곳이 원망스럽게 느껴질 만큼 부족한 그곳에도, 아이들이 살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꿈, 아빠를 만나는 꿈, 의사가 되는 꿈을 꾼다. 난민들의 실상을 다룬 어떤 보도나 사진 못지않게 가슴 아픈, 그러나 ‘충격’보다는 ‘공감’과 ‘이해’를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초등 저학년. 시벨라 윌크스 엮음. -도서출판 디딤돌/1만800원.
이미경 기자 friendlee@hani.co.kr
꼬마 난민들의 글,그림
그 속에도 꿈이 담겨 있다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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