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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생활논술이 샘물되길

등록 2005-05-30 17:38수정 2005-05-30 17:38

짧은말투 메마른 토론
생활논술이 샘물되길

확실히 아이들의 화법이 달라졌다. 말도 간결하고 글도 간결하다. 그 차이가 몇 년 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져, 웬만한 감정 표현은 “재수 없어”, “짜증 나”, “열라 싫어”, “짱 웃겨” 정도의 간명한 문장으로 대신한다. 더 짧게는 ‘헐’ ‘즐’이란 은어로 압축하기도 한다. 실제 글쓰기를 시켜 보면 휴대전화나 ‘버디’에서 날리는 문자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사정이 이렇고 보니 어른들이 길게 늘어놓는 설명을 몹시 못 견뎌하며, 긴 분량의 글을 요구하면 질색을 한다. 화법이 짧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참을성이나 논리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는 얘기다.

얼마 전에 수행평가 겸해서 전교생을 대상으로 논술대회를 치렀다. 제시된 4개의 논제 가운데 하나를 택해서 쓰는 논술이었다. 사전 자료조사가 필요할 듯해서 큰 주제(안락사, 독도 분쟁, 외모지상주의, 경쟁사회에서의 바람직한 인간상)를 미리 예고하고 논술대회를 치렀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아이들의 글을 읽는 내내 참 재미없고, 고통스러웠다. 묘하게도 글이 길면 길수록 논리가 엉키고 앞뒤가 어긋났다. 대여섯 줄이면 하고 싶은 말을 다 끝낼 수 있는데 뭘 더 쓰란 말인가, 하는 느낌이 역력했다. 제법 논리를 갖추었다 싶은 글도 어디서 베껴온 것인지, 전개와 논거가 한결같았다.

글은 곧 그의 사고 체계다. 살피건대, 아이들 사이에서 토론이 사라진 것도, 쉽게 화부터 버럭 내는 것도 아이들의 화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차근차근 설득할 수 있는 논리를 갖추었다면 화부터 내겠는가. 화는 꼭 욕을 부른다. 열라 짜증 나! 재수 없어!

그래서 궁리 끝에 계획하고 있는 것이 ‘생활논술’이다. 아이들에게 물어 보면 부모님이나 학교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불만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잔소리, 용돈, 학원, 급식, 교칙 등등. 좋다, 불만이 있다면, 짜증만 내지 말고 설득해서 바꿔 보자. 말하자면, 자신이 가장 불만스럽게 여기는 부분에 대해 직접 부모님이나 교장 선생님을 상대로 설득글을 써서 발송하는 것이다. 일단 자신의 생각이 정리되면, 서로 돌려 읽으면서 설득의 논거가 타당한지, 억지는 없는지, 또다른 논거가 필요하지는 않은지 등을 토론해서 보충하고 고쳐 쓴다. 다 완성되면 직접 발송!

말재주를 키우자는 게 아니라, 상황을 충분히 따져가면서, 또는 배려하면서 판단하는 성숙한 안목을 키워 보자는 것이다. 그게 논술의 목적 아니겠는가.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대화와 설득이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 고민과 성찰, 긴 호흡의 궁리를 요구하는지만이라도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인데, 아이들이 덥썩 덤벼들지는 모르겠다. 이상대/서울 신월중 교사 applebighea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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