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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삼류 인간이라 여기는 딸 보면 ‘가슴에 멍’

등록 2009-10-21 14:44수정 2009-10-21 14:52

외고 낙방생 둔 엄마의 눈물
일반고 갔지만 ‘문제아’ 낙인…자퇴 후 심리치료
“어린 아이들 성적으로 줄세우는 짓 그만뒀으면”
지난해까지만 해도 모범생 딸을 둔 엄마로 남부러울 게 없었던 서아무개(서울 강남구)씨는 요즘 딸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서씨는 매주 화요일에 16살짜리 딸을 데리고 심리상담을 받으러 간다. 서씨의 딸 지연(가명)이는 고교에 입학한 지 넉 달 만인 지난 6월 말 ‘문제아’라는 꼬리표를 달고 학교를 자퇴했다.

지연이는 중3 때까지 늘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던 모범생이었다. 글짓기와 그림 그리기에도 재능이 있었고, 초등학교 때는 반장도 도맡아 했다. 그러던 지연이가 변한 것은 지난해 외국어고 입시에 실패하면서부터다. 서씨는 “이쪽(강남) 엄마들이 다들 그렇듯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외고를 목표로 준비를 시켰다”며 “외고 입시학원도 보내고 그룹과외도 시켰지만, 어디까지나 딸의 의지가 강했을 뿐 절대 강요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연이는 지난해 서울에서 가장 최상위권 학생들이 모인다는 한 외고에 지원했다 떨어졌다. 지연이와 함께 외고 입시 그룹과외를 했던 3명은 모두 합격했다. 이때부터 지연이는 엇나가기 시작했다.

“딸아이가 ‘자존심이 상해 일반고엔 죽어도 안 가겠다’고 버텼어요. 재수를 하는 한이 있어도 꼭 외고에 가겠다고요.”

부모님과 담임 선생님의 설득 끝에 결국 집 근처 학교에 진학했지만, 지연이는 적응하지 못했다. 서씨가 ‘학교 가라’고 깨우기만 해도 ‘나 같은 낙오자가 학교는 다녀서 뭐하느냐’, ‘인생의 첫 관문부터 실패했는데, 앞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있겠냐’, ‘친구들이 다들 나를 무시하는 것 같다’는 말을 쏟아냈다. 학교에 간다고 집을 나가 거리를 헤매기 일쑤였다. 지연이는 자연스레 학교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혔다. 지연이는 학교를 자퇴하고 현재는 상담치료를 받으며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지연이는 외고는 일류, 일반고는 이류·삼류라고 생각해 외고에 떨어진 자신도 이류·삼류 인간이라고 여기나봐요. 사실, 저도 예전엔 아무 생각 없이 그게 사실이라고 여겼어요.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은 어차피 학교를 서열화하는 구조니까요.”

서씨는 최근 불거지고 있는 ‘외고 폐지’ 논란을 보면 마음이 착잡하다고 했다. “1년 전만 해도 외고 폐지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최소한 어린 아이들을 성적 순으로 줄 세우고 그게 마치 ‘행복의 순서’라도 되는 양 사회적으로 착각하는 짓은 그만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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