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오대산/홍순율 여행작가 , 김포 해변/유정렬 여행작가, 선운사/유정렬 여행작가
[커버스토리]
지원아. 수능이 끝난 날 현관문을 들어서던 너를 보고 가슴이 막혔다. 숨죽이며 기다리던 우리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 채 너는 네 방으로 숨어들었지. 다음날 아침까지 너는 죽은 듯이 잠만 잤다. 수능, 입시…. 노력이 반드시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 비정한 진리를 너는 벌써 맛본 건지도 모르겠다.
25년 전 내가 그랬다. 그때는 희망 대학을 한 곳 고르고 그 대학에 가서 학력고사를 봤지. 지금은 수능을 치른 뒤에 대학에 지원하니 원치 않는 대학이라도 갈 수는 있지만 그때는 그게 불가능했어. 시험에서 떨어지면 그게 끝이었다. 재수할 형편이 안 됐으니까 나한테는 정말 끝이었다. 시험을 끝내고 가방을 챙기는데 눈물이 얼굴을 삼킬 것처럼 흘렀다. 아마 수능이 끝난 날, 너와 같은 심정이었을 것 같다.
나를 살린 것은 여행이었다. 학력고사를 친 다음날 밤, 무작정 집을 나섰다. 작가 김승옥은 <무진기행>에서 “몇 차례 되지 않은 무진행이 그러나 그때마다 내게는 서울에서의 실패로부터 도망해야 할 때거나 하여튼 무언가 새 출발이 필요한 때였었다”고 했는데 내가 그랬던 모양이지.
청량리역에서 비둘기호를 타고 부산으로 갔어. 꼬박 10시간, 기차는 수없이 많은 역에 정차하며 꾸역꾸역 깜깜한 밤을 달렸다. 동이 트고도 한참 뒤에 부산에 내렸다. 그리고 부산에서 제일 높은 산을 물어 찾아갔다. 금정산을 오르다 범어사라는 작은 절을 발견했지. 꼿꼿하게 서 있는 소나무가 눈에 들어오더라. 그 아래에서 해가 질 때까지 쭈그리고 앉아 있었어. 생각이 밀물과 썰물이 되어 수만번 들락거렸지. 해답은 없었어. 다만 나는 내 불안의 실체를 명쾌하게 밝힌 것만으로도 안심이 됐다. 대입에는 실패할 수 있지만 아직 인생에 실패한 건 아니라는 것 말이야. 밤기차를 타고 올라오는 길에 나는 좌석에 널브러져서 쏟아지는 잠에 취했다. 대학교 3학년 때인가, 진로 고민에 어깨가 무거울 때였어. 도서관에 처박혀 지냈지. 고독했고 불안했다. 모든 사람들이 기쁨에 들뜬 크리스마스이브, 나와 괴리된 현실과 사람들을 떠나고 싶었다. 그렇게 목포-해남-순천-남해-통영, 남해안을 4박 5일 동안 일주했지. 그 뒤에 내가 답답한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묘수를 얻은 것은 아니야.
버스 안에서 낯모르는 아저씨가 따라준 모과주를 마시고, 보길도의 부두에서 만난 낯선 아저씨의 인생 역정에 귀를 기울였던 그 여행은 그저 고독에 갇힌 나를 해방시켜준 것이었어. <고백록>을 쓴 아우구스티누스는 “걸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고 말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도보여행에 매료된 것인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여행이 해결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여행은 날 해방할 뿐이야.
아직도 그때 마신 모과주의 쌉싸름한 맛이 생생한데, 그러고 보면 여행은 낯선 장소뿐만 아니라 낯선 스승을 찾으러 가는 것 같기도 해. 회사에 다니는 게 의무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지. 그만두고 싶은 생각에 식구들 얼굴은 쳐다보지도 못했어. 그때 나는 여행을 지푸라기처럼 잡았다. 강원도를 헤매다 평창의 한국자생식물원에 들렀는데 거기 원장과 말을 트게 됐어. 이런저런 푸념을 쏟아 놓는 나한테 원장이 이런 말을 했어. “나무도 10년은 자라야 나무 소리를 듣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무슨 일이든 10년은 한 우물을 파야 해요. 나무도 10년이 되기 전에는 쓸모가 없는데 하물며 사람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식구들이 너한테 이런 얘기를 하는 것보다,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는 것보다, 낯선 곳에서 만난 선한 인상의 누군가가 너한테 이런 이야기를 건넨다면 어떨까.
사실 나는 네가 좋은 성적을 받든 그렇지 않든 그 사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때로 삶은 나의 통제를 벗어날 수도 있거든. 네 덕도 아니고 네 탓도 아닌 일들이 일어나곤 한단다. 전남 해남에 있는 미황사라는 절을 갔을 때였어. 암 투병에 성공하고 건강을 회복했다는 서울의 한 아주머니를 만났지. 기적 같은 이야기에 폭 빠져 언제 한번 다시 보자고 연락처도 주고받았어. 2년쯤 지났을 때 다시 한번 그곳을 찾았지. 기억이 나서 전화를 했는데 아주머니의 아들이 받더구나. “어머니께서 얼마 전에 암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 나는 내가 어쩔 수 없는 ‘순리’를 인정해야 했어. 만일 최선을 다했는데도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그건 네가 인정해야 할 ‘순리’다.
오대산을 올랐을 때도 그랬지. 눈이 수북이 쌓인 산을 홀로 올랐다. 동이 틀 무렵 정상에 닿았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었어. 산 정상은 하늘과 맞닿아 있었고 햇빛은 드넓은 산 정상을 비추고 있었지. 사람도 동물도 바람도 없는 그곳에 자연과 나뿐이었어. 그때 나는 한없이 낮아졌다. 나를 휘어잡고 있던 경쟁 심리와 성취욕이 증발하는 것 같았어. 100만원을 가졌든 1억을 가졌든, 100점을 맞든 빵점을 맞든, 이런 거대한 자연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앞에 보이는 결과에 급급했던 내가 우스워 보이고 나의 걱정과 번민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면 나한테는 ‘여행의 유전자’가 있는 것 같아.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유전자도 다르다거든. 선사시대 인류가 초기에 이동할 때 어떤 이들은 유라시아 대륙에 머물고 어떤 이들은 베링해협을 건너 남아메리카까지 내려간 모양이야. 베링해협을 건넌 이들한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D4-7 유전자가 여행의 유전자라고 하더구나. 인생의 해협을 건너는 데 필요한 게 여행이라는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나는 널 떠나보내고 싶구나. 지도는 늘 길을 보여주지만, 골라주지는 않지. 가족과 선생님이 길을 가르쳐주지만 정작 걸어야 할 길을 고를 사람은 바로 너야. 여행지에서 낯선 길을 만나고 여러 갈래의 길 가운데 진짜 길을 선택해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의 성취감이 도움이 될 거야. 1969년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첫 발자국을 남기면서 한 말이 기억난다.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에 불과하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라는. 오늘 떠나는 너의 한 걸음이 인생의 큰 도약으로 이어질지도 모르잖아. 참, 여행을 가면 기록을 남기는 게 좋다. 사진이든, 글이든, 그림이든 너의 여정과 감상을 기록해. 마르코 폴로가 중국을 여행하고 썼다고 하는 <동방견문록>은 훗날 콜럼버스가 신대륙 발견을 위한 항해에 나설 때 가이드북 구실을 했다더구나. 너의 기록은 앞으로 네 인생의 신대륙을 개척할 때 지도가 돼줄 거라 믿는다.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그러고 보면 나한테는 ‘여행의 유전자’가 있는 것 같아.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유전자도 다르다거든. 선사시대 인류가 초기에 이동할 때 어떤 이들은 유라시아 대륙에 머물고 어떤 이들은 베링해협을 건너 남아메리카까지 내려간 모양이야. 베링해협을 건넌 이들한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D4-7 유전자가 여행의 유전자라고 하더구나. 인생의 해협을 건너는 데 필요한 게 여행이라는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나는 널 떠나보내고 싶구나. 지도는 늘 길을 보여주지만, 골라주지는 않지. 가족과 선생님이 길을 가르쳐주지만 정작 걸어야 할 길을 고를 사람은 바로 너야. 여행지에서 낯선 길을 만나고 여러 갈래의 길 가운데 진짜 길을 선택해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의 성취감이 도움이 될 거야. 1969년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첫 발자국을 남기면서 한 말이 기억난다.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에 불과하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라는. 오늘 떠나는 너의 한 걸음이 인생의 큰 도약으로 이어질지도 모르잖아. 참, 여행을 가면 기록을 남기는 게 좋다. 사진이든, 글이든, 그림이든 너의 여정과 감상을 기록해. 마르코 폴로가 중국을 여행하고 썼다고 하는 <동방견문록>은 훗날 콜럼버스가 신대륙 발견을 위한 항해에 나설 때 가이드북 구실을 했다더구나. 너의 기록은 앞으로 네 인생의 신대륙을 개척할 때 지도가 돼줄 거라 믿는다.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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