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미술학원연합회는 학생들의 귀가를 위해 공동으로 차량을 운행한다. 지난달 30일, 밤 10시께 군포, 의정부, 잠실 등의 행선지를 붙인 전세버스가 학생을 기다리고 있다.
합격생 스타일 모방해
반복해서 그리는 연습
그림도 외우는 학생들
반복해서 그리는 연습
그림도 외우는 학생들
입시의 계절, 홍대 학원가 가보니
“자아, 이건 상명대 거고 이건 세종대 거예요. 기울기 보고요, 앞 부분에 하이라이트를 어떻게 줬는지 확인하세요. 지금부터 1시간 안에 끊습니다.”
지난달 30일 저녁, 홍대의 한 미술학원에서 강사가 칠판에 두 장의 그림을 꽂았다. 자기 스타일을 살리는 게 아니라 합격생의 스타일을 모방하는 ‘족집게’ 수업이었다. “자연물에는 직선이 있어요, 없어요?”라는 강사의 물음에 “없어요”라고 대답하는 학생들은 마치 암기과목의 단답식 문제를 푸는 것 같았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정시모집을 준비하는 미대 입시 특강이다.
홍대 학원에 다니는 정아무개(18·인천 ㅇ여고)양은 “입시가 다가오면 그림 그리는 순서와 거기에 드는 시간을 정리해서 외운다”며 “1시간에서 1시간20분 동안은 스케치, 그다음 한 시간은 어둠을 채우는 초벌, 정물 그리는 중벌 순서로 그리는 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순서도 학원마다 조금씩 다른데 여기서 학원 강사의 실력이 갈린다고 했다.
홍대 학원가에서 만난 학생들은 미대 입시에서 “실력은 곧 스피드”라고 했다. 부산에서 올라온 재수생 박아무개(19)양은 “대학들이 실기 시간을 5시간으로 정해 놓는데 그 안에 그리려면 어쩔 수 없다”며 “미술에는 답이 없지만 입시 미술에는 정답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재수생 정아무개(19·부산)양은 “시간 제한이 있기 때문에 내가 제일 자신있는 구도, 색채, 명암 위주로 외울 수밖에 없다”며 “그림을 몇 가지로 패턴화해서 실기 현장에서 적당히 응용하는데 학원에서 응용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고 말했다.
요즘 학생들은 ‘기출문제’를 푸는 중이라고 했다.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학원에 머문다. 자퇴를 한 뒤 미대 입시를 준비하는 방아무개(18)양은 “기출 예상 문제를 합하면 100개 정도 되는데 요즘은 계속 그걸 반복해서 그리고 연습한다”고 말했다. 홍대 ㅈ미술학원 김아무개 부원장은 “ㅎ대는 벌써 같은 주제만 5년 동안 세 번 나왔는데 주제에 대한 연구를 안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기초조형학회와 한국미술학회는 지난달 7일 열린 2009년 가을 학술대회에서 “2009학년도까지 국내 미술·디자인대학 입시의 실기시험 평가 기준은 잘 그리기(묘사력), 색채감각(외우기), 구성능력(구도 외우기) 등으로 구분되는데, 이는 창의력에 대한 평가가 소홀히 다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학원으로 내몰리는 이유는 주입식 교육이 먹히는 입시 탓이기도 하지만, 우선 학교에 책임이 있다. 유학을 다녀와서 검정고시를 치르고 미대 입시를 준비하는 오아무개(17)양은 “고1 때 미술을 한다고 하니까 수학 선생님이 애들 공부하는 데 방해하지 말고 나가 있으라고 했다”며 “미국에서는 작은 시골학교에 다녔는데도 미술반이 있어서 공부를 지속할 수 있었는데 우리는 미술 한다고 하면 ‘공부 못하는 애’라고 낙인만 찍고 도와주는 게 없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예체능 계열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이름보다 ‘예체능’이라고 낮춰 부른다고 한다.
예술고가 아닌 일반계고는 예체능 계열 진학을 원하는 학생을 책임지지 않아도 될까? 2004년 대학수학능력시험 응시생 수를 보면 예체능계열 응시생은 9만6134명으로 인문계열과 자연계열 응시생의 15%(54만6449명)에 이른다. 전국 27개 예술고의 한 해 모집정원은 5600여명 안팎이다. 예술가를 꿈꾸는 대다수의 학생들은 일반계고로 진학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지만 일반계고는 아직 이들을 위한 답이 없다. 47개 일반계고 가운데 예체능 과정을 개설한 곳이 한 곳도 없는 광주 교육청의 한 장학사는 “예체능 계열을 개설한 학교는 학부모들이 기피하기 때문에 우수한 학생을 배정받는 데 불이익을 받는다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예체능 계열 학생들은 결국 학교가 아니라 학원의 힘으로, 돈의 힘으로 대학에 간다. 김아무개(18·서울 ㄱ여고)양은 처음 미술을 시작하면서 학원비를 결산한 적이 있었는데 반년도 안 돼 1000만원이 넘더라”고 했다. 한아무개(18·인천 ㅇ여고)양은 “하숙집을 늦게 잡아서 두 달에 150만원을 내는데 학원 수강료 400만원을 합하면 너무 큰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글·사진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예술고가 아닌 일반계고는 예체능 계열 진학을 원하는 학생을 책임지지 않아도 될까? 2004년 대학수학능력시험 응시생 수를 보면 예체능계열 응시생은 9만6134명으로 인문계열과 자연계열 응시생의 15%(54만6449명)에 이른다. 전국 27개 예술고의 한 해 모집정원은 5600여명 안팎이다. 예술가를 꿈꾸는 대다수의 학생들은 일반계고로 진학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지만 일반계고는 아직 이들을 위한 답이 없다. 47개 일반계고 가운데 예체능 과정을 개설한 곳이 한 곳도 없는 광주 교육청의 한 장학사는 “예체능 계열을 개설한 학교는 학부모들이 기피하기 때문에 우수한 학생을 배정받는 데 불이익을 받는다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예체능 계열 학생들은 결국 학교가 아니라 학원의 힘으로, 돈의 힘으로 대학에 간다. 김아무개(18·서울 ㄱ여고)양은 처음 미술을 시작하면서 학원비를 결산한 적이 있었는데 반년도 안 돼 1000만원이 넘더라”고 했다. 한아무개(18·인천 ㅇ여고)양은 “하숙집을 늦게 잡아서 두 달에 150만원을 내는데 학원 수강료 400만원을 합하면 너무 큰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글·사진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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