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따님과 첫 포옹이십니까?
자녀와 몸으로 소통 ‘스킨십 예찬’
13세기 남유럽을 지배했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레더릭 2세(1211~1250)는 ‘아기 실험’으로 유명하다. 그는 주변 환경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을 때 인간이 어떤 말을 하는지 궁금했다. 갓난아기들을 모아 놓고 먹이고 씻기되 말을 건네거나 안고 만지는 일체의 행위를 금지했다. 성장한 아기들은 최초로 무슨 말을 했을까? 라틴어? 히브리어? 원시의 언어는 무엇이었을까? “아이들은 결국 한마디도 할 수 없었고 말을 할 나이가 되기도 전에 모두 죽었다.”(<그것은 뇌다> 가운데, 다니엘 에이멘 지음, 브레인월드) 1248년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 수도회 수사였던 살림베네 디 아담은 <황제 프레더릭 2세의 12가지 재난 기행>이라는 책에서 이 실패한 실험을 언급한 뒤 스킨십에 관한 최초의 결론에 이르렀다. “아이들은 따뜻한 손길 없이 살아갈 수 없다.” 학원으로, 학원으로…. 자녀의 등을 떠미는 부모의 손도 차가운 겨울방학이다. 등 떠밀려 문 밖에 나선 자녀의 작은 가슴에는 찬바람만 분다. 따뜻한 손길이 필요하다. 한국지역사회교육협의회 부모교육 전문강사들이 전한 스킨십 예찬론이다. ■ 꼭 포옹이 아니어도 좋다 조향숙(55)씨는 두 딸을 안아주거나 뽀뽀하는 데 어색하다. 대신 손과 발을 조몰락조몰락 만져준다. 발마사지는 잠에 취한 두 딸을 깨우는 필살기다. 두 딸은 어느새 25살, 27살의 어엿한 성인이 됐지만 그는 여전히 발을 주물러 깨운다. 조향숙씨는 “습관이 안 돼 있는데 포옹이나 뽀뽀를 시도하면 서로 어색하다”며 “자기 스타일에 맞는 스킨십의 방법을 찾으면 된다”고 조언했다. 자녀가 좋아하는 스킨십의 방법을 관찰을 통해 찾아내는 것도 필요하다. 중·고등학생이 되어 버린 아이들을 만지고 어르는 게 어색하다면 의도적인 스킨십의 계기를 만드는 것도 좋다. 이윤정(44)씨는 발마사지와 수지침 자격증을 땄다. “제 건강 때문에 시작한 일이긴 한데 애들하고 거부감 없이 몸으로 교류할 수 있어서 좋아요. 애들이 초등학생일 때는 정말 거의 매일 열심히 발마사지를 해 줬죠. 중·고등학생이 된 다음에는 발이 너무 커져서 그건 좀 힘들고요, 대신 뜸을 배워서 배에다가 뜸을 떠주곤 하죠.” 엄마와 몸으로 소통하는 자녀들은 똑같이 몸으로 말을 걸어온다. “우리 큰놈이 키가 180㎝가 넘거든요. 그런데 어느날인가 오더니 ‘엄마, 나 좀 안아주세요’ 하는 거예요. 꼭 안아줬더니 그제야 펑펑 울더라고요. 그런 다음 묻기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털어놓더군요.” 서울대에 다니는 아들을 둔 김민자(49)씨의 말이다.
■ 잔소리보다 좋은 스킨십 사랑과 애정이 넘치는 부모-자녀 사이에도 갈등은 있다. 부모교육 전문강사들한테는 스킨십이 갈등을 다루는 강력한 대책이다. 김민자씨는 “딸이 감정이 상해서 그냥 침대에 누워 있으면 가서 가만히 안아준다”며 “말도 잘 못하겠고 그럴 때 그냥 가만히 안아주면 서로의 미안한 감정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윤정씨 역시 “아들이랑 대판 싸운 날은 그냥 누워 있는 데 가서 껴안고 눕는다”며 “자기가 알든 모르든 그렇게 같이 누워 있으면 내 마음이 먼저 풀린다”고 말했다. 이윤정씨는 아들의 감정이 폭발할 때에도 스킨십을 활용한다. “재작년, 작년에 아들이 사춘기를 심하게 앓았어요. 모든 걸 거부하는 몸짓을 할 때가 있죠. 그럼 저는 아이를 꼼짝 못하게 누르고 앉았어요. 덩치가 크니까 그 방법밖에 없었어요.” 뻣뻣하게 굳어 있던 아들의 몸이 풀어지는 게 느껴지면 힘을 풀고 따뜻한 포옹으로 전환했다. 부모교육 전문강사들은 특히 자녀와의 갈등 상황에서는 부모가 말을 최대한 아끼는 게 좋다고 말한다. 조향숙씨는 “딸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나도 당황스럽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데 섣불리 말을 했다가는 불씨만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윤정씨는 “애들을 쓰다듬다 보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다 느껴진다”며 “그럴 때는 ‘너 억울하구나’라고 그 감정을 읽어주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 부부가 먼저 스킨십을 하라 스킨십 예찬론을 펴는 부모교육 전문강사들의 공통점은 부부 사이에도 따뜻한 손길을 보내는 데 아낌이 없다는 데 있다. 조향숙씨는 “새벽 미사를 다녀오면 몸이 꽁꽁 얼어있는데 그때 남편은 잠결에라도 목덜미에 손을 넣어준다”며 “남편 손이 원래 따뜻한데 그러면 온몸이 싹 녹고 편하게 다시 잠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윤정씨는 “관절이 안 좋은데 남편은 항상 나보다 일찍 일어나서 30분 동안 전신 마사지를 해 준다”며 “그렇게 잠에서 깨어나는데 그 일을 한번도 거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스킨십 역시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일까. 김민자씨는 “원래 부부 스킨십이 자연스러운 가정에서 자녀들한테 스킨십을 해도 어색하지 않다”며 “이런 걸 전혀 보지 못한 자녀들한테 갑자기 엄마 스킨십을 하게 되면 ‘왜 이래’라는 반응만 나올 뿐”이라고 말했다. <좋은 부모 되기 40일 프로젝트>라는 책을 쓴 송재환 교사(서울 동산초)는 “학교에서 보면 부부 사이에 소통이 거의 없는 보이지 않는 결손가정도 꽤 되는 것 같다”며 “부모가 사랑하는 모습도 못 보고 사랑도 못 받는 아이들은 이성 관계에 집착하기 쉽다”고 조언했다. ■ 애정 결핍의 악순환을 끊어라 스킨십은 대물림된다. 김민자씨는 자녀들을 보듬어안는 따뜻한 손길을 어머니한테 물려받았다. 그는“어렸을 때 너무 추운 날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는 꼭 내 손을 아랫목으로 가져가 당신 엉덩이 밑에 깔고 앉으셨다”며 “그 따뜻함이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조향숙씨는 남편 덕을 봤다. “시누이가 둘 있는데 시아버지께서 시누이들 어렸을 때 해마다 방에 도배를 해 주셨대요. 한 해는 네가 좋아하는 분홍색, 한 해는 네가 좋아하는 하늘색, 이런 식으로요. 그렇게 자상한 아버님 모습을 남편이 쏙 빼닮았죠.” 그의 남편은 아주 오래전 갓난 딸 둘의 목욕을 손수 시켰다고 한다. 김민자씨의 남편도 아들의 목욕을 전담했다. “간혹 기분이 좋으실 때면 다리 사이에 남편을 끼고 주무실 정도로 정이 넘쳤던 시아버지”를 닮은 덕이라고 했다. 송재환 교사는 “어렸을 때 어미를 잃고 사육당한 아기 코끼리는 나중에 커서 새끼를 낳아도 돌볼 줄 모르고 버린다고 하더라”며 “부모한테 흡족한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나중에 결혼해서도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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