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 [난이도 수준-고2~고3]
15. 의상철학, 옷이 사상보다 중요한 이유
16. 군주론과 신군주론, 정치적 인간의 생존법
17. 민주주의는 경제 ‘프렌들리’한 제도일까?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묻는다면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겠습니까?”,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될 사람은 누구입니까?” 질문의 방향이 틀어지면 대답도 달라진다. ‘누가 되면 안 될지’를 물을 때 사람들은 하나같이 흠집과 못난 점을 찾는다. 덕담 열 마디보다 꼬집는 말 한 마디가 가슴에 다가오는 법이니까. 선거판에서 네거티브(negative) 전략은 그래서 요긴하게 쓰인다. 상대편의 사생활이 지저분하고 스캔들이 많으면 효과는 더욱 클 테다. 하지만 언제나 그럴까?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정치 컨설턴트였던 딕 모리스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비난의 말이 처음에는 솔깃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내 사람들은 돌을 던지는 쪽을 더 안 좋게 여길지도 모르겠다. 성마르게 트집 잡으며 까탈스럽게 따지기만 한다고 말이다. 상대가 낮아지는 만큼, 자신 또한 품위 없는 인간으로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네거티브 전략이 힘을 쓰려면 먼저 포지티브(positive)부터 살려놓아야 한다. 자신이 왜 뛰어나며 지도자가 될 만한지를 먼저 확실하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정책도 비전도 없는 주제에 상대방 단점만 물고 늘어진다면 되레 안 좋은 결과만을 낳는다.
대개 국방이나 경제 발전은 보수적인 정당들이 내세우는 이슈다. 복지나 인권은 진보진영의 깃발에서 주로 나온다. 만약 경제 발전 계획을 놓고 논쟁을 벌였다고 해보자. 효율을 앞세우는 논리에 진보 쪽은 끌려다니기 마련이다. 계속 이 주제에 매달리다 보면, 어느새 진보 쪽의 논리는 달리기 시작한다. 마치 ‘상어와 싸우기 위해 물속으로 뛰어든 격’처럼 될 테다.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면 이슈부터 자기 것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경제성장률만큼이나 소외계층의 교육도 중요하다는 식으로 논점을 달리 잡아 보자. 싸움은 자기 진영에서 할 때 유리하기 마련이다. 딕 모리스는 정치에서는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승리하려면 남들보다 빨리 이슈를 불러일으켜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닥친 이슈를 풀어낼 뛰어난 인재임도 보여야 한다. 그렇지만 눈길을 끈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히틀러도 인지도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지금 세상에서 히틀러에게 좋은 인상을 가진 이들이 얼마나 될까? 유명해지고픈 조급함 탓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정치가들이 한둘이 아니다. 사랑으로 가득 찬 눈길을 끌고 싶다면 사람들이 절실해하는 부분이 무엇인지부터 헤아려 보라. 클린턴은 깨끗하지 못한 사생활로 손가락질을 받았던 대통령이다. 그럼에도 미국인들은 그를 버리지 않았다. 클린턴은 ‘하찮고’, ‘대통령답지 못한’ 소소한 주제들에 줄곧 매달렸다. 유권자들은 자기들에게 절절한 일상의 문제를 들먹이는 대통령에게 관심을 놓지 못했다. 딕 모리스는 온갖 네거티브 전략에도 클린턴이 정치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까닭을 여기서 찾는다. 현대 정치란 한마디로 ‘이슈 정치’라 할 수 있겠다. 교육 수준이 높은 시민들은 더 이상 정치가가 좇는 이념만 보고 표를 주지 않는다. 더구나 금융위기, 연금 고갈 등 굵직한 논쟁거리들이 튀어나오는 시기에는 정치가가 어떤 사람인지는 별문제가 안 된다. 관심은 ‘누가 이 문제를 풀 수 있는지’에 모인다. 세상은 점점 비전이 확실하고 분명한 정책을 가진 정치가가 이길 수밖에 없는 구도가 되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현실 정치는 딕 모리스의 결론과는 아주 다르게 보인다. 여전히 정치에서는 네거티브 전략이 판을 친다. 꼭 현명하고 똑똑한 이들만 국회에 가는 것 같지도 않다. 딕 모리스도 이 점을 모를 리 없다. 그는 컨설턴트답게 매우 실질적인 ‘정치 테크닉’도 일러준다. 어느 편을 찍을지 갈피를 못 잡는 사람들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들 대부분은 지금 권력을 지닌 이를 반대하는 쪽에 표를 던질 테니까. 단지 오래되었고 권력을 지녔다는 사실 자체가 미움을 살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는 까닭이다. 미국의 경우 흑인들은 사실상 투표권이 없단다. 뭘 하건 그들은 민주당을 찍을 테니까. 자기편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없으면, 상대 진영은 아예 마음을 접는다. 흑인들이 확실하게 자기 표라고 여기는 정당도 마찬가지다. 잡은 고기에게 누가 떡밥을 주겠는가. 현실 정치에서는 꼭 정의로움이 승리하지는 않는다. 딕 모리스의 책 <신군주론>(New Prince)이라는 제목은 마키아벨리의 유명한 <군주론>(Prince)에서 따왔다. <군주론>은 냉정하고 차가운 현실 정치가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인간적이어서 세상이 폭력으로 가득 차는 것보다, 잔인한 군주가 폭력 쓰는 자들을 질서 속에 묶어두는 편이 낫다.’고 말한다. 결과가 좋다면 수단은 어찌되어도 좋다는 식이다. 하지만 마키아벨리의 조국 피렌체는 과연 인간적인 정부가 다스리던 나라였을까? 그가 살던 시절에 피렌체는 이미 마키아벨리적인 정치를 좇고 있었다. 아무리 좋은 정치 기술로도 나라를 튼실하게 세우지는 못한다. 정치는 사람을 다독이는 일이다. 인간의 영혼은 선과 정의로움, 평화를 좇는다. 정치기술자인 딕 모리스조차도 도덕과 이상을 놓지 못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정치기술자는 금방 스러지지만 도덕주의자는 영원히 살아남는다. 공자나 조광조가 그랬듯이 말이다.
<신군주론>
딕 모리스 지음, 홍대운 옮김. 아르케
<군주론>
마키아벨리 지음, 강정인·김경희 옮김.
까치글방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