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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그때 그 말썽쟁이 편지로 용서 비네요 철민아, 고맙다…

등록 2005-06-05 18:30수정 2005-06-05 18:30

스승의 날에 즈음해서 재작년 담임했던 아이들이 찾아왔다. 하교 지도를 하고 돌아오니 운동장 나뭇 그늘에 앉아 있다 우르르 몰려와 인사를 한다. 반갑게 웃으며 인사를 나누는데 위쪽에서 “여기요!” 하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5층 우리 반 복도 창문에 아이들이 오종종 매달려 들고 온 꽃을 흔든다.

아이들을 데리고 교실로 올라갔다. 공교롭게도 이 아이들과 함께 썼던 교실을 올해도 쓰고 있어 감회가 남다르다. 들어가자마자 아이들은 제가 옛날에 앉았던 자리를 찾는다. 이렇게 작았나 너스레를 떨며 책상을 손으로 쓸어 보기도 하고, 의자에 앉아 뒤로 기대서 흔들어 보기도 한다. 책꽂이에 꽂혀 있는 〈맨발의 겐〉을 보더니, “야, 아직도 있네.” 그러면서 하나씩 골라 옛날처럼 뒤적거린다. 벌써 중학교 2학년. 어느새 시간은 흐르고, 아이들은 훌쩍 커서 찾아온 남자 아이 가운데 나보다 키가 작은 아이는 하나도 없다.

담임할 때도 그랬지만 녀석들 여전해서 어느새 교실을 휘젓고 뛰어다니며 장난을 친다. 덩치도 크니 뛸 때마다 바닥이 쿵쿵 울린다. 벌써부터 축구하자고 난리다. 운동장으로 나갔다. 유난히 이 아이들은 축구를 좋아해서 체육 시간에 축구를 참 많이 했다. 예전처럼 홀수와 짝수 번호로 나누어 시합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좀 약한 짝수 편에서 뛰지만 여전히 별로 도움은 안 돼 형편없이 지고 말았다. 그런들 어떠랴. 한바탕 뛰고 나니 옛날 생각도 새록새록 나고 기분도 상쾌하다.

점심 때가 한참 지나 뭘 같이 먹자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우리 반 말썽쟁이였던 이철민은 음식점에 가서도 배부르다며 안 먹는단다. 철민이는 날마다 싸우고, 문제를 일으켜서 그냥 넘어가는 날이 손꼽을 정도로 내 애를 많이 태운 아이다. 그때 일기를 보면 녀석 때문에 고민한 흔적이 참 많다. 나중에 다른 아이에게 전해 들었는데 아이들이 많아 선생님이 돈 많이 쓴다고 안 먹은 것이란다. 음료수만 제 돈으로 뽑아 먹었다. 아이 마음 씀씀이가 참 예쁘다. 아이들과 헤어지고는 철민이가 나중에 보라고 준 편지를 펼쳐 보았다.

“선생님, 저 철민이에요. 선생님은 제가 잘못한 일이 있으면 대화로 풀어 나가시고, 제가 심한 장난을 칠 때는 매를 드시고 한편으로는 저를 따뜻하게 보살펴 주셨습니다. 너무 감사드려요. 제가 평생 동안 잊지 못할 선생님은 딱 한 사람 선생님뿐입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선생님을 찾아뵐게요. 이철민 올림.”

매를 들기까지 해서 나를 꽤나 원망했던 아이인데, 이렇게 용서의 편지를 보냈다. 어느새 이렇게 자라 부족한 선생을 다독여 준다. 코끝이 찡하다. 한참을 자리에 앉아 있는데, 몸이 뜨거워지며 힘이 솟는다. 철민아, 고맙다.

김권호/서울 일신초등학교 교사 kimbech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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