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자유’, ‘권리’와 함께 ‘소통’은 이번 이사회의 주요 열쇳말이었다. 학교 안에서만 사회를 만나던 청소년들은 2박3일 동안 세상 그리고 인권과 자유롭게 소통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제공
청소년 250명 2박3일 합숙세미나 집회·결사 자유 등 ‘자기인권’부터 이주민·안락사 등
‘세상인권’까지 의제별로 토론하며 몸으로 배워 “내가 편향된 생각 한다는 것 깨달아”
‘세상인권’까지 의제별로 토론하며 몸으로 배워 “내가 편향된 생각 한다는 것 깨달아”
“시기상조입니다. 청소년으로서 집회를 열 경우, 다른 청소년의 학업과 안전에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집회 결사의 자유를 막는 것은 청소년들의 표현의 자유를 막는 게 아니라 다른 청소년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겁니다. 따라서 저희 팀은 청소년들에게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것에 반대합니다.”(JB팀 발언자) “청소년들에게 집회 결사의 자유를 주는 건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권리를 보장하는 겁니다. 그리고 집회에서의 의견 교환을 통해 자신의 의견과 권리를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있어야 성인이 됐을 때도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Article B팀 발언자)
열쇳말은 ‘민주주의’, ‘자유’, ‘권리’였다. 지난 1월27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법학관의 한 세미나실. ‘청소년의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주제로 한 회의가 한창이었다. 다른 세미나실에선 각각 군가산점, 정보 프라이버시, 안락사 등을 주제로 한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진지한 표정으로 ‘의제별 소그룹 회의’를 진행한 각각의 회의 참석자들은 다름 아닌 청소년이었다. ‘대한민국 청소년 모의 인권이사회 2010’(국가인권위원회, 고려대 주최)에 참가한 250명의 청소년들은 1월26일부터 28일까지 2박3일 동안 합숙하며 이렇게 ‘인권’을 주제로 토론했다.
이사회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애초 200명으로 행사를 치르기로 했으나 1000명 이상이 지원했고, 결국 50명을 늘린 250명 정원으로 행사를 치렀다. 참가자로 선정된 청소년들은 각자 맡은 의제별 보고서를 제출해 통과한 이들로 온·오프라인상에서 사전 준비모임을 한 뒤 ‘한국청소년인권위원회’를 조직했다. 이 조직 안에서 의장단을 선출하고, 대회 운영규칙과 주요 인권현황, 인권 정보, 국제인권규범 등을 공유하며 본회의, 실무그룹 회의 그리고 실제 유엔 인권이사회를 모델로 한 국가별 정례 인권검토 등을 열었다.
청소년들이 ‘인권’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데는 비슷한 계기가 있었다. 최근 2년 새 일어났던 각종 정치·사회적 사건들은 이들을 인권 토론의 장으로 불러 모았다. 장유진(광주 상일여고 2년)양은 “꿈이 아나운서라 지난해 화제가 됐던 미디어법 개정 이슈에 관심이 많았다”며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고 있다는 걸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인권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했고, 이사회까지 참여하게 됐다”고 했다. 박문수(광주 동성고 2년)군은 “원래는 정부 대표도 참석할 예정이었던 걸로 아는데 ‘촛불시위’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듣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나현경(부명고 1년)양도 “작년 촛불집회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그게 이번 회의에 온 동기가 됐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은 무엇보다 자신들의 인권 문제에 관심이 뚜렷했다. ‘청소년의 집회 및 결사의 자유’ 회의에 참가한 노성호(백석고 2년)군은 “어른들도 정치인들이 내세운 공약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후보자에게 투표를 한다”며 “이건 의사표현이나 결정력 등이 부족한 거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행동은 청소년들과 별반 차이가 없는 거다. 그런 점에서 단지 미성년자란 이유로 청소년에게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주지 않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장유진양은 “현재 청소년에겐 선거권이 없는데 청소년의 의견을 수렴하는 집회 및 결사의 자유까지도 제한한다면 표현 창구 자체가 없는 셈”이라고 했다.
이사회가 특별했던 이유는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인권 문제만이 아닌 세상의 인권 문제로 관심의 폭을 넓혔다는 데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과 김민아씨는 “현재 세계에서 논의되는 사회적 의제들을 놓고 생각하고, 토론하고, 담론을 형성해보자는 뜻이 깊다”고 설명했다. 정보인권, 이주아동인권, 안락사, 병역 등 범세계적 주제들을 토론의 장으로 가져온 배경이다.
실제 유엔인권이사회의 과정을 모델로 삼았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했다. 특히 2008년부터 유엔 인권이사회가 196개 유엔 회원국들의 인권상황을 검토하기 위해 실시하는 절차인 ‘보편적 인권상황 정례검토’(UPR, Universal Periodic Review)에선 참여 청소년들이 인권 상황 심사를 받는 한국 정부 대표단, 심사를 수행하는 이집트·필리핀·중국·인도 등 20여개 유엔 회원국 정부대표단 등의 역할을 나눠 맡아 회의를 진행했다.
참여 청소년들에게 ‘인권’은 교과서 속 개념만은 아니었다. 신성식(이사벨고 2년)군은 “사회적 이슈를 보며 감정적으로 화만 냈었는데 내가 편향된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도 깨달았다”며 “친구들과 인권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시야를 넓힐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했다. 새터민 청소년인 이아무개군은 인권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정의했다. “좁게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기본적인 권리죠. 하지만 넓게 생각하면 모든 사회 이슈와 문제가 인권과 관련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생생토크쇼에 참석한 대구참교육학부모회 김정금 정책실장은 “간접체험이지만 인권을 몸으로 배우는 기회가 된 것 같다. 인권을 다루는 사람들을 만나보고, 토론하면서 인권을 체험하는 기회가 됐을 것”이라고 했다. 조국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요즘 청소년들은 개인의 권리와 직접 관련된 부분에 대해선 관심이 높지만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일에 관한 인권 의식은 매우 낮다. 사회 자체가 이기주의, 승자독식주의로 나아가고 있고, 그런 식의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면서 “청소년기에 인권을 그럴싸한 장식품처럼 생각하는 의식이 강하면 커서도 그런 생각을 하기 쉽다. 생각이나 사상이 아직 유연한 청소년기에 인권에 대한 정립을 잘 해야 청소년들이 성인이 되어 사회 구성원이 됐을 때 인권을 존중할 수 있다”고 했다. 김방환(전주 상산고 1년) 안지윤(원묵고 1년) 안인아(영암여고 2년)
<아하!한겨레> 학생수습기자 2기
참여 청소년들에게 ‘인권’은 교과서 속 개념만은 아니었다. 신성식(이사벨고 2년)군은 “사회적 이슈를 보며 감정적으로 화만 냈었는데 내가 편향된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도 깨달았다”며 “친구들과 인권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시야를 넓힐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했다. 새터민 청소년인 이아무개군은 인권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정의했다. “좁게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기본적인 권리죠. 하지만 넓게 생각하면 모든 사회 이슈와 문제가 인권과 관련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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