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랑중학교 김태훈 교사가 17일 오전 교실에서 학생들과 함께 하고 있다. 학생들이 들고 있는 것은 기존 성적표 대신 김교사가 직접 만든 행복성적표.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점수 나빠도 발표 잘해요”
숫자대신 빼곡히 글로 쓴
단 한명만을 위한 성적표
공교육 신뢰회복에도 도움
숫자대신 빼곡히 글로 쓴
단 한명만을 위한 성적표
공교육 신뢰회복에도 도움
중랑중 김태훈 교사의 실험
“자, ‘행복한 성적표’를 나눠줄게.”
지난해 12월21일, 서울 중랑구에 있는 중랑중학교 2학년2반 마지막 도덕 시간. 김태훈(35) 선생님은 반 아이들 35명에게 나흘 동안 매일 3~4시간씩 공들여 작성한 특별한 성적표를 나눠줬다. 성적표를 받기 위해 교단으로 간 이지수(14)양은 눈이 동그래졌다. ‘도덕과 행복한 성적표’라는 제목의 두 장짜리 에이포(A4) 용지에는 지수가 지난 1년간 도덕시간에 수업했던 내용과 학습태도가 꼼꼼히 적혀 있었다.
“지수는 선생님의 설명을 주의 깊게 잘 들었습니다. (중략) 그러나 적극성이 부족해 발표에 참여하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적극적인 자세로 수업에 임한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총평에 이어 ‘정약용에 대하여 말하기’를 할 때 내용 준비가 부족했다는 지적과 ‘전통문화 조사 발표’ 조 활동 때의 아쉬운 점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었다.
지수는 김 선생님에게 2년 내리 도덕 과목을 배웠다. 수업시간에 산만하다고 자주 벌도 섰다. 그러나 이번 성적표를 본 지수는 선생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커졌다. “선생님이 이렇게 자상하게 반 아이들 한 명 한 명 챙겨보는 줄 몰랐어요. 앞으로 학습지 파일 정리도 잘하고 발표 준비도 잘하려고요.”
김 선생님은 지난해 1학기에 처음 ‘행복한 성적표’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교사 생활 10년째를 맞아 ‘변화’를 시도한 것이다. 아직 시작 단계라 맡고 있는 여섯 학급 가운데 1학기에 2개 반, 2학기에 2개 반 등 4개 학급에 이 성적표를 먼저 나눠줬다. 한 주일에 두 번 있는 도덕 시간마다 ‘개인별 포트폴리오’를 옆에 두고 아이들에게 조언할 점을 기록했다. 모둠수업 시간에 아이들의 참여 정도를 살펴보기 위해 ‘모둠좌석형 수업상황 기록표’도 따로 만들었다.
“기존 성적표는 점수만 있잖아요. 모두가 바라는 질 높은 교육은 아이들 한 명 한 명에 대한 교사의 관심과 사랑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교사들이 ‘써주는’ 성적표에는 사교육이 적응하기도 힘들 거고요.” 아이들의 신뢰회복, 사교육 예방 효과까지 두 마리 토끼를 노렸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행복한 성적표’에 다들 놀라면서 고마워했다. 조은실(15)양은 “원래 성적표를 받는 날은 기분이 안 좋은데, 이 성적표를 받을 때는 기분이 좋았다”며 “지적받은 것은 꾸중이 아니라 고쳐야 할 점이라고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김종민(15)군은 “점수는 좀 안 좋지만, 내가 발표를 잘했다는 것을 알게 돼서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학부모와의 소통도 쉬워졌다. 성적표 마지막에는 학부모가 교사에게 전하는 말을 쓸 수 있는 자리가 있다. 학부모 임미옥(45)씨는 “아이가 어느날 성적표라고 가져왔는데, 보고선 참 놀라고 행복했다”며 “두세 줄로 그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없어 선생님께 장문의 전자우편을 보냈다”고 말했다. 이어 임씨는 “아이의 학교생활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 큰 도움이 됐다”며 “진짜 학교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아이들은 선생님의 ‘행복한 성적표’에 다들 놀라면서 고마워했다. 조은실(15)양은 “원래 성적표를 받는 날은 기분이 안 좋은데, 이 성적표를 받을 때는 기분이 좋았다”며 “지적받은 것은 꾸중이 아니라 고쳐야 할 점이라고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김종민(15)군은 “점수는 좀 안 좋지만, 내가 발표를 잘했다는 것을 알게 돼서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학부모와의 소통도 쉬워졌다. 성적표 마지막에는 학부모가 교사에게 전하는 말을 쓸 수 있는 자리가 있다. 학부모 임미옥(45)씨는 “아이가 어느날 성적표라고 가져왔는데, 보고선 참 놀라고 행복했다”며 “두세 줄로 그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없어 선생님께 장문의 전자우편을 보냈다”고 말했다. 이어 임씨는 “아이의 학교생활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 큰 도움이 됐다”며 “진짜 학교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