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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대학을 그만둔, 아니 거부한’ 한 젊은이의 작은 외침

등록 2010-03-23 14:00수정 2010-03-23 14:04

[사회일반] 명문대 재학생의 자퇴선언서
지난 3월10일, 오후 서울 안암동 고려대 교정에 한 대자보가 붙었다. 이 학교경영학과 3학년에 재학중인 김예슬 씨가 쓴 ‘자본과 대기업의 하청업체 가 된 대학을 거부한다’는 내용의 자퇴선언서였다.

명문대 입학은 ‘끝없는 트랙’의 첫 관문

이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25년 동안 긴 트랙을 질주해왔다. 친구들을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나를 앞질러 가는 친구들에 불안해하면서. 그렇게 ‘명문대 입학’이라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더 거세게 채찍질해봐도 다리 힘이 빠지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 지금 나는 멈춰서서 이 트랙을 바라보고 있다. 저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취업’이라는 두 번째 관문을 통과시켜줄 자격증 꾸러미가 보인다. 다시 새로운 자격증을 향한 경쟁 질주가 시작될 것이다. 이제야 나는 알아차렸다. 내가 달리는 곳이 끝이 없는 트랙임을.

이제 나의 적들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이다. 국가는 의무교육의 이름으로 대학의 하청업체가 되고, 대학은 자본과 대기업에 ‘인간제품’을 조달하는 가장 효율적인 하청업체가 되었다. 기업은 더 비싼 가격표를 가진 자만이 접근할 수 있도록 온갖 새로운 자격증을 요구한다. 이 변화가 빠른 시대에 10년을 채 써먹을 수 없어 낡아 버려지는 우리는 또 대학원에, 유학에 돌입한다. ‘세계를 무대로 너의 능력만큼 자유하리라’는 넘치는 자유의 시대는 곧 자격증의 시대가 되어버렸다. 졸업장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자격증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학습된 두려움과 불안은 다시 우리를 그 앞에 무릎 꿇린다.


생각할 틈도, 돌아볼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이 또 다른 거짓 희망이 날아든다. 교육이 문제다, 대학이 문제다라고 말하는 생각 있는 이들조차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성공해서 세상을 바꾸는 ‘룰러’가 되어라.”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나는 너를 응원한다.” “너희의 권리를 주장해. 짱돌이라도 들고 나서!” 그리고 칼날처럼 덧붙여지는 한 줄,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큰 배움도 큰 물음도 없는 ‘대학’(大學) 없는 대학에서, 우리 20대는 투자 대비 수익이 나오지 않는 ‘적자 세대’가 되어 부모 앞에 죄송하다. 젊은 놈이 제 손으로 자기 밥을 벌지 못해 무력하다. 스무 살이 되어서도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 이대로 언제까지 쫓아가야 하는지 불안하기만 한 우리 젊음이 서글프다. 나는 대학과 기업과 국가, 그리고 대학에서 답을 찾으라는 그들의 큰 탓을 묻는다. 동시에 이 체제를 떠받쳐온 내 작은 탓을 묻는다. 이 시대에 가장 위악한 것 중 하나가 졸업장 인생인 나, 나 자신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시들어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이제 나에게는 이것들을 가질 자유보다는 이것들로부터의 자유가 더 필요하다. 나는 길을 잃을 것이고 도전에 부딪힐 것이고 상처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삶이기에 지금 바로 살기 위해 나는 탈주하고 저항하련다.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련다.

돌멩이 하나 빠져도 끄떡없다 하겠지만

이제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탑은 끄떡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지만 균열은 시작됐다. 동시에 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대학생’(大學生)의 첫발을 내디딘 한 인간이 태어난다. 이제 내가 거부한 것들과의 다음 싸움을 앞에 두고 나는 말한다. “그래,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

김예슬 자발적 퇴교를 앞둔 고려대 경영학과 3학년

그녀의 자퇴를 두고 사람들 사이에서 말이 많다. 어떤이들은 그녀의 행동이 소신있고 용기있는 행동이라고 말하는 반면 어떤이들은 단순히 ‘이상한 행동’이라 언급하며 욕을 한다. 왜 우리는 타인의 ‘용기’를 이상한 행동으로 치부해버리는 걸까? 솔직히 말해서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소위 명문대를 나온 사람이 자퇴를 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그녀의 자퇴선언은 12년을 공들인 탑을 자기 손으로 무너트리는 것과 마찬가지의 일이다. 그녀 또한 이 결정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다음 싸움에서 꼭 이기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임유진 기자 klop43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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