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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넓어진 인간관계, 얕아진 우정

등록 2010-04-11 15:43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
[난이도 수준-고2~고3]

28. 학교 없는 사회, 학교가 학교다우려면

29. 필로스와 에토스, 따뜻한 가슴은 어디에 있을까?

30. 스티커 이미지, 내 말을 두뇌에 딱 달라붙게 전하려면

나와 대화를 할 때 그 친구는 늘 딴짓을 한다. 나를 무시한 채 내가 모르는 사람과 한참 수다를 떨기도 한다. 급한 일이 생기면 인사도 없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기까지 한다. 이런 식으로 구는 친구와 과연 우정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는 이미 이런 식으로 우정을 나누고 있다. 인터넷 메신저만 해도 그렇다. 사람들은 자기 일을 하며 대화창을 열어놓는다. 한 사람과 메신저로 이야기를 나누며, 다른 친구와 동시에 대화를 나누는 경우도 흔하다. 피곤해서 대답하기 싫으면 대화창이 깜박여도 그냥 무시해버린다. 나중에 바빴다고 핑계 대면 그만일 테니까.

인터넷은 인간관계를 넓게 벌려 놓았다. 인터넷 동호회, 블로그 등등,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는 넘치도록 많다. 그럼에도 여전히 세상은 외로움에 한숨 쉬는 사람들로 넘친다. 관계 맺는 이들이 늘어나는데도 마음은 점점 더 헛헛해져만 간다. 왜 이럴까?

“예쁜 꽃을 본다고 저절로 그림이 그려지지는 않는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의 말이다. 우정도 마찬가지다. 멋진 사람을 만났다 해서 가슴 든든한 우정이 절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인간관계도 연습해야 느는 법이다. 인터넷 공간은 언제든 대꾸 안 하고 관계를 끊어버려도 무리가 없는 곳이다. 반면, 일상생활에서는 상대가 밉고 싫어도 우정을 쉽게 내려놓지 못한다. 매일 얼굴을 봐야 하는 친구 사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오프라인 친구가 진짜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프롬에 따르면 현대 사회에는 ‘가짜 애정’이 넘쳐난다. 어떤 사람들은 마조히스트(masochist)처럼 애정을 느낀다. 마조히스트들은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자들에게 완전히 기대어 버린다. 히틀러에게 열광했던 사람들도 그랬다. 그들은 자신의 삶이 전쟁으로 헝클어지는데도 개의치 않았다. ‘그분’이 잘되면 나의 고통도 감미롭다는 식이었다.

대중 스타나 인기 많은 자들을 무조건 따르는 모습은 마조히스트들과 얼마나 다를까? 유행에 뒤처질까 전전긍긍하는 자들도 마조히스트 같은 상태가 아닐까? 자신이 기댈 ‘영웅’이 사라진 순간, 그들은 또다시 사무치는 외로움에 빠져들 뿐이다.

반면, 사디스트(sadist)같이 애정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남에게 고통을 주면서 즐거움을 얻는다. 이들은 상대방의 겁에 질린 눈동자를 보면서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확인하곤 한다. 하지만 자신을 주눅 든 눈망울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사라지면, 이들 역시 외로움에서 헤어나지 못할 테다.

에리히 프롬은 외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일단 홀로 설 수 있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자신의 남자 친구가 백마 탄 왕자님 같기를 바라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 그렇건 그렇지 않건, 자신의 행복이 남자 친구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홀로 서는 능력이 사랑의 능력이다.”

자기 스스로 서는 사람은 사랑을 주고도 버림받을까봐 움츠리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다른 이들에게 듬뿍 사랑을 퍼준다. 사랑이 샘솟는 이들 주변에는 우정이 끊이지 않는다. 진정한 우정을 쌓으려면 나 자신부터 다잡아야 한다.

어떻게 해야 나를 강하고 튼튼하게 만들 수 있을까? 프롬은 무엇보다 ‘정신 집중’을 강조한다. 인간관계에서도 집중하는 능력은 아주 중요하다. 상대방에게 마음을 모으지 못하면 관계는 절대 깊어질 수 없다. 한때의 즐거움이 사라지면 애정 역시 스러져 버리기 때문이다. 반면, 인터넷은 집중력을 흩어지게 만든다. 조금만 지겨워도 손가락은 여지없이 ‘클릭질’을 시작하지 않던가. 사랑은 집중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만이 키울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물론 끊임없는 훈련과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서 논의를 한발 더 앞으로 내밀어 보자. 튼실한 관계를 만들려면 우정이 과연 무엇인지부터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을까? 목표가 뭔지도 모른 채 노력만 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읽다 보면 플라톤의 <뤼시스>에 저절로 눈이 가게 되는 까닭이다.

<뤼시스>에서 플라톤은 ‘우정이란 무엇인가?’를 섬세하게 파헤친다. 악한 자들끼리는 우정을 쌓지 못한다. 서로에게 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훌륭한 자들끼리도 우정을 나누지 못한다. 서로에게 아쉬울 게 없기에 굳이 마음을 열 까닭이 없는 탓이다. 그렇다면 훌륭한 자와 악한 자는 서로 우정을 나눌 수 있을까? 책에서는 눈이 팽팽 돌아갈 정도의 복잡한 논의가 이어지지만 답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마침내 작품 속에서 소크라테스는 ‘친구’인 뤼시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만다. 우리는 서로를 친구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친구가 무엇인지는 모르고 있다고 말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인간관계는 나날이 넓어지고 있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과 얼굴을 트고 말을 섞으면 내 삶은 더 안전하고 튼실해질까? 우정의 폭이 넓어지면 깊이는 그만큼 얕아진다. 그럼에도 ‘폭넓은 관계 네트워크’ 없이는 세상살이가 녹록지 않은 요즘이다. 과연 넓고 깊게 우정을 이어갈 방법은 없을까?

우정을 다루는 <뤼시스>는 플라톤의 책 가운데 가장 어려운 작품으로 꼽힌다. 하지만 제대로 된 우정을 쌓기는 플라톤 작품보다 훨씬 어렵다. 이론을 잘 알아도 실습을 안 하면 기술을 익히지 못한다. 상대방의 얼굴을 직접 보는 일이 점점 줄어드는 세상이다. 우정을 ‘실습’할 기회도 그만큼 적어진다. 이런 세상에서 진정한 우정은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우정을 쌓을 수 있을까? <뤼시스>와 <사랑의 기술>의 물음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뤼시스〉〈사랑의 기술〉
〈뤼시스〉〈사랑의 기술〉
<뤼시스>
플라톤 지음, 강철웅 옮김 이제이북스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지음, 황문수 옮김 문예출판사


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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