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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로봇의 인권’ 요원할까

등록 2005-06-12 15:30수정 2005-06-12 15:30

 제페토 할아버지의 피조물인 피노키오는 빠른 속도로 인간을 닮아 간다. 피노키오 이야기는 ‘인공생명의 철학’이라 부를 수 있는, 21세기의 매우 중요한 철학적 과제와 연관이 있다. 디즈니사의 만화영화 <피노키오>의 한 장면.
제페토 할아버지의 피조물인 피노키오는 빠른 속도로 인간을 닮아 간다. 피노키오 이야기는 ‘인공생명의 철학’이라 부를 수 있는, 21세기의 매우 중요한 철학적 과제와 연관이 있다. 디즈니사의 만화영화 <피노키오>의 한 장면.

김용석의 고전으로 철학하기3 - ‘피노키오의 모험’

“옛날 옛적에 나무토막이 하나 있었어요.” 이렇게 시작하는 카를로 콜로디의 <피노키오의 모험>은 1883년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흔히, 나무로 만들어진 피노키오가 거짓말을 하면 코가 늘어나는 벌을 받지만, 착한 일을 많이 해서 진짜 사람이 된다는 도덕적 교훈을 담고 있는 동화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콜로디의 동화를 창조성의 관점에서 읽어 보면,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 인간이라는 창조자의 한계, 피조물이 발휘하는 능력의 역설, 인간을 닮아 가는 피조물의 의미 등을 포착할 수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이 작품이 인공지능과 로봇공학의 미래를 은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피노키오의 이야기는 21세기의 매우 중요한 철학적 과제와 깊은 연관이 있다. 그것은 ‘인공생명의 철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인공지능연구소 소장 로드니 브룩스는 로봇공학의 가장 본질적 특징으로 로봇이 빠르게 인간을 닮아 간다는 것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로봇의 진화가 최종 목표로 삼는 것은 ‘인간 되기’라는 것이다. 이것은 로봇공학이 곧 인간학이라는 것을 뜻한다. 이는 곧 로봇에게 어느 정도의 인간적 위상과 인간적 권리를 인정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야기한다. 이 모든 것은 철학적 과제에서 시작해서 법학적·사회학적 과제로 번져 갈 것이다. 인공생명의 철학은 이 문제를 풀지 않고 21세기를 넘어갈 수 없다.

피노키오도 빠르게 사람을 닮아 간다. 제페토 할아버지가 몸을 다 만들기도 전에 장난을 치기 시작하더니, 다리가 완성되자마자 집을 뛰쳐나가 말썽을 부린다. 세상의 유혹에 끌리기도 하고, 욕심이 지나쳐 자기 몸을 상하기도 하며, 많은 실수를 저지르고 후회하기도 한다. 여느 사람처럼 희망의 기만 만큼이나 고뇌의 결실을 체험한다. 무엇보다도 늘었다 줄었다 하는 자신의 코처럼 거짓과 진실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사람과 똑같이 되리라는 열망을 버리지 않는다. 결국 피노키오는 “진짜 어린이가 되었어요!”라는 작가의 말처럼 사람이 된다. 그것도 ‘착한 어린이’가 된다.


동화 속 피노키오의 이야기는 매우 행복한 결말에 이른다. 그러나 우리의 미래 현실에서도 그럴까? 우리 미래 세대와 동등한 권리로 살아갈지도 모를 인공생명들이 모두 ‘착한 로봇’일까(착하지 않다고 해서 ‘나쁜 로봇’이란 뜻은 아니다. 독립적이고 자율적이라는 뜻이다)? 혹자는 ‘모두 착한 로봇으로 만들면 되지’ 하고 반박할지 모른다. 하지만 모든 창조 행위에는 조물주의 통제를 벗어나는 묘한 자유의 영역이 있다. 이는 조물주 신화를 담고 있는 종교의 창세기에서도 알 수 있다. 우리는 신의 명령을 거역한 최초 인류의 자유 행위와 그 결과로 낙원에서 쫓겨난 이야기를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하물며 인간이라는 창조자가 자신의 피조물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는 건 공허한 희망일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의 인공생명과의 관계는 통제가 아니라 자율과 평등의 원칙으로 해결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로봇에게 인권을!’ 같은 구호가 일상의 현실인 시대가 머지 않아 올지 모른다. 이런 철학적 과제는 지금의 청소년이 장년이 되어 각 전문 분야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때쯤에는 이미 새로운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런 과제에 대해 미리 생각해 둔다는 자세로 <피노키오의 모험>을 꼼꼼히 읽어 보지 않겠는가.

김용석/영산대 교수 anemoskim@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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