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1994년, 감독 다카하타 이사오
놀이는 인간의 전유물? 물고기·개구리도 논다 국내에는 뒤늦게 소개됐지만, 1994년 일본 개봉 당시 세계적으로 흥행 몰이를 하던 디즈니사의 <라이온 킹>을 제칠 만큼 인기가 높았던 작품이다. 너구리들을 의인화해 개발과 환경 보존의 문제를 잘 묘사했다는 평을 받았다. 폼포코 31년. 도쿄 근처 타마 구릉지에 살고 있는 너구리들의 생활 터전이 인간의 개발에 밀려 사라질 처지에 놓이자 너구리들은 인간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너구리들은 외부에 원군을 요청하고 변신술을 통해 개발 계획을 저지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작은 성공에 기뻐하는 천진난만한 너구리들의 모습은 실제 인간보다 훨씬 인간적으로 비친다. 영화에는 너구리들이 온갖 장난을 치며 즐겁게 노는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데, 실제로 너구리도 놀이를 즐길 수 있을까? 아니면 이 영화가 너구리를 사람처럼 묘사했기에 가능한 것일까? 호모 사피엔스나 호모 에렉투스와 같이 인간의 한 종처럼 느껴지는 ‘놀이를 즐기는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는 단어는 생물학 책 어디를 뒤져 봐도 나오지 않는다. 이는 이 단어가 네덜란드의 호이징가라는 문화사학자가 인간의 특징이 놀이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만든 조어로, 생물학적인 특징에 근거한 분류가 아니기 때문이다. 호이징가는 인간의 문화가 놀이에서 나온 것이며,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것은 놀이를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사냥을 하고 먹는 것과 같이 생존을 위한 활동은 인간이나 동물이나 차이가 없지만, 놀이는 생존과 별개의 것으로 인간만이 가진 특징이라는 것이다. 동물들이 놀이를 하지 않는다면 호이징가가 말한 호모 루덴스라는 표현이 인간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 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놀이는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 아니며 포유류뿐 아니라 조류, 심지어 어류와 파충류까지 놀이를 즐긴다. 동물의 새끼들은 놀이를 통해 상당히 많은 에너지를 소비할 뿐 아니라 다치기도 하는데, 놀이가 주는 아무런 이득이 없다면 오랜 진화의 과정 중에 사라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득은 무엇일까?
놀이를 통해 개체가 얻는 이득은 바로 뇌의 발달이다. 어린 새끼들은 놀이를 할 때 뇌의 자극이 가장 활발하고 이를 통해 뇌가 발달하게 되는 것이다. 놀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이점은 성장했을 때 역할을 미리 경험해 봄으로써 어미가 되었을 때 훨씬 더 잘 적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초식 동물은 도망치는 연습을, 육식 동물은 사냥하는 연습을 통해 실제 상황이 닥쳤을 때 더 민첩하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뇌가 발달한 영장류와 같은 동물일수록 놀이의 중요성은 커지는데, 특히 인간의 경우가 더욱 그러하다. 인간은 장난을 치는 기간이 가장 길 뿐 아니라 성장한 뒤에도 놀이를 좋아하고 즐긴다는 것이 다른 동물과의 차이점이다. 똑똑한 아이로 자라기를 원한다면 아이가 잘 놀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잘 노는 것이 아니라 잘 노는 학생이 공부도 잘하는 것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최원석/김천중앙고 교사 nettrek@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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