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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어두운 밤 심부름길 팽팽한 긴장감 생생

등록 2005-06-12 15:55수정 2005-06-12 15:55

심부름

밤 9시가 넘은 시간에

프리마를 사러 간다.

우리집은 빌라 4층

어두운데 심부름 가기가 무섭다.

무서워서 뛴다.

프리마를 사고 오는 길

마음속으로 안 무섭다 하고 생각한다.


그치만 다시 뛰게 된다.

(이종현/인천 남부초등학교 6학년)

어릴 때부터 일상으로 찾아드는 두려움이 한 가지 있다. 밤에 대한 두려움이다. 내가 자랄 때 밤은 그저 달빛에 의지해 살아야 하는 시간이었다. 뒷간을 갈 때도, 어두워져 집에 돌아올 때도 내 걸음에 놀라고 바람에 휘적거리는 비닐에 혼비백산이 되곤 했다. 단순히 어둡다는 사실 때문에 무서워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밤도 낮하고 똑같은 거야’ 하며 마음을 달랬다. 종현이가 쓴 ‘심부름’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 밤길에 느끼던 기억들이 생생한 감각과 함께 떠올랐다.

밤 9시, 식구 가운데 누군가 종현이에게 심부름을 시킨다. 종현이는 아무 소리 안 하고 “네” 했을 것이다. 가로등도 없는 골목길에 혼자 나서는 일이 내키지 않지만 좀처럼 어른 말을 거스를 줄 모르는 종현이는 그 일을 감당하려 든다.

3행에 ‘우리집은 빌라 4층’이라고 썼다. 몇 번이고 이 대목을 읽었다. 왜 이 말을 썼는지 궁금해서다. 한참 생각한 끝에 종현이가 현관을 나올 때부터 무서워져서 4층에서 1층까지 가는 길도 아득하게 느껴졌을 거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러니 4층이 새삼 높다는 생각이 들 만도 하다. 길에 나선 종현이는 무서움을 참지 못하고 뜀박질을 한다. 시는 가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생략하고 곧바로 돌아오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시에 조금도 군더더기가 없다.

상황을 압축해 알맹이만 잘 드러낸 덕분에 시에 긴장감이 팽팽하게 살아 있다. 보통 이런 일을 글감으로 시를 쓰다 보면 가게에서 프리마를 사는 과정도 한두 줄 쓰기 마련이다. 하지만 종현이는 한마디도 쓰지 않는다. 프리마를 사러 갈 때부터 올 길을 걱정했고 그 마음이 시에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그래도 돌아올 때는 조금 여유도 부려 본다. 무서움을 이길 나름의 방법을 찾아 보는 것이다. 그게 바로 ‘안 무섭다’ 하며 속으로 외치는 일이다. 마지막 행에서 종현이의 마음이 더 잘 느껴지는 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이런 기억이 종현이 마음과 겹쳐서 공감을 한층 높여 주기 때문이다.

강승숙/인천 남부초등학교 교사

sog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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