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① ‘일가족 칼럼 사기단’이 될지도 모른다. 아빠와 아들, 그리고 딸이 함께 칼럼을 쓰면서 사기행각을 벌인다는 상상은 끔찍하다. 사기의 수법은 다음과 같다. 나는 중학교 1학년인 아들 준석과 초등학교 4학년인 딸 은서에게 매주 글을 쓰게 한다. 갖가지 주제를 던져줄 것이다. 가족과 학교와 친구와 세상의 여러 일들에 관한 생각을 정리하게 할 계획이다. 함량 미달의 글은 다시 쓰게 한다. 때로는 아빠의 성에 찰 때까지 쓰고 또 쓰게 한다. 그 글들을 재료 삼아 아빠는 이곳에 글쓰기 칼럼을 연재한다. 아이들에게 글쓰기에 관해 한 수 가르쳐주는 척, 이 칼럼을 읽으면 꼬마 독자들의 글쓰기 실력은 물론 엄마 아빠 독자들의 글 지도력까지 높아지는 척 폼을 잡을 예정이다. 기대를 품고 이 칼럼을 읽은 독자들이 ‘이상한 일가족’에게 사기당했다며 화를 내지는 않을까 두렵다. 그럼에도 감히 일을 저질러보기로 했다. 우리 가족이 어찌 ‘사기단’이 될 수 있느냐며 ‘사기 진작’을 꾀하는 의미에서 아이들과 작은 토론회를 열었다. 진지한 대화를 나누려 했는데 자꾸만 엉뚱하게 피식피식 새버렸다. 글을 써보니 어때?(아빠) 글 솜씨가 느는 것 같아.(은서) 길게 쓰는 건 좀 어려웠어.(준석) 난 하나도 안 어려웠어.(은서) 정말?(아빠) 어, 난 머리에 생각나는 게 딱딱 바로 나와.(은서) 글을 잘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아빠) 당근이지.(준석) 왜?(아빠) 글쓰기대회에서 상을 받을 수 있잖아.(준석) 자랑스럽겠다. 상을 받으니까.(은서) 논술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도 있고.(준석) 보다시피 개념이 별로 없다. 동생 은서에 비해 오빠 준석이라고 월등히 낫지는 않다. 무개념 속에서도 어디선가 주워들은 이야기가 없지는 않지만.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해?(아빠) 책을 많이 읽어야지. 논술책.(은서) 지식이 많아야 해.(준석) 지식이 많으려면?(아빠) 무엇보다 글쓰기 연습을 많이 해야지.(준석) 어떤 글이 좋은 글이야?(아빠) 사람들에게 교훈과 감동을 주는 글.(준석) 그게 뭔데?(아빠) 예를 들어 지독하게 못 사는 사람이 있는데, 엄청난 비웃음을 당하면서도 나중에 성공하는 이야기.(준석) 수준이 높은 글.(은서) 경험을 많이 한 사람이 쓴 글이 좋지.(준석) 경험만 많이 하면 돼?(아빠) 아니요.(준석) 노력을 많이 한 글.(은서) 어떤 노력?(아빠) 수많은 노력.(은서) 장난하니? 정말 썰렁개그다. 핵심을 금방 알 수 있다면 좋은 글이야.(준석) 칠전팔기 모험가의 글. 아니면 천재가 쓴 글.(은서) 쓰고 또 쓰고 수정한 글. 그러면서 좋아지는 거야.(준석) 아빠는 토론 끝머리에 “글은 무기”라는 말로 운을 뗐다. 준석은 ‘The pen is mighter than the sword‘(펜은 칼보다 강하다)라는 영어구절을 들먹이며 뭔가 알아먹겠다는 티를 냈다. “그러니까 사람을 설득하는 무기라는 거죠?” 은서도 한마디 보탠다. “으응? 말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무기?” “그렇지. 그러니까 글은 소통의 무기이자 생존의 무기야. 자기 생각과 마음을 정확하게 표현할 줄 알면 나만의 경쟁력이 생기고 더 나아가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지.” 딸은 하품을 했다. 내친 김에 좀 더 어려운 표현을 써봤다. “예전에 아빠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 글은 커뮤니케이션의 핵무기라고. 알아먹겠어?” 두 아이의 마지막 반응은 대조적이었다. “응응, 그러니까 글을 잘 쓰면 사회를 주름잡는다는 얘기?”(준석) “아함 졸려. 제발 그만 자자.”(은서) 고경태 <한겨레> 오피니언넷 부문 기자 k21@hani.co.kr * 아이들이 쓴 글을 포함한 이 글의 전문은 아하!한겨레(ahahan.co.kr)와 예스24 ‘채널예스’에서 4월 30일부터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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