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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학력격차, 하위 30% 지원하면 해소돼”

등록 2010-05-09 15:44

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박도순 이사장
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박도순 이사장
[교육 인터뷰] 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박도순 이사장
교육정보 공개는 학교간 서열·획일성만 강화
성적향상 중요하지만 인성·전인교육이 첫째
뒤처진 학생 이끄는 게 교육…평준화 유지해야




교육 정보가 잇따라 공개되고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로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서울의 ‘고교선택제’ 학교별 지원 경쟁률도 공개됐다. 문제는 교육 정보를 공개하는 목적이 분명하지 않다는 데 있다. 국민의 알권리를 내세우지만 학교 줄세우기에 정부가 앞장서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을 지낸 박도순(68·사진) 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이사장은 정부가 교육 환경이 열악한 학교나 학생을 위한 ‘아래로부터의 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쟁’을 통한 동기 부여는 교육의 획일성만 강화할 것이라는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지난 4월14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2010학년도 수능 성적 기초 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성적 공개를 두고 논란이 분분하다. 어떻게 보나?

“수능 성적을 공개한 목적이 있을 텐데, 아무리 봐도 무엇을 위해 발표한 것인지 불분명하다. 분석한 결과를 가지고 뭘 하겠다는 것도 없다. 지역간 학력 차이가 있다는 건 다 아는 내용이다. 분석 목표를 명확히 해서 공개하는 것은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7차 개정 교육과정이 제대로 적용된 것인지를 확인하려고 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공개된 결과는 아주 기초적인 자료 분석에 지나지 않는다.”

서울에서 처음 시행된 고교선택제의 지원율도 공개됐다. ‘교육 수요자의 알권리’를 내세우고 있는데, 교육 정보 공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이런 정보를 공개해서 단순히 국민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것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교육 정보 공개가 의도하는 것은 학교 간 경쟁을 강화하고 그걸 통해 학력을 높이려는 것뿐이다. 경쟁을 강화한다는 것은 학교 간 서열, 학벌, 수월성, 획일성만을 강화한다는 뜻이다. 경쟁을 통해 동기를 자극시키겠다는 것인데, 우리 사회는 가만히 둬도 지나치게 동기가 강한 사회 아닌가.”

대법원 판결로 학교별 수능 성적 공개도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교육 정보’ 공개가 현실의 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나?

“수능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학업성취도의 한 부분이다. 그런데 교육의 본질은 학업성취도만이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전인교육이나 인성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나. 학업성취도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교육의 본질에 비춰보면 최상위의 가치는 아니라는 것이다. 학업성취도에만 집중하면 다른 교육은 이뤄질 수가 없다. 지금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하고도 맞지 않는다.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잠재력 있는 학생을 찾아내겠다고 하는데, 그렇게 학업성취도만 중시해서 어떻게 찾을 수가 있나.


교육 정보 공개를 어디에 활용하는가도 문제다. 학교나 교사를 평가하는 데 활용해선 안 된다. 수능 성적이 순전히 교사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면 당연히 활용해서 교사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연구 결과를 보면 수능 성적에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건 가정환경이다. 근데 이런 부분에 대한 얘기는 아무것도 없고 소외계층에 대한 대책도 나오지 않고 있다. 물론 교사도 부분적으로 학업성취도에 영향을 주는 것은 맞지만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수능 성적 결과 하나를 가지고 학교와 교사를 평가하는 것은 교육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이번 수능 성적 공개로 ‘평준화 무용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그동안 유지돼온 평준화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우선 정부나 정치권이 양심적이지 못한 것 같다. 특목고나 자사고를 늘리려면 평준화를 폐지하자는 논의를 먼저 해야 한다. 하지만 여당이나 야당 어디도 평준화를 폐지하자고 말하지 않고 보완하자고 한다. ‘보완’이라는 이름 아래 여당은 평준화를 깨고 있고 야당은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특목고가 지금처럼 늘어나는 것은 명백히 평준화를 깨는 것 아닌가. 평준화가 처음 실시될 때의 명문고보다 지금의 특목고와 자사고 등의 수가 훨씬 많다.

평준화를 유지해야 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고등학교의 성격을 생각해 보자. 고등학교는 보통교육을 하는 곳이다. 경쟁을 통해 수월성을 향상시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기회균등을 통한 형평성이다. 처음의 의도와 달라지긴 했지만, 평준화는 선발방식만이 아니라 교사, 시설, 재정 등의 평준화도 같이 하는 것이다. 또 입시중심 교육에서 벗어나 전인교육이나 인성교육을 위해서도 평준화가 낫다. 지역균형발전, 학교 간 교육 격차 해소에도 부분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평준화로 고등학교를 위한 사교육이 줄어든 것도 분명하다. 평준화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학력의 하향평준화를 지적하지만, 지금까지 어떤 연구도 평준화로 학력이 떨어졌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했다. 오히려 연구의 대부분은 별 차이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평준화 때문에 학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허구라는 말이다.”

학교·지역별 학력 격차가 있다는 사실은 확인된 것 같다. 하지만 그 원인에 대한 분석과 정책 대안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학력 격차의 원인은 뭐라고 보나?

“학력 격차는 언제 어디서나 있었다. 중요한 건 뒤처지는 학생들을 어떻게 끌어올리느냐이다. 학습 부진아가 있다면 찾아내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잘하는 학생들을 뽑아서 더 잘하게 하는 게 수월성 교육이 아니다. 모든 학생을 위한 수월성 교육이 돼야 한다. 수월성 교육의 개념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학력 격차의 원인 가운데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것이 가정환경과 교육여건이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도와줘야 한다. 그리고 격차의 의미를 학력이라는 잣대로 하는 것도 문제다. 전교생이 10명밖에 안 되는 시골학교의 아이들이 건전한 인성을 갖고 얼마나 잘 자라고 있는가. 하지만 학력만으로 이 아이들을 뒤처졌다고 판단해 버린다. 또 학력이 높은 것은 교육 프로그램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입학하는 학생들의 학력이 좋으니 당연히 수능 성적이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교육의 효과라기보단 선발에 의해서 이미 결정된 것이다.”

학력 격차의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 같다. 학력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은 뭐가 있나?

“한 학급에 학력 수준이 다른 학생들이 모여 있어서 선생님이 가르치는 게 힘들다고 하는데, 이건 말이 안 된다고 본다. 어차피 모든 학생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학습 능력이 다른 학생들이 한 학급에 있다고 뽑을 때부터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을 선발하는 게 옳은 것인가. 비슷한 수준의 학생을 뽑으려면 결국 학력밖에 없다. 학생을 능력에 따라 구분하지 말고 수준에 맞게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국가단위에서 교육에 투자할 때 교육정책의 핵심은 하위 30%에 집중돼야 한다. 평준화를 유지하되 선발 방식으로 보완하는 게 아니라 재정지원, 교사, 시설 등으로 해야 한다. 학력 평가를 해서 재정지원을 한다고 하는데, 그런 평가를 하지 않아도 교육환경이 열악한 학교가 어딘지는 다 알 수 있다. 그 지역의 재정상황이 좋지 않고 학생의 가정환경이 어렵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아래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야 한다.”

현 정부의 교육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정부는 공교육 경쟁력을 강화하면 사교육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공교육과 사교육이 해야 할 각각의 구실이 있다. 일대일 교육이 필요한 상황이 많은데 공교육에선 해줄 수가 없다. 문제는 사교육이 공교육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하는 것이다. 사교육은 공교육이 할 수 없는 부분을 맡아줘야 한다.

학생들의 소질과 적성에 따른 고교 다양화 정책은 좋은 것 같다. 특히 마이스터교를 늘리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좋은 방향인 것 같다. 하지만 학생을 위한 특성화가 아닌 입시를 위한 특성화는 아닌 것 같다. 외고는 외국어를 능숙하게 하는 학생을 길러내는 것이 목적인데 법대에 진학하고, 과학고 학생은 의대에 간다. 이런 것들이 제도적으로도 다 허용이 되고 있다. 학생 선발을 위한 다양화 정책에는 반대한다.”

이명박 정부는 교육에서도 자율과 경쟁을 강조한다. 제대로 된 경쟁이 이뤄지기 위해선 뭐가 필요하다고 보나?

“제대로 된 경쟁은 똑같은 조건을 만들어 준 뒤에야 이뤄질 수 있다. 현재의 결과만으로 판단하거나 규정하기 전에 지원을 우선해야 한다. 평가의 목적이 ‘경쟁 심화’가 아닌 ‘지원’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또 자율과 경쟁을 위해선 다양성이 필수다. 근데 왜 교육을 획일화하는지 모르겠다. 학교에 수준별 수업을 하라고 하지만, 시험은 같은 내용을 보게 한다. 교육방송만 보면 수능을 잘 볼 수 있다고도 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학교 간 경쟁은 선발 경쟁이 아닌 교육 프로그램 경쟁이 돼야 한다. 대학의 예를 들면, 서울대는 농어촌 전형을 통해 학생을 뽑았더니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중도에 탈락했다고 불평한다. 하지만 그런 학생을 뽑았으면 그 수준에 맞는 별도의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가만히 두면 당연히 뒤처진다. 학력이 우수한 학생을 선점해 졸업할 때까지 기다리는 건 교육이 아니다. 가정환경이 어렵고 학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을 데려다 잘하게 하는 게 교육이고 교육기관이 할 일이라고 본다.”

이란 기자 rani@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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