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태의 글쓰기 홈스쿨
됐고! <지붕 뚫고 하이킥!> 이야기를 한 번만 더 하자. ‘됐고!’는 극 중 황정음이 히트시킨 유행어다. 상대방이 되도 않는 말을 길게 늘어놓을라치면 어김없이 ‘됐고!’를 내뱉었다. 그 광경이 나올 때마다 나도 모르게 가슴 한쪽이 시원해졌다. ‘그래 지겨운 말은 짧게 해야지. 하지 말든가.’ 황정음을 버릇없다고 욕하긴 어렵다. 지훈이나 준혁처럼, 친하고 편한 관계에서만 그랬으니까. 여기서 의문! 예의범절을 지켜줘야 하는 지체 높은 분이 길고 지루한 설교를 하시면 어떻게 해야 하나. 차마 “됐고!”라는 면박을 줄 수 없다면? ‘메롱’이 있다. 다만, 면전에서는 곤란하다. 뒤통수에 대고 몰래 날려줘야 한다. 혀를 삐쭉 내밀고 메~롱, 너나 그렇게 사세요. 오늘은 은밀한 혀놀림을 부르는 ‘메롱 유발자’들에 관해 알아보겠다. 그들과 글쓰기 교육의 함수관계를 살펴보겠다. 가장 먼저 교장 선생님이 떠오른다. 초중고 12년간 전체 조회 등을 통해 그분들의 ‘훈시’를 들었다. 안타깝게도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말씀이 없다. 요즘은 어떨까. 초딩 은서에게 물어보았다. “교장 선생님 말씀 재밌니?” 답은 싱거웠다. “아니.” “왜?” “지루해.” ㅎㅎ 내 기억으로는, 대학 총장님의 말씀도 만만치 않다. 군대에서 하늘 같은 연대장, 사단장님의 말씀은 한 등급 위였다. 그들은 늘 책을 읽었다. 구어체가 아닌 문어체였단 말이다. 당연히 생동감이 없었다. 고지식하기 짝이 없는 바른 말씀이었다. 손톱만큼이라도 유머는 없었다. 가르치려고만 했다. 숨이 막혔다(내가 모르는 예외도 있으리라). 거룩한 말보다는 생활의 때가 묻은 언어가 기억을 때리고 마음을 울린다. 가령 21년 전 군대 사고예방교육 시간에 어느 준위 강사가 해준 말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모든 사고는 3분 사발면을 3분 참지 못해 생긴다. 물 부어놓고 꼭 1~2분 만에 봉지를 뜯지? 3분을 기다리고 젓가락질을 하면 사고가 왜 생기겠냐.” 인내심을 가지라는 상투적 교훈이었지만, 웃겼다. 귀에 쏙 들어왔다. 어린 사병들 눈높이에서 짚어낸 비유의 힘 때문이다. 백만번 지당한 말씀이어도 도덕 교과서처럼 읊으면 ‘메롱’ 하고 싶다. 이참에 ‘메롱 하고 싶은 글쓰기’를 새로운 유형으로 분류해도 좋겠다. 메롱 하고 싶지 않게 쓰려면 솔직해야 한다. 자신의 마음을 스스럼없이 꺼내놓으면 읽는 이의 마음도 열린다. 불변의 글쓰기 제1원칙이다. 이를 위해선 ‘교장 선생님 말씀처럼 글을 쓰지 말라’고 아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제발 있는 그대로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써보라고. 준석과 은서도 글머리는 편하게 시작해 놓고 끝에 가면 꼭 가공을 하려 한다. 교육으로 주입된 반듯한 이야기로 결론을 맺으려 한다. 버릇이 됐다. 굳어지면 곤란하다.
“저를 뽑아주시면, 착실한 봉사활동은 물론이고, 왕따 없고 화목한 우리 반을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배려하는 반장이 되겠습니다.” 지난 3월 학급 반장 후보로 출마했던 은서의 발표문이다. 교장 할아버지 같은 말씀만 했다. ‘메~롱’ 해주고 싶다. “됐고!”도 들리는 듯하다. 은서야 눈을 감고 그려봐라. 정음 언니가 엄지손가락을 들어 “대박!”이라 외치는 모습을. 그런 칭찬을 들으려면 먼저 솔직하게 써라. 착한 척은 됐고!! <한겨레> 오피니언넷 부문 기자 k21@hani.co.kr ※아이들이 쓴 글을 포함한 이 글의 전문은 아하! 한겨레(ahahan.co.kr)와 예스24 채널예스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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