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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영어단어 안에 그리스·스페인·독일 있었네!

등록 2010-06-13 15:30

‘스펠링 비’에 참가한 학생들이 출제자의 발음을 듣고 철자를 말하고 있다. 철자를 맞히지 못한 참가자가 하나씩 탈락하면서 마지막에 남는 사람이 우승자가 된다.
‘스펠링 비’에 참가한 학생들이 출제자의 발음을 듣고 철자를 말하고 있다. 철자를 맞히지 못한 참가자가 하나씩 탈락하면서 마지막에 남는 사람이 우승자가 된다.
미국 ‘스크립스 내셔널 스펠링 비’ 대회 가보니
세계 10여개국 273명 참가 ‘단어 철자 말하기’ 뽐내
재미난 암기법 찾고, 다른나라 문화·어원 알면 좋아
“좀 긴장되고 떨렸어요. ‘kirtle’이라는 단어가 출제됐는데 ‘curtle’의 철자를 말했어요. 아는 단어였는데….” 1살 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에 간 크리스틴 윤(14)양의 목소리엔 준결승에 나가지 못한 아쉬움이 가득했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들이 하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며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이런 대회를 왜 하는지 한국에서는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하지만 미국에서는 철자를 정확하게 말하는 게 중요하죠. 단어의 어원에 따라 발음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지난 6월2일부터 5일(현지시각)까지 미국 수도 워싱턴의 그랜드 하이엇 호텔에서 열린 제83회 스크립스 내셔널 스펠링 비(Scripps National Spelling Bee)에는 세계 10여개국 273명의 학생이 참가해 ‘영어단어 철자 말하기’ 실력을 뽐냈다. ‘스펠링 비’는 참가자가 출제된 단어의 발음을 듣고 철자를 한 자씩 또박또박 말하는 대회다. 출제된 단어의 뜻, 품사, 어원, 예문 등을 출제자에게 물어볼 수 있다. 윤양의 어머니 정지연(40)씨는 “영어 단어에는 그리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것이 많기 때문에 발음의 규칙이 다양하다”며 “스펠링 비를 잘하려면 단어의 어원을 중심으로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출제된 단어 가운데 ‘juvia’는 영어식으로는 ‘주비아’라고 읽어야 하지만 스페인어에서 온 단어이기 때문에 ‘후비아’라고 발음해야 한다. 스페인어에서는 j가 h로 발음되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에서 ‘stromuhr’(동맥을 통과하는 혈류량과 속도를 측정하는 의료기기)라는 단어의 철자를 정확히 말해 우승한 아나미카 비라마니(14)양도 “평소에 독일어 공부를 한 것이 도움이 됐다”며 “모르는 단어라도 어원을 추측해 보면서 공부를 한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 출제위원장인 버몬트 대학 자크 베일리 박사는 “스펠링 비는 영어에 대한 흥미를 북돋워 주고 영어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며 “영어 단어를 무작정 외우기보다는 단어가 어디서 왔는지를 분석하면서 공부해야 오래 기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참가한 학생들도 사전을 통째로 외우는 것은 지루하기 때문에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본다고 했다. 그레이스 츠이(11)양은 “지난해 참가한 언니와 노래를 만들거나 단어 맞히기 게임을 하면서 대회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베일리 박사는 “telephone은 tele(먼 거리)와 phone(말하다)이 합쳐진 단어인데, tele라는 접두사 하나를 알면 수십가지의 단어를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며 어원 지식에 근거한 단어 학습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스펠링 비’는 예선, 준결승, 결승으로 갈수록 어려운 단어가 출제된다. 특히 의학, 과학 분야의 전문 용어가 많이 나온다. 한국 대표로 참가한 김현수(14·대원국제중 2년)양에게도 예선에서 ‘황색변조증’을 뜻하는 의학용어인 ‘xanthochromia’가 출제됐다. 어려운 단어였지만 어원이 그리스어라는 출제자의 답변을 듣고 정확한 철자를 말할 수 있었다. 다양한 종류의 음식 이름도 많이 출제되는데, 다른 나라의 역사와 문화도 잘 알아야 맞힐 수 있다. 결승에서 출제된 단어 가운데 하나인 ‘gyokuro’도 ‘교쿠로’라는 일본의 고급 녹차를 뜻하는 말이다. 캐나다에서 온 로라 올리비아 뉴콤(11)양도 confiserie(사탕, 캐러멜, 젤리 등의 당과류)를 “c-o-l-f-e-a-s-e-r-i-e, colfeaserie”라고 말해 결승에서 아쉽게 탈락했다.

영어 단어 철자를 정확히 알면 읽고 쓰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된다. 두번째로 대회에 참가한 에스더 박(14)양은 “미국에선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글을 잘 써야 한다”며 “전문용어를 많이 알고 있고 철자를 정확히 쓰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현수양의 어머니 이우숙(48)씨는 “영어 자기주도학습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단어를 정확히 읽을 수 있어야 하고, 그다음엔 영어로 된 책을 많이 읽으면서 자기 지식을 쌓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단어 뜻은 몰라도 철자만으로 영어를 읽을 수 있게 지속적인 연습을 했다고 덧붙였다.

다른 친구를 이겨야 한다는 ‘경쟁의식’ 보다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스펠링 비’를 즐기는 모습에서 이번 대회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뉴콤양은 “다른 나라의 친구들을 많이 알게 되어서 기뻤다”며 “친구들과 사인을 주고받으며 사진도 찍었다. 내년에도 꼭 참가하고 싶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동생이 이번 대회에 참가해 다시 ‘스펠링 비’를 찾은 지난해 우승자 카비아 시바샹카(14)양도 “대회를 통해 많은 새로운 단어를 알게 됐고 무대에 서도 긴장하지 않게 됐다”며 “무엇보다 세계를 더욱 넓게 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게 된 값진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워싱턴/글·사진 이란 기자 rani@hanedui.com


영화·책·인터넷 등 생활을 영어로

한국대표로 참가한 ‘토익·토플 만점’ 김현수양

김현수양
김현수양
“다들 잘하는 것 같아요. 근데 꼭 우승해야 한다는 부담이 없어서 그런지 여유가 있어 보여요.” 쟁쟁한 영어 고수들이 모인 대회 현장에서 김현수(14·대원국제중 2년)양의 얼굴은 붉게 상기돼 있었다. 김양은 지난 2월23일에 열린 한국 대표 선발전(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 주최·윤선생영어교실 후원)에서 우승해 미국 본선에 참가하게 됐다. 본선에선 아쉽게 준결승에 오르지 못했지만, 한국에선 공인 영어시험인 토플과 토익에서 모두 만점을 받아 유명세를 치를 정도로 영어에 뛰어나다.

이번에 처음으로 외국에 가봤다는 김양의 영어 공부 비법은 뭘까? “아마 평소 제 모습을 보면 공부를 안 한다고 생각할 거예요. 영어 문제집을 펼쳐놓고 공부를 하는 게 아니거든요.” 김양은 영어 공부를 별도의 시간을 내서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일상생활에서 늘 영어로 된 책을 읽고 영화를 즐겨 본다는 것이다. “영어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인터넷을 할 때도 영어로 된 사이트를 주로 이용해요.”

김양은 단어를 ‘외우지 않는다’고 했다. 단어만 나열되어 있는 단어장을 보면 금세 지루해지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문맥을 통해 추측해보고 사전을 보면서 확인하는 정도다. “책을 보면서 이런 단어가 있구나, 신기하네, 이렇게 느끼면서 단어 공부를 해요. 그러다가 인터넷에서 재미있는 단어나 발음이 좀 특이한 단어를 찾아보기도 해요.”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과 만날 수 있어 좋았다는 김양은 ‘스펠링 비’에 처음 참가하면서 느낀 점이 많다고 했다. “스펠링 비를 준비하면서 책을 많이 읽었어요. 책에는 글쓴이의 나라에 대한 정서가 묻어 있다고 하잖아요. 책을 읽으면서 외국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됐어요.” 또 영어를 즐기면서 하는 다른 나라 친구들의 모습이 부러웠다고 한다. “영어 단어는 외워야 하고 시험을 봐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잖아요. 즐기면서 영어를 배웠으면 좋겠어요.” 이란 기자


‘축제 같은 대회’ 우리도 있었으면

한국대표 선발전서 금상 받은 이성환군

이성환군
이성환군
“두 가지를 느꼈어요. 하나는 ‘부러움’이고 또하나는 ‘놀라움’이에요.” 한국 대표 선발전에서 금상을 받아 참관단으로 같이 온 이성환(14·청심국제중 2년)군은 ‘스펠링 비’에 참가한 학생들의 실력이 굉장히 뛰어나다며 칭찬을 쏟아냈다. “부러웠던 건 대회를 축제처럼 즐기는 미국의 문화였어요. 승자와 패자 구분 없이 모두 박수를 받는 것도 한국에선 볼 수 없는 모습이죠.” 이군은 참가 학생들이 ‘스펠링 비’에 기울인 노력과 시간을 생각하면 ‘경탄’ 그 자체라고 했다. “영어 단어 외우는 게 한계가 있어서 아마 다들 어원을 통해 공부했을 거예요. 다양한 나라의 언어와 예외적인 규칙도 잘 알아야 하는데 정말 열심히 준비한 것 같아요.”

이군은 이런 대회가 한국에도 생겼으면 하는 바람도 나타냈다. “영어 공부를 더 재미있게 할 것 같아요. 이런 분위기라면 좌절도 덜 하기 때문에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의식도 키울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영어 공부를 다양한 방법으로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선 문법 위주로 영어 수업을 하고 영어 단어는 무조건 외우는 탓에 영어에 흥미를 붙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군도 ‘스펠링 비’를 하면서 재미있게 영어 공부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한다. “친구들과 영어 단어로 끝말잇기를 하거나 단어들을 묶어서 이야기를 만들어봐요. 단어 뜻과는 관계가 없더라도 발음으로 저만이 알 수 있는 문장을 만들어서 기억해 두죠.” 영화와 미국 드라마를 즐겨 보는 것도 영어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했다. “영화를 볼 땐 자막을 없애고 봐요. 의학 드라마인 <하우스>를 볼 때에는 영어나 한글 자막을 넣어서 보죠. 전문용어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수준 높은 영어단어를 알 수 있어요.” 또 외국인과 바로 대화를 하는 건 낯설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또래 친구들과 토론팀을 꾸려 편하게 회화를 배우는 게 좋다고 했다. 이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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