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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외국어 인재 양성? 입시명문고?외고, 네 정체는 뭐니

등록 2010-06-27 16:16

오래된 질문 하나. “우리나라에 외국어고등학교(이하 외고)는 왜 존재하나요?” <보기>는 다음과 같다. ① 외국어에 능숙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② 외국어에 능숙한 인재를 양성해 명문대 인기학과에 보내기 위해 ③ 공부 잘하는 중학생을 선발해 명문대 인기학과에 보내기 위해.

이번에 개정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1항과 1항6호를 보면 외고는 “특수 분야의 전문적인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고등학교”로 “외국어에 능숙한 인재 양성을 위한” 것이라 명시돼 있다. 그러나 널리 알려졌다시피 외고 졸업생 가운데 어문계열 진학자는 약 25%에 불과하다. 오히려 법·경영 등 사회계열 진학자가 절반을 넘는다. 1992년 이후 외고가 특수목적고(이하 특목고)로 지정된 이후, 그리고 2001년 특목고 지정·고시권이 시도교육감에게 옮겨간 이후 외고는 줄곧 본래 존재이유인 ‘외국어에 능숙한 인재 양성’보다 ‘입시 명문고’의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위 질문에 대한 답이 ①번이 아닌 것도 큰 문제지만, 최근 ②번도 답이 아니라는 연구결과들이 발표돼 관심을 끌고 있다. 외고가 일반고보다 명문대를 잘 보내는 것은 ‘잘 가르쳐서’(학교효과)가 아니라, ‘잘 뽑아서’(선발효과)란 것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채창균 연구위원은 올해 2월 발표한 논문 ‘특목고의 수능성적 향상 효과 분석’에서 “중학교 내신 1등급 일반고 진학생과 특목고 진학생 간에 국어, 영어, 수학 수능성적 등급이나 1등급 비율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채 연구위원은 200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에 응시한 특목고생 171명과 중학교 내신 1등급 일반고 학생 38명을 대상으로 연구했다. 특목고생 171명 가운데 138명(약 80%)이 외고생이다.

채 연구위원은 지난 21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명문대 입학생 비율만 가지고 특목고가 일반고보다 낫다고 말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며 “출발점(선발효과)이 다른데 어떻게 두 학교를 비교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래서 그는 “만약 고교 진학 단계 이전 학업성취도 수준이 유사했던 두 집단 중 한 집단은 특목고에 진학하고 다른 집단은 일반고에 진학한 상태라면, 특목고 진학 집단의 수능성적이 일반고 진학 집단의 수능성적보다 높을까?”라는 문제의식으로 이번 연구를 수행했다. 연구결과가 ‘그렇다’면 특목고가 우수한 학생을 선발해 일반고보다 더 ‘잘 가르쳤다’는 뜻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특목고가 우수한 학생을 선발했을 뿐 일반고보다 ‘잘 가르친다’는 증거는 없는 셈이다.

채 연구위원이 연구대상을 계량분석 모형을 활용해 분석한 결과 ‘그렇지 않다’가 나왔다. 즉, 고교 진학 전 학업성취도 등 다른 조건들을 통제했을 때 특목고가 일반고보다 ‘더 잘 가르친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고교 평준화로 학력이 ‘하향 평준화’됐다”며 “특목고나 자사고 등을 늘려 ‘질 높은 교육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교육계 일각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과다.

지난 4월 한국교육개발원 민병철 연구원과 숙명여대 교육학부 박소영 교수가 발표한 논문 ‘외국어고등학교 학교효과 분석’에서도 외고 학생들과 일반고 학생들 간의 언어 영역 성적은 통계적으로 차이가 없었고, 수리와 외국어 영역의 차이도 예상만큼 크지 않았다. 이에 대해 민 연구원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외고에 가지는 기대, 즉 외고에 입학하면 일반고에 다닌 것보다 학업 성취 수준이 높아져 좀더 쉽게 명문대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실증분석 결과 실제보다 부풀려진 것”이라며 “현 정부에서 추진중인 고교 다양화 정책이 우리나라 중등교육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을지, 도리어 고교입시 준비를 위한 사교육을 더욱 부추기는 부작용만 일으키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채 연구위원은 지난해 11월 발표한 논문 ‘교육고용패널 자료를 통해 본 외고 교육 실태’에서 “외고는 교육여건이 일반고보다 양호하지만, 설립 취지에 부합하지 못하는 교육으로 사교육비 증가 및 사회적 유대감 훼손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2008년 가계 사교육비 지출 총액을 보면 중학교(5조8135억원)가 고등학교(4조6652억원)보다 1조원 이상 많았다. 가계 사교육비 총액 가운데 영어 사교육비 비중은 고등학교(30.3%)보다 초등학교(33.1%)나 중학교(34.1%)가 높았다. 외고 입시 준비에 따른 결과다. 외고 진학 이후에도 외고생들은 일반고생보다 사교육 참여율이 1.5배 높았고, 월평균 사교육비도 2배나 많았다. 외고 입학 전후 들어가는 높은 사교육비는 경제력을 갖춘 부모의 자녀들을 중심으로 외고에 입학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교육고용패널 자료를 보면 월평균 500만원 이상 고소득 가구 자녀 비율은 외고(49.3%)가 일반고(23.8%)보다 2배 이상 많았다. ‘실력’보다 ‘배경’이 명문대 진학 기회 접근에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이다.

채 연구위원이 무엇보다 주목한 것은 미래 직업을 결정한 학생의 비율이 일반고(65.4%)보다 외고(60.4%)가 낮다는 사실이다. 또 수능 1등급자 중 어문계열 진학자는 15%로 전체 외고 졸업생 중 어문계 진학자 비중(24.3%)보다 낮았다. 전공 만족도는 어문계열로 진학한 외고생(3.59점)이 타 전공 진학자(3.93점)보다 낮게 나왔다. ‘외국어에 능숙한 인재 양성’이라는 외고의 존재이유가 흐릿해지는 지점이다.

올해부터 외고 입시와 교육과정에 큰 변화가 있다. 외고로 인한 사교육비 문제를 정부가 더이상 방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입시에선 각종 영어인증시험을 배제하고, 영어 내신과 학습계획서 등만 반영하기로 했다. 또 교육과정에선 전공교과 비중을 높이기로 했다.

정부의 이번 정책으로 천덕꾸러기 외고가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을까?

조동영 기자 dycho197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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