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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e세상서도 ‘공짜 점심’은 없다

등록 2010-07-18 16:30수정 2010-07-18 16:53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
[난이도 수준-고2~고3]

42. 전쟁의 매력 - ‘전쟁문화’를 생각하다

43. 원자 경제에서 비트 경제로 -공짜(Free)가 당연한 세상

44. 내가 이 땅에서 고생하는 이유는 -지정학자의 눈에 비친 세상


1970년대까지 컴퓨터는 아무나 쓰는 물건이 아니었다. 심지어 프로그래머들에게도 컴퓨터를 쓸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관리자들은 일일이 사용계획서를 읽어보고 효율성을 따져가며 이용허가를 내 주었다. 쓸데없이 복잡한 프로그램을 짰다간 퇴짜를 맞기 일쑤였다. 때문에 프로그래머들은 꼭 필요한 만큼만 작동하도록 짧고 간단하게 프로그램을 짰다.

그러나 엔지니어 앨런 케이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비싼 컴퓨터로 모니터 화면을 재미있게 꾸미는 방법을 궁리했다. 마우스로 포인터를 움직이고 창을 여러 개 만드는 식으로 말이다. 화면이나 꾸미자고 그 비싼 기계를 쓰다니 어디 될 법한 소리였던가. 당시 기준으로는 이만저만 낭비가 아니었다.

앨런 케이의 ‘낭비’는 결국 컴퓨터의 발전을 가져왔다. 1960년대에도 이미 작은 가정용 컴퓨터를 만들자는 생각은 있었단다. 그러나 무조건 아끼자는 생각이 널리 퍼진 세상에서는 가정용 컴퓨터가 쓰일 곳을 찾지 못했다. 기껏해야 기술자들이 16진수로 복잡한 계산을 해야 쓸 수 있는 1만 달러짜리 조리법 저장기를 떠올렸을 뿐이다. 앨런 케이는 비로소 컴퓨터를 쉽게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셈이다.

낭비는 새로운 소비를 부른다. 그리고 소비는 시장을 만들어 내고 기술 발전을 가져온다. 이렇게 보면 낭비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자유민의 조건으로 ‘여유’(scole)를 꼽았다. 뭔가 새롭고 기발한 것을 찾으려면 시간과 돈을 적당히 낭비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인터넷에서는 여유가 차고 넘친다. 검색과 이메일은 이제 ‘당연히 공짜’처럼 여겨진다. 무료 게임에서 주식 상담에 이르기까지, 무료인 콘텐츠 목록에는 끝이 없다. 공짜로 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날수록 인터넷의 쓰임새도 자꾸만 늘어간다. 그러면 이용자는 더욱 늘어나고, 컴퓨터 칩의 가격과 인터넷 통신비용은 점점 내려간다. 기업이 감당해야 할 생산 비용 역시 줄어든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는 법이다. 공짜는 무엇인가를 반드시 대가로 바라기 마련이다. 공짜를 통해 기업들은 여러 방법으로 이윤을 챙긴다. 검색 엔진의 광고는 이익을 얻는 대표적인 방법이다. 콘텐츠를 무료로 주고, 추가 기능을 쓸 때만 요금을 받는 버저닝(versioning)이라는 기법도 있다. 자신의 음원을 공짜로 퍼가게 하고 콘서트 표를 팔아 한몫 챙기려는 음악가들도 있다.

어떤 방법을 쓰건, 인터넷에서는 규모가 가장 중요하다. 무료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는 하루에도 수천만 명이 이용하는 사이트다. 하지만 여기에 정작 자료를 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방문자 만 명 중 한 명꼴이란다. 숫자로 보자면 0.0001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사용자가 1000만 명이라면 어떨까? 0.0001퍼센트라 해도, 위키피디아에 요긴한 정보를 올리는 ‘기자’가 무려 1000명이 있는 셈이다. 공짜 이용자라도 많아지면 이익은 늘어난다. 경제학자 크리스 앤더슨은 ‘5%의 법칙’을 내세운다. 이용자의 95%는 기본적인 기능을 무료로 쓴다. 그러나 더 많은 기능을 돈을 내며 쓰는 5%만 있어도 이익을 뽑는 데는 문제가 없다.

그래서 인터넷 기업들은 이용자를 늘리려 안달이다. 사용자를 많이 늘리는 데 있어 공짜는 가장 좋은 방법이겠다. 게다가 사람들은 더욱 많은 서비스를 공짜로 내놓는 사이트로 몰려들 테다. 인터넷 회사들이 앞다투어 공짜 서비스들을 내놓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문제는 인터넷 기업들이 정작 몰려든 공짜 이용자들에게서 어떻게 이익을 뽑아낼지 모른다는 데 있다. 트위터나 유튜브는 큰 인기를 끄는 서비스 업체이다. 하지만 두 업체는 여전히 적자 상태다. 사람들을 구름같이 모아놓았지만, 이익을 뽑을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는 데 광고를 들이밀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돈을 받을 수도 없다. 그랬다간 이용자들이 또다른 무료사이트로 썰물처럼 빠져나갈 테다.

공짜는 그래서 또다시 낭비를 부추긴다. 큰 이익을 남기려면, 커피 자판기가 널려 있어도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시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인터넷에서의 공짜도 결국 공짜가 아니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바라고 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결국 내 주머니도 털리게 되어 있다.

이 점에서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여전히 가르침을 주는 소설이다.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는 낙원이다. 유토피아에서는 필요 없는 욕심을 없애려 애쓴다. 거기서 사람들은 하루 여섯 시간만 일한다. 그러고도 부족함 없이 산다. 하긴, 우리의 노동 대부분은 비싼 옷이나 좋은 음식 같은 ‘사치품’을 얻는 데 들어가지 않던가. 쓸데없는 돈을 줄이고 꼭 필요한 지출만 하면 은행계좌는 금방 부풀어 오를 테다. 심지어 유토피아에서는 집을 함부로 허물고 새로 짓지 못하도록 국가가 엄하게 감시한다. 시민들에게는 옷도 서너 벌뿐이다. 낭비를 막기 위해서다. 시민들의 생활이 궁상맞지는 않을까? 토머스 모어는 그렇지 않다고 힘주어 말한다. 사람들은 남는 시간에 공부나 고상한 취미에 매달린다. 쓸데없는 사치를 줄이면 인생의 질도 그만큼 높아진다.

그렇다면 우리 인터넷 문화는 어떤가? 인터넷은 인정과 관심이 큰 역할을 하는 공간이다. 돈을 벌지 못해도, 그 자체로 즐거워 블로그 활동에 열심인 사람들도 많다. 공짜인 서비스가 많으니 큰돈이 들지도 않는다. 인터넷을 통해 소박하고 차원 높은 삶을 꾸려갈 수 있겠다. 반면 인터넷은 끝없이 소비를 일깨우는 공간이기도 하다. 사이트들을 하릴없이 옮겨 다니다 보면 없던 욕구도 생겨난다. 유토피아에도 인터넷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절약으로 망한 문명은 없다. ‘공짜의 시대’에 절제의 미덕이 더욱 강조되어야 하는 이유다.

〈프리〉 〈유토피아〉
〈프리〉 〈유토피아〉
<프리>
크리스 앤더슨 지음, 정준희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유토피아>
토머스 모어 지음, 황문수 옮김범우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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