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하이의 한 한국계 학원에서 특례 입시를 준비하는 한국 유학생들.
홀로 조기유학 '정신적 방황'도 “여기 국제학교에는 한국 학생들이 대부분이에요.” 중국 상하이에 있는 한 미국계 국제학교 8학년인 신아무개군. 중국 생활 2년째인 신군은 말이 국제학교이지 사실상 한국 학교와 다를 바가 없다고 했다. 수업 시간에 미국인 교사의 영어를 듣는 것 말고, 하루 대부분은 절반이 넘는 한국 학생들과 함께 ‘한국 품’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한국 학생들이 넘쳐나는 것은 다른 국제학교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중국교육위원회의 최근 통계를 보면 2003년 말 현재 중국에 유학 중인 한국인들은 3만5353명으로 중국 내 전체 유학생 7만7715명의 45.5%를 차지한다. 중국 유학생 최다 배출국이었던 일본을 제치고 한국이 1위로 떠오른 것이다. 중국 초·중·고교에는 조기 유학한 한국인(외국인) 학생들이 입학할 수 있는 학교가 따로 지정돼 있고, 다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먼저 ‘국제학교’라고 불리는, 미국·영국·싱가포르·캐나다 등 정부의 승인을 받아 운영되는 학교다. 연간 수업료는 약 1만5천~2만달러쯤이다. 다음은 일반 중국 학교 안에 ‘국제부’를 지정해 별도의 교과과정으로 운영하는 학교로, 연간 수업료는 5천~1만달러이다. 마지막으로는 외국 학생 수용이 허가된 ‘비준학교’인데, 수업은 중국 학생과 모든 것이 똑같고, 연간 수업료는 약 5천달러 안팎이다. 일반적인 중국의 중·고교 연간 수업료는 약 100달러, 곧 우리 돈으로 10만원쯤이다. 상하이 체류 4년째인 조아무개씨는 두 자녀를 중등 학교에 보내고 있다. 자녀들은 국제학교에 다니며 한국 대학 특례 입학을 준비하고 있다.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지내는데다 적잖은 학비도 상사원인 남편의 회사가 거들어 주기 때문에, 다행스러운 조기 유학 사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학생 혼자 유학하거나, 준비를 제대로 못한 채 중국 열풍에 휩쓸려 떠나온 조기 유학은 실패할 위험도 크다. 상하이의 한 대학 근처에서 한국 식당을 하는 김아무개씨가 “꽤 많은 아이들을 만나는데 안타까운 때가 많다”며 들려 준 일화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열심히 공부하라는 윽박에 시달리지만 유학 생활 적응을 못해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과 어울리며 떠돌다가 중국 학생들과 싸워 공안(한국의 경찰)에 끌려간 아이들, 유학 알선업체를 통해 어학 연수에 참가했으나 나이가 훨씬 많은 ‘급우’들 사이에서 외톨이가 돼 가출을 거듭했다는 고등학생과 그 학생을 돌보고 있던 친척 집이 발칵 뒤집혔던 일, 친구 아이를 맡아 줬다가 끝내 친구와도 갈라서게 됐다는 사연 등. 이렇게 조기 유학이 자칫하면 학생은 물론 부모에게도 상처를 주고 부모와 자녀의 정은 물론 친지, 친우와의 정에도 심각한 균열을 초래할 수 있다. 조기 유학생 20여명의 숙식·학습·진학 관리를 책임지는 학원을 운영하는 김아무개씨는 “‘설마 내 자식이…’라는 부모의 안일한 생각에서 이미 조기 유학의 쓰라림은 싹트고 있다”고 말했다. 어린 학생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중국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한 한국인도 아닌, 어정쩡한 자신을 발견하고 정신적 방황을 겪는 일이 적지 않다고 했다. 자녀가 성공한 국제인으로 자라기를 바란다면 무엇보다도 학부모 스스로가 차분하고 냉정하게, 꼼꼼하게 유학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고 현지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상하이/글·사진 우수근 통신원 woosuke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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