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경제 교과서는 ‘인간 욕구는 무한하고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에 효율적으로 많이 생산해야 모두가 잘 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흔히 국민총생산(GNP)이나 국내총생산(GDP)으로 표시되는 경제성장률이 높을수록 경제가 잘 돌아간다 하고 이게 떨어지면 위기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런 경제 인식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국민총생산이나 국내총생산을 측정할 때 ‘더불어 건강하게’ 잘 사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빠지고 해로운 것들이 포함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엄마(아빠)가 살림을 하는 것은 더불어 건강하게 사는 데 꼭 필요한 일임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반면에 오염 물질을 하천에 마구 내다버리면서 공장에서 상품 생산을 많이 하면 하천이 죽는데도 성장률 수치는 올라간다. 공장에서 일하다 산업재해를 겪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 그 치료비는 국내총생산에 들어가므로 사람이 많이 다칠수록 성장률은 올라간다. 이런 엉터리가 어디 있는가?
둘째 문제는 기업이 활성화되고 경제성장률이 높아지기만 하면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좋게 영향을 받아 일반 사람들도 잘 살 수 있다(이른바 ‘트리클 다운(trickle-down)’ 효과)고 하지만 현실은 이와 다르다는 점이다. 보라, 19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고도성장하던 한국의 통계를. 수출액과 매출액이 증대해 일부 기업은 대기업으로, 그 중 일부는 재벌로, 초일류기업으로 초고속 성장을 했으나, 그것이 자연스레 다른 풀뿌리 민중이 정말 인간답게 잘 살게 했는가? 그 서글픈 결과 중 하나는 희생당해 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 이게 아닌데!”라고 문제 제기하기보다는 “나도 뼈 빠지게 열심히 해서 저들처럼 부자가 돼야지!”라고 생각하며 자신들을 괴롭히던 이들을 자신도 모르게 닮아 버렸다는 사실이다. 더욱 슬픈 것은 이제 진정 더불어 건강하게 사는 길을 가고자 해도 사람들의 건강한 마음이 돈의 논리 앞에 파괴된데다 자연 생태계마저 근원적으로 훼손됐다는 점이다. 그것도 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경제가 발전하면 모두 잘 살 수 있다’는 말이 얼마나 허구적인가는 사회 불평등 수치만 보아도 명백하다. 한국의 소득 격차 수치는 상위 10%가 하위 10%의 17배다. 특히 땅과 집, 건물 등 부동산 소유나 매매로 인한 소득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산촌이나 농촌에선 땅 한 평에 1만원 하기도 하지만 서울이나 인근에선 1천만원이 넘기도 한다. 무려 1천 배다. 그래서 어떤 이는 ‘트리클 다운’ 효과가 아니라 ‘백워시(back-wash)’ 곧 역류 효과라고 한다. 위쪽의 성장이 자연스레 아래로 흘러넘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위쪽이 끊임없이 아래쪽을 흡입함으로써 불균등이 커진다는 것이다.
흔히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잘 사는 사회’가 바람직하다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자.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바보’ 취급 받고 약삭빠른 이가 돈을 많이 벌고 힘 꽤나 쓰는 행세를 하기 일쑤다. 이렇게 기득권을 가진 이들이 일종의 연합체를 이루어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쓰기 때문에 갈수록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커진다. 이제부터라도 빈부 격차 없는,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들려면 어디부터 출발해야 할까?
고려대 교수 ksd@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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